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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어 1정연수 강의가 더 특별했던 이유

by 청블리쌤

대구에서만 올해까지 1정연수 강연 4년 차다.

첫해만 담임학급운영 강연이었고, 둘째 해부터 올해까지 영어수업과 학습코칭으로 강의했다.



<제자의 깜짝 연락>

세월 넘어서 계속 연락하고 있는 14년 전 제자로부터 1정연수 강의인 오늘 아침에 연락이 왔다.

쌤 저 진짜 오늘 강사님 성함 보고 깜짝 놀라잖아요!!!!! ㅋㅋㅋㅋ 저희눈 이렇게라도 만날 운명이었나봐요 ㅋㅋㅋㅋㅋ 아 연수중에 한 번도 자발적으로 앞자리 앉은 적 없는데 오늘 앞자리 사수하러 갑니당

이런 이벤트 하시긴가요!!!!!!ㅋㅋㅋㅋ


아침 원고 검토하다가 바로 답을 해줬다.

깜짝 쇼하려고 했는데 들켰네ㅋㅋㅋ 쫌 있다가 봐^^


연수원으로 향하는 길에 톡이 또 왔다.

쌤 아아 드실래용?? 자몽하니 블랙티? ㅋㅋ모닝엔 자허블로 드세요 ㅋㅋㅋㅋ


이렇게 신경 쓸까 봐... 연초에 톡으로 새해 인사를 하면서 1정연수 하게 되었다고 근황을 얘기해 줬을 때, 강의 가서 만나게 될 걸 알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도 정보 불균형은 아닌 게, 1정연수 교재에 강사 이름이 나와있었을 것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되거나, 깜짝 쇼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연수 하루 전에 내가 강사로 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침연수 가는 길이 설레기는 처음이라고, 고딩이 된 기분이라는 설렘을 전해주었다.


나도 교사가 된 제자 앞에서 강의하는 것이 처음이라서 너무 설렜다.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

강의 전에 강의 초대해 주신 담당 연구사님인 선배님께 무리한 부탁을 드렸었다.

선배님 혹 제 강의할 때 청중 한 명 데려가도 될까요?

교사의 꿈을 심어주고 싶은 예비 대학생이 있어서요

무리한 부탁인 거 알고 있으니 곤란하시면 딱 잘라 거절하셔도 되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청강생 환영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강의실에 가보니 청강생의 자리도 따로 마련해 주셨다.


그 청강생의 정체는 둘째 딸...

선배님께 인사를 시키니까, 선배님이라면 부끄러워서 딸을 초대하지 못할 것 같은데 대단하다고 하셨다. 대단한 게 아니라 난 딸과 그냥 뭐든 오픈하는 사이라서 부끄러운 것 그대로 괜찮다고 대답했다.

딸에게는 청강 외에도 2교시 후 쉬는 시간에 선생님들께 유인물 배부하는 미션도 맡겼다. 처음에는 쑥스러워서 망설였는데 한 부당 300원씩 알바비를 주기로 하니 수락했다. 35명이었으니 일당 10,500원이었다.

그 얘기를 제자에게 하니까 너무 짠 거 아니냐고.. 방학 때 친구 만나고 놀고 싶은데 아빠가 가잔다고 따라나섰는데 더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며 딸의 편에 서서 딸을 매우 기쁘게 해주었다ㅋㅋ



<객관화를 잃은 강의 피드백>

강의가 시작되자 딸도, 제자도 3시간의 강의에 몰입했다. 제자는 강의가 좋았다고 대놓고 얘기했지만 객관화되지 않은 말이라서 다 믿지는 않기로 했다.

제자는 내게 교사로서 학생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선생님을 좋아하고 관계가 좋으니까 강의도 기대되고 강의에도 몰입이 되더라면서... 그렇게 바로 객관화를 잃었다는 증거를 바로 대고 있었다ㅋㅋ


그런데 정말 특별한 느낌이긴 했다. 딸은 강의 후 심경이 어떠냐고 내게 물었다. 강의 듣는 이들의 반응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하면서, 넌 어떨 것 같냐고 되물으니 뿌듯할 것 같다고 하는 말에 아빠에 대한 칭찬의 마음을 담은 것 같았다.



