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년 모임을 하며 깨달은 것

by 청블리쌤

우리반에 독감이 특히 더 유행이다. 학부모님들께 비상 문자도 보냈다. 특별히 독감 예방지침에 더 신경써주시고 아이가 아플 때는 평소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해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어제 학년 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수요일 일반고 원서접수를 마감하면서 그동안 애써서 달려온 서로를 위로하는 자리의 의미가 컸다.

조심스러운 마음에 학년부장님께 이렇게 학년담임쌤 단체톡을 메시지를 남겼다.


독감위험지역 담임인데 오늘 저녁 식사모임에 참석해도 괜찮을지요? 알아서 눈치껏 빠질까요?


답장이 바로 올라왔다.

고민되시지요. 저도 반에 독감환자가 있는지라.

하지만 오랜만에 정한 학년회식이고 올해의 큰일 끝의 회식이라 늦추기도 어렵습니다. 아프면 같이 아프면 안 될까요?

누군가 빠진 학년회식은 좀 그래요. 부장이 꼰대여서 이해 바랍니다. 다른 쌤들도 함께 하고 싶어 할 겁니다. 우리는 늘 함께니까~^^


원래 꼰대 아닌 분들이 꼰대인 척하는 거다. 여러 명이 모인 자리가 불편한 MBTI 극강 I인 나는 저질 체력에 허리 통증 등을 안고 그 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원래 학년회식을 즐기지 않는 1인이지만... 부장님 메시지가 감동이었다.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나를 버려두지 않고 끝까지 챙기시겠다는 따뜻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평소부터 느껴왔기 때문에 그 순간 메시지를 보자마자 감동이 되었다.

아프면 같이 아프면 안 될까요?

우리는 늘 함께니까...

이런 마음으로 그동안 학년 담임쌤들과 3학년 학생 전체를 대하셨던 거구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상한 겨울밤, 난 학년쌤들과 초대받은 느낌으로 동행을 했다.

MZ 세대 막내 총무쌤이 짠 코스로 투어를 시작했다. 선생님의 이름을 딴 일명 *** 투어...

내돈내산하지 않을 것 같은 줄 서서 먹는 맛집에 대기하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고 특권층이 된 것처럼 예약한 자리에 단체로 앉았다.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신기함과 맛이었다. 먹으면서 울컥했다.

우리 가족들과 함께 올 형편이 안될 거라는 생각에... 함께 올 수는 있지만, 늘 마트에서도 먹고 싶은 것보다 할인품목 위주로 공략하는 아내의 저항을 이겨내긴 힘들 것이라서. 아이들도 가성비 맛집에 대한 만족감이 더 높은 아이들이니... 나 혼자 이렇게 고급 음식을 먹어도 되는지 드는 미안함은 처음이 아니었다. 회식에서 자주 느끼는 감정이었다.


그저 선생님들의 유쾌한 분위기에 나의 감성은 접어두었다.

짝꿍쌤은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보호본능의 대명사 같은 분이신데... 학년의 유일한 남자쌤인 내가 지켜드리는 게 마땅해 보이는 마당에... 다른 쌤들은 그 짝꿍쌤보고 나를 잘 챙기라는 지령을 늘 전달한다. 혼자 남자여서도 그렇겠지만, 연약한 이미지로 인한 것이었을 것이다. 특히 학생들 인솔한 외부체험 캠프나 수학여행을 가면 난 거의 요보호교사에 준한 대접을 받았었다.

쌤 한 분이 연약한 서로를 의지하며, 누가 더 먼저 쓰러지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조합이라며 유쾌한 분위기를 만드셨다ㅋㅋㅋ


식사 자리에 우연히 학년부장님의 옆자리에 앉았다.

첫 회식 때 알게 된 사실이었는데, 예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담임반 학생은 아니었지만 유독 나의 교육을 잘 따랐고, 너무 사랑스러웠던 제자의 어머님이셨다. 그리고 식사하면서 듣게 된 제자의 착하고 아름다운 성장과정을 듣는 것도 축복 같은 느낌이었다. 그 제자의 사랑스러움과 따뜻한 인성이 다 납득되고 설명되는 시간이어서 의미가 컸다.


