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지오디의 그 노래 가사가 무슨 의미인지 그냥 머리로 짐작만 할 뿐이었는데...
딸이 아침에 밥을 잘 못 먹어서 아침마다 한우 한 장씩 구어 주었다. 동네에 정말 싸게 파는 한우집이 있지만, 그래도 한우는 한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스테이크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딸에게 내 좋아하는 음식의 취향까지 다 양보해 버렸다.
이제는 진짜로 스테이크가 맛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출근 전 딸에게 구워주는 스테이크의 냄새도 날 유혹하지 못한다.
딸이 맛있게 먹는 그 표정만으로 난 세상의 풍미를 다 즐기는 것 같다.
딸이 좋아하는 과일이나 음식이 있으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딸이 좋아하지 않는 음식 위주로 먹는다.
짜장면이 싫다는 것은 실제로도 말로만 하는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었던 거였다. 정말 자녀를 위해 진심으로 싫어질 수도 있는 거였다.
딸은 어제 내 양말을 신고 나갔다. 집업도 내 거였다. 심지어 최근에 산 운동화도 발 사이즈가 안 맞는데도 탐냈다. 내 목티, 조끼, 목도리... 바지 빼고는 자기 취향에 맞다면 다 입고 다닌다.
자매끼리 옷을 나눠 입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내가 딸에게 옷을 빼앗길 줄은 몰랐다.
그런데 화가 나지 않는다. 바보같이 기분이 더 좋다.
한편으로는 원하는 옷을 마음껏 사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다소 덜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이미 오래 전 내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내 앞에 딸들이 있다.
첫애가 태어나기 전, 나는 내 형편 이상으로 책을 사보는 것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내 책 구입 지출의 비율이 달라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기 시작했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리는 책의 우선순위도 딸들이었다. 1, 2 주에 한 번씩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 책 중 괜찮은 책들을 자전거 가득 실어서 빌려다 주었다. 물론 한 번씩 내가 보고 싶은 책도 덤으로 끼어 빌려오긴 했다.
아이들 학원 보내지 않고(못하고) 그 보상으로 책을 어떻게든 끊기지 않게 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실천한 건, 결과적으로 학원비를 대줄 수 있었더라도 최상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26세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1년 6개월간의 공익근무 복무로 아이 갖는 것을 망설였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우리 부부는 자식을 키울 능력도 자격도 부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격을 갖췄기 때문에 모든 준비를 끝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니었다.
돌아보면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못할 짓도 많았고 상처도 주었을 것이지만, 부모 못지않게 아이들도 부모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고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결과값은 계산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었고, 경제적인 여건만으로 100% 충족되는 것도 아니었다.
어릴 때 아이들이 아플 때, 입원했을 때 이상할 정도로 감정이입이 되어 힘들었는데, 지금도 아이들의 아픔이 여전히 극심하게 고통스럽다.
아이들이 독립해가고 있는 시점에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렇게 부모가 되어간다.
https://youtu.be/0HbsJiXbCro?si=dxEJXcLn45SrDO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