<삶과 일치하는 교육과 강의가 되길>

딸이 제자가 있거나 딸이 있으면 강의할 때 다른 점이 있냐고 물어서, 허풍을 떨거나 거짓말을 못하는 거라고 대답하고 나서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난 학교 학생들, 딸들에게 교사로서나 부모로서 일체화된 교육과 학습코칭을 지향해왔다고 확신해 왔다. 공교육 교사로서 사교육 없는 행복교육을 딸들을 베타테스터로 시험해 보았다기보다 상황 자체의 강제성을 힘입어서, 나의 소신을 딸들에게 펼쳤다. 경제적으로 여건 외에도, How보다 Why가 더 중요하고, 우리말 문해력(Literacy)가 중요하다는 확신으로 한 결정이었으며 그 선택에 적어도 나 자신은 후회가 없다. 남처럼 못해 주었다는 미안함만 있을 뿐... 그것을 후회라고 해야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나의 강의는 이론이 아니라 삶으로 구현해온 교육의 사례에 가깝다.

감사하게도 그 교육의 사례에 해당되는 제자와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검증을 받은 느낌이었다.

내가 의도한 설정은 아니었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제자와 딸이 내가 그동안 구현한 교육의 흔적의 반대 증거가 아니라 증인이 되어주기를 바랬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 감격스러웠다. 내 교육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어서...




<제자 사례 예시>

제자의 이야기를 이전의 강의에서도 한 번씩 언급했다. 상담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특히 여학생들은 결론을 내리는 것보다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면서...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야자 하는 밤에 상담한다고 복도로 데리고 나와서, 난 들을 준비가 되었는데, 제자는 말할 준비가 안 되었는지, 어색한 침묵 후에 제자가 먼저 웃으면서 교감이 시작되었고, 교육활동은 이뤄졌다면서, “Connection Before Correction”의 사례로 들었다. 그 이후 제자는 나의 교육을 신뢰하며 힘든 일이 있었을 때도 나와 더불어 꾸준한 성장을 이뤄갔다.


오늘도 그 사례를 얘기하면서, 그렇게 교감을 이뤘던 제자가 14년의 세월의 흐름을 넘어 계속 연락해왔고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다고, 본인의 의사도 물어보지 않고 공식적으로 제자임을 선언해버렸다.

실제 사례이긴 했지만, 그 사례의 실체를 가리키며 얘기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둘째 딸 사례 예시>

둘째 딸의 이야기도 이어갔다.

수능 망치고 나온 언니에게 “언니 이제 재수해야 돼?”.. 나름 걱정과 진심을 담은 말이었지만, 본인이 수능을 치고 나니 언니의 인내심이 대단했었다는 걸 알겠다고. 자기 같으면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고ㅋㅋ


또 딸이 혼자 영어공부하겠다고 버티다가 고1 겨울부터 내게 영어수업해달라는 요청에, 조건을 달았다고. 줌(Zoom)으로 비대면수업을 해달라고 했다고.. (역시나 선생님들이 폭소를 터뜨리셨다) 그렇게 몇 달을 함께 줌으로 공부했고, 야자 마칠 때마다 "오늘 공부하나요?"라는 말을 듣고 함께 공부했던 게 너무 행복했다고.. 그리고 나의 모든 교육 활동의 목표대로 얼마 후 자립했다고.

1등급 4.71%로 어려웠던 이번 수능 영어 1등급 맞은 딸에게 아빠의 은혜를 기억할 거라는 확신에 수능 1등급 누구 덕이냐고 딸에게 물으니까 “I studied alone.”이라고 했다고... 사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교사의 역할은 마중물일 뿐 결국 공부를 해서 성과를 내는 건 학생들의 몫인 거니까.. 교사가 없다면 못했겠지만, 결국 해낸 건 학생이니, 교사가 그 공을 가로챌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런 얘기들을.. 시간 관계상 더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당사자인 둘째 딸을 앉혀 놓고 하는 것도 검증 이상의 감격스러움이 있었다.