식사 중 올해 너무 고생하신 3학년 부장님께서... 이 멤버 그대로라면 3학년 부장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내게 제안을 하셨다. 주위의 선생님들은 적극 동요하셨다. 현 3학년 부장님이 최고의 선택이지만, 너무 고생하시고 힘드셨던 것을 목격했기 때문에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은 분위기에서 부장님보다 젊은 내게 그 강제성의 분위기를 드리우셨다. 내년에도 소위 드림팀이 해체되지 않는 키를 내가 쥐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능력도 없으면서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학년 부장을 2년 연속 했던 직전 학교에서의 이야기로 모면하려 했다... 나이로 서열 6위인 내가? 리더십도 없고 대외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것이 서툴기만 한 내가? 그저 학생들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릇에 감사할 뿐인 내가?

짝꿍쌤만 강연도 다니시고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도록 해주고, 그냥 부장님이 유임하시는 것이 어떻겠냐는 얘기로 내 지원군이 되어주셨지만 결론 없이 끝났다.

말도 안 되는 상상이지만 "제가 3학년 일을 잘 못해서 벌주시는 거라면 내년엔 좀 더 잘할게요"라고 외치고 싶었다ㅠㅠ


겨울비를 뚫고 총무님이 준비한 특이한 분위기의 카페를 갔고 즐거운 대화는 시간제한을 의식하지 않을 것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충분히 늦은 시각에... 또다시 비를 뚫고 한참을 걸어가서 “인생네컷”을 찍었다.

그런 경험이 처음이신 분들이 많았다. 딸과 제자들 덕분에 몇 번의 경험을 한 나는, 설레거나 새롭지 않았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내 역할을 감지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인생컷에 도움이 되도록 혼자서 외모 몰아주기를 해드리는 것... 슬프게도 내가 많이 애쓰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자발적인 오징어 되어주기ㅋㅋㅋ

쑥스러움으로 경계를 오갔던 나를 쌤들은 센터로 몰아넣으셨다. 이제는 정말 외모 몰아주기의 중심에서 난 나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최종 선택받은 네 컷 중 내가 센터인 사진이 3장이었다.


어제 난 부장님과의 친밀한 대화와 학년부장 논란에 잠시 참여한 것 외에는 대화에 거의 끼지 못하고 관객모드였지만, 어제 나의 역할은 그걸로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회식의 분위기와 평소 학년실의 분위기는 많이 다르지 않았다. 웃음이 끊이지 않고, 대화가 잘 이어지는 그 분위기 그대로였다.

서로 마주 보고 한꺼번에 모여서 얘기한다는 차이만 있었을 뿐...

관객모드에서 대화의 내용 자체에 대한 기억보다...

대화의 자세에 대해 생각을 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타이밍을 잡기위해 듣고 있는 것 같은 상황이 한 번씩 눈에 들어왔다.

묻지도 않고 궁금해하지도 않을 자신의 이야기를, 상대방의 이야기에서 자신과 관련된 일부 내용으로 대화를 가로채는 것은 경청의 자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혼자만 심각하게 하면서 자아성찰모드로 들어갔다.

성격 탓도 있지만, 나는 혹시 남들이 궁금해하지 않는 안물안궁의 민폐를 끼칠까봐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강연할 때는 주로 나 혼자 떠들면서...

그러고 보니 그저께 학부모강의 후 마음이 불편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쉬지 않고 나 혼자만의 이야기로 강연을 채웠던 것이다.

듣고 싶어할 얘기보다 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된 건 아니었을지ㅠㅠ

난 충분히 다른 이들의 세밀한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다가가려고 하고 있는가.. 나의 자아와 나의 존재감과 내 중심적인 사고가 그들에게 사소한 상처라도 주고 있던 건 아닌가...

어제 학년 모임은 1년간의 생활의 축약판인 것 같아 내겐 특별한 시간이었다. 감사한 일들이 많이 떠올랐다. 1년 내내, 불편한 존재가 될 수 있는 날 포기하지 않고 받아주고 존중해주셨고, 내년에도 밀어내지 않으시려는 모든 쌤들의 존재 자체가 내게 선물이었다.

두고두고 가슴에 새길 은혜였다. 만남도, 함께 하던 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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