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이 상대방의 말을 복붙하는 것이, 영혼을 담아 자기 생각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것보다 때로는 훨씬 더 낫다.
우리는 듣는 것보다 말하고 싶어 하며 대화를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거나 자기중심적인 방향으로 이끌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혼자서 이야기를 다 하면 그만이겠지만, 들어준 것만큼 말할 수 있다는 암묵적 대화의 룰이 있기 때문에 말할 기회를 얻기 위해 듣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어찌 보면 말을 듣는 것은 상대방의 말의 공백을 포착해서 자신이 말할 타이밍을 잡기 위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대화하면 상대방의 말을 바로 자신의 이야기로 덮어 버리는 격이다.
수능영어유형 중에 글의 흐름과 관계없는 문장을 찾아내는 문제가 있다. 보통은 글의 소재를 그대로 가져오지만 결국은 흐름과 관계가 없거나 방해가 되는 문장을 찾아내는 유형이다.
상대방 이야기의 소재를 가져왔다고 해서 그게 올바른 대화의 흐름은 아닌 것이다.
대화를 단절시키는 가장 위험한 말이 “나는, 내가”이다. 상대방의 이야기의 소재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걸 노골적으로 보여주면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을 “라떼”용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예 다른 이들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기 얘기만 고집하는 사람들을 “꼰대”라고 한다.
상대방이 요청하지 않는 한 자신의 이야기는 접어 두는 것이 맞다.
위의 영상처럼 복붙을 하려고 해도 일단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가능하다. 자기 할 말만 머릿속으로 떠올리다가 상대방의 말이 멈추는 타이밍만 보고 있다면 그렇게 쉬워 보이는 복붙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위의 영상에서는 복붙 그 이상의 과격할 정도로 심한 공감의 메시지를 담는다. 같이 분노하고 같이 속상해하면 상대방이 오히려 상황을 객관화해서 볼 여지가 생긴다.
상대방 말의 pause만을 기다렸다가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말을 듣는 이가 의도적으로 pause를 가져야 한다. 심지어 상대방이 말의 순서를 자신에게 넘겼더라도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면 상대방의 심정이나 느낌이 묻어날 시간 없이 자신의 생각만으로 공감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러니 상담의 비결은 충분한 멈춤이다.
상담은 말을 많이 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주 멈추고 진심으로 듣는 것이다.
훌륭한 멘트를 많이 준비하는 노력도 가상하고,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누어 주려는 전문성도 큰 의미가 있지만 특히 상대방이 원하지 않을 때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을 때는 전문성 있는 말보다도 날 것 그대로 받아주고 수용해 주는 자세.. 특히 비판 없이 들어주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니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해당 분야의 전문성 없이도 누구나 더 훌륭한 상담자가 될 수 있다.
무슨 말이든 해야 되겠거든 상대방의 말에 반응을 보여주거나... 영상처럼 복붙대화만 해도 된다. 그렇게 마음이 열리고 나면 그다음의 대화 준비 여부는 덜 중요해진다.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이해받는다고 느끼면 그런 존중되는 분위기에서 서로에게 대한 포용하는 마음이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절대로 정답을 이야기하는 식으로 강력하게 얘기하는 것도 삼가는 것이 좋다. 힘내라는 말도 부담이 될 수 있고, 건강이 안 좋다는 말에 운동을 했어야 했다는 말도 비판이나 책망으로 들릴 수 있으니.. 그리고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뭘 몰라서 상담을 받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들과 상담하면서, 그 분야가 진로의 현실적인 고민이나 교우관계나 이성문제 등의 이슈가 아니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물론 컨설팅이나 코칭 수준이 된다면 학습 방향이나 개별화된 구체적인 코칭이 가능하지만, 그것도 학생 본인이 원할 때에만 유효하다.
생각대로 되지 않아 본인도 속상하고 힘들다면 당장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보다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받는 일이다. 특히 마음이 힘들어서 상담을 받을 경우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끌어모을 자신감조차 없기 때문에, 뭔가를 시작할 여력도 없으니, 일단 힘을 내고 시작할 수 있을 때까지의 멘탈관리가 우선이다. 멘탈이 회복되면 자연스럽게 그다음 단계에 대한 궁금증으로 도움을 청하게 된다. 그 타이밍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주면 된다.
그 타이밍이 참 어렵다. 왜 이 쉬운 걸 안 하는지, 특히 공부를 잘해봤던 어른들은 이해를 못 한다. 아이들은 그 이해를 원하는 것이다. 그 이해 없이는 아이들 스스로 그 좌절을 납득하지 못하고, 그러면 본인의 무가치함에 대해 심각하게 무력해 할 것이다.
엉망진창인 것 같은 그 자리에 계속 머물라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충분히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 본질적인 가치를 일깨우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자나 어른이 아이들을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러면 그 공은 오롯이 어른의 몫이 될 것이니까... 거기서 나와야 할 필요성과 잠재된 힘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사소한 몸짓을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굵직한 성취만을 바라면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사교육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 말고, 스스로의 힘으로만 해낼 수 있는 작고 사소한 일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때까지 응원자와 지지자가 되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려면 아이의 과거의 아픔을 이해하고 그 맥락에서 현재의 자리가 출발점이 되도록 도와주며, 아이의 미래를 함께 바라보는 따뜻하고 여유로운 시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