선택에 대한 내 사례를 얘기하며, 서울대와 지금 아내와 딸들을 절대 바꾸지 않을 거라고... 선택이 잘못된 것은 없으며 그 이후 난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이런 고백 같은 말들도 공식적인 자리를 빌려서 선언하듯 마음을 전했다.



<딸을 강의에 데려온 이유>

딸에게 교직을 강요할 수 없지만, 옵션 중의 하나라고 마음을 열어두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물론 받아들이거나 결정하는 것은 딸의 몫이다.


청강생이 딸인 것을 알게 되신 담당 연구사님은 딸에게 굳이 이 길을 가라고 권하고 싶냐고 물으셨다. 교사로서의 길이 장밋빛은 아니라는 걸 이젠 교사가 아닌 다른 분들도 알게 되었으니 비밀 같은 특별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선배님도 교직만큼 평등하고 안정된 곳이 없는 것 같아 딸에게 교직을 원했지만,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딸이 원하더라는 말씀도 하셨다. 그 대목에서 딸은 격하게 공감하는 눈치였다.


딸에게는 뒤늦은 아버지 직업체험 같은 경험으로 그칠 수도 있겠지만, 딸의 진로와 생각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아빠가 헌신하며 사명감을 지켜왔던 길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신의 행복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을 담아서. 무엇보다 아빠의 일방적인 권유에도 흔쾌히 따라나선 딸이, 그리고 끝까지 잘 경청해 준 딸이 너무 고마웠다.

단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나의 무리한 억지스러움이 아니었기를... 강의 도중에 조교 한 명을 데려와서 선생님들 자리에 유인물을 놓아드렸고, 딸이라고 소개하며 뒤늦게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긴 했다.



<세월을 뛰어넘는 신기한 인연>

제자도 딸을 보고 놀랐다. 세월의 흐름은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제자의 기억 속의 딸은 너무 어리고 귀여운 이미지뿐이었는데 갑자기 건너뛴 듯 만난 것이니까. 그러면서 다행히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물려받았다고 계속 강조했다ㅋㅋ

그 제자가 고등학생 때 내 딸을 처음 봤을 때, 딸의 나이 즈음 피아노학원에서 아내에게 피아노를 배웠던 아내의 제자였다. 피아노학원에 놀러 갔다가 아내가 너무 귀엽고 예쁜 아이를 레슨하고 있길래 사진을 찍어두었는데.. 나도 그 사진과 사진 찍었을 때의 분위기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얘기하다가 그 사실을 확인하고 사진을 보고 자신이 맞다고 하며 함께 전율했던 기억이 있다. 드라마 같은 만남과 전개이긴 했다.

제자의 눈에도 내 딸이 신기했을 터였다. 자신이 내 아내를 만나 피아노 배우던 시절을 넘어서 피아노 선생님 남편인 나를 고1 담임선생님으로 만났던 그 나이대와 비슷해진 딸의 성장을 보게 된 것이니... 이렇게 인연이 되풀이되듯... 세월은 흐르면서, 그러면서 이어지는 교감과 인연에 대해 감사한 날이었다.


제자의 선생님이라서, 딸의 아빠라서 더 행복한 강의였다.

딸에게는 알바비 포함 5만 원의 용돈을 주었다. 딸은 용돈을 바란 적도 미리 약속한 적도 없지만 주는 용돈을 굳이 거부하지는 않았다. 동행해 준 딸에게 그 이상을 주고 싶을 정도로 고마웠다.



<더 잘하라는 또 한 번의 기회>

1정 연수의 부족한 부분을 만회할 기회를 얻기라도 하듯이, 바로 다음 날 영어 같은 주제로 복직교사 수업나눔 강의가 있어서 강의를 마치고 집에 와서 원고를 다듬었다.

1정 연수 3시간 중 한 시간은 선생님들끼리 수업나눔을 하고 대표 한 분씩 발표시키려고 했는데, 선생님들은 편하게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부디 내 착각이 아니었기를) 혼자서 거의 3시간을 떠들었는데...


내일 있을 복직연수는 열 분의 선생님과의 만남이니 선생님들과 자유롭게 수업나눔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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