학부모 강연 후 현타, 성경말씀으로 돌아보다

by 청블리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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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다. 영향력 있는 무신론자들은 그런 기다림을 인간의 무력함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대구동신교회 문대원목사님은 설교에서 기다림을 명확하게 정의하였다.

상황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능동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기다림의 가장 어려운 점은 기다림의 끝의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뭔가를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더 어렵다. 부모가 사춘기 이후 자녀들의 자발적인 변화와 성장을 기다리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다.



선교사인 남편을 선교지에서 잃고 남편을 죽인 자들의 선교지로 돌아가서 복음의 열매를 맺게 했던 엘리자베스 엘리엇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은 불확실성을 기꺼이 견디는 것이다. 답이 없는 질문이 내 생각을 파고들 때마다 그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기다림의 근거는 약속과 언약이다. 그래서 기다림은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 삶의 이해하지 못할 수많은 일들이, 심지어 실패와 좌절로 정의되는 그 모든 일련의 일들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퍼즐조각임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말로 할 수 없는 전율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당장은 모를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불확실성이라고 말하고 조급함과 불안함으로 반응한다.



이번에 학부모 대상 대면 강의를 하고, 시키지도 않은 학생 대상 온라인 무료 강의를 이어가면서 난 비참한 심정 속에서 소중한 믿음의 불씨를 살릴 기회를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나의 목표는 사람들의 인정도 아니고, 높아짐도 아니다.

적어도 그런 내 생각이 나의 삶의 가치관이자 삶의 모형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학부모 대상 강의를 할 때 불특정 학부모님과 학생들을 마주하며.. 나의 존재를 모르는 분들 앞에서, 나를 한없이 높이면서, 자신을 높이는 그 행위조차 정당화했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만한 1타강사의 강의라면 소개도 홍보도 필요 없었겠지만, 오신 분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후광효과 없는 자기 홍보로 메꾸려 하였다.



시교육청에서 선택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그 자리에 설 수 있다고 믿으며, 그저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면 되었지만... 난 그 이상의 인정과 높아짐을 원했던 것 같다.



이후 참석하신 분들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이왕이면 블로그 이웃분들도 초대해서 온라인 무료 강의를 계획한 것은 무모한 도전이었다.

기회가 주어진 강연 무대에서도 억지로 스스로를 높이려 했던 처절함으로, 마치 내가 무슨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를 높이려 했다.



개인정보를 주고받는 것의 민감함으로, 그저 블로그 비밀댓글과 강의 때 공유했던 노션페이지에서 신청을 받고 강의를 개설하여 링크를 공개했는데...

9명의 신청자 중, 4명이 참여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개설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지만, 신청하신 분들의 간절함을 명분으로 진행했다.



비디오를 켜달라고 부탁하지 않았고, 참여하신 분들이 누구인지, 학생들인지, 학부모인지 구별이 되지 않아 내가 누구에게 얘기하고 있는지 모르는 혼란스러움으로, 강의를 멈추고 채팅창에 정체를 밝히도록 부탁드렸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과 학부모, 중1, 중2 학부모님들이었다. 아이는 토요일 9시 이른 시간에 자고 있어서 어머니들이 대신 참석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뒤늦게 고2 학생도 한 명 참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의 중 내 영어코스를 소개하면서... 이런 강좌 소개가 사기처럼 느껴지시겠지만...

이런 망발을 했다. 정말 좋은 강의라면 그 가치를 높게 설정해도 많은 이들이 몰려들 것인데...

무료라면 그만한 가치가 없거나,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모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서...

신뢰하고 믿으시는 거기까지라는 말로 선택을 존중할 것처럼 하면서, 내 강의와 내 영어코스의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찡찡거렸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이 무겁고 괴로울 때, 이 말씀이 가슴을 때렸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겸손하게 기다리며 때를 기다려야 했는데... 나를 높여주기를 강요하고 있었다니.

내가 설 자리가 아니었음을 인정했어야 했다. 그렇게 강요를 구걸하는 자리였다면 애초부터 자격이 없던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면 겸손하게 내가 가진 역량껏 진심을 다하고, 인정이든 선택이든 나의 소관이 아님을, 그 한계를 인정했어야 했다.



학부모대상 강의에 참석해 주신 우리 학교 부장쌤 한 분은, 강의 후 마이크를 잡고 내가 약장수처럼 말을 하고, 이글 아이처럼 눈빛이 이글거렸지만, 강의할 때가 아닌 평소에는 그렇지 않다고. 너무 매끄럽게 말을 잘해서 사기꾼처럼 느껴지겠지만 정말 진실된 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너무 오지랖인 것 같아서 참으셨다고...

칭찬과 격려의 말씀이었지만... 강의하면서 내가 아닌 페르소나로 사람들을 억지로 이끌어 가려고 가치를 강요하는 듯한 과도한 자신감이 오히려 진실성을 훼손할 수도 있었다는 애정 어린 말씀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 내 앞의 선택지는 둘 중의 하나일 것 같다.



겸손한 마음으로 때가 되어 강연의 자리에 설 정도로 높아지기를 기다리거나,

어떻게든 강연의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는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겸손해지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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