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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r 05. 2024

학년부장이 되어 좋은 점

담임 쌤들 첫 대면에서 난 내가 왜 그동안 학년부장을 계속 고사했었는지 함께 지내보시면 납득이 되실 거라고, 그래서 그 부족함은 각 쌤들이 채워주셔야 한다고 말씀드렸었다.

그리고 학년부장으로 공식적인 첫날이 운명처럼 시작되었다.

 

담임 첫날은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특히 학교 옮기고 나서 첫날은 더욱 그러하다.

이 학교에 처음 왔던 첫날, 커피 없이는 원래 정신을 못 차리던 내가 오전 내내 커피 한 잔도 수혈하지 못할 정도로 헤맸던 기억이 났다.

학년부장이 되니 그런 분주함을 덜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내게 원래 주어졌던 미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미션은 내게 큰 부담이 아니었다. 매년 담임을 하면서 학급운영 방향을 정리하고, 학부모님 편지를 준비하고, 첫날 사용할 양식을 모아서 미리 준비를 해왔다. 시작 지점에서 제시하는 방향성이 나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는 현실 인식 때문이었다.

 

그런 자료를 블로그에 조건 없이 공개했다. 혹 필요로 하시는 분들께 사소한 영감이라도 드릴 수 있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학년부장이 되니 강요하듯 자료를 나눠드릴 수 있었다. 필요한 분들께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공유할 수 있는데, 학년부장이 되니 공유해 드리는 것이 디폴트 값이 된 것 같아 눈치 안 보고 자료를 마음껏 나눌 수 있다는 즐거움이 큰 것 같다. 

그냥 내가 준비한 것을 학년 차원에서 규모를 좀 키워,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더 얹는 정도의 수고라서 큰 부담이 되지 않았음에도, 받으시는 선생님들은 무척 고마워하셨다.

다른 학년부장님의 요청으로 학년 명렬도 작성해 드렸고, 비상연락망을 온라인으로 받도록 도와드렸다. 이미 해 놓은 것에다가 수정만 하면 되는 일이어서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았는데, 그 사소한 애씀이 학년 전체 담임과 학생들을 이롭게 하는 일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첫날인 어제 아침에 평소보다 40분이나 일찍 집을 나섰다. 담임쌤들께 나눌 출력물 때문이었다.

반편성자료, 자리배치표, 명렬, 첫날 시정 및 업무 흐름도, 급식좌석번호 및 배치도, 학생상담카드 및 타임캡슐꿈종이, 청소당번 및 공식도우미 명단 양식 등 첫날 오전 담임시간에 하셔야 할 출력물과 참고자료를 출력해서 자리에 놓아드렸다. 

어차피 우리반 자료를 만들 때 추가하는 거라서, 몇 배의 노력은 아니었으나...

그걸 선물처럼 받아주신 쌤들은 

"이렇게 길들여놓았으니 유예를 해서라도 자신들을 계속 책임져야 한다"

는 무겁지만 가벼운 농담을 던지시기도 했다. 

 

그래서 학년부장이 되어 좋은 점 첫 번째 

눈치 안 보고 자료를 마음껏 나눌 수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좋은 점

학반의 특색사업을 학년 전체로 확대할 수 있다

단, 담임쌤들의 협조가 필수 선결 조건일 것인데 나는 올해 담임쌤들을 너무 잘 만났다. 모두들 학생들에 대한 큰 애정과 교육적 사명감을 가지고 계시면서 너무도 협조적이셔서 학생들을 위한 교육활이 지속적으로 잘 이뤄질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매일 아침 영어단어시험, 아침독서 시간을 학년 전체로 확대해서 실시하게 되는 꿈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후 청블리댓글부대(매일 글 한 편씩 읽고 댓글 쓰기), 방학 온라인 자기주도학습코칭을 각 반의 희망자를 대상으로 실시하겠다는 양해도 미리 구했다. 선뜻 기꺼이 따라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세 번째 

기획한 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예를 들어 각 반에 쏟아지는 게시물과 홍보물, 고입자료 등의 정리가 번거롭고, 담임쌤들도 매번 홍보물들을 일일이 다 챙기는 것을 잊어버리시기도 하고, 각반의 철 지난 게시물들이 그대로 붙어 있는 등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고민했고, 나름의 해법을 찾았다.

입시도우미를 각 반에 2명씩 선정하여 학년부장인 내가 직접 디렉트하는 것.

매일 종례 전에 교무실 각반 출석부함에서 홍보물과 게시물을 확인하고 교실에 게시할 것, 담임쌤이 직접 전달해야 할 회신이 필요한 가정통신문을 제외한 가정통신문도 학생들에게 배부할 것, 충분히 오래 홍보가 되었거나 시기가 지난 게시물은 바로 제거할 것, 고입자료 파일에 입시자료를 잘 정돈할 것... 게시물이 방치되거나 활동이 이뤄지지 않으면 봉사시간 취소한다는 책무성을 강조한 말까지 더해서 자세하게 안내해 주었다. 

 

이러면 담임쌤들의 업무를 줄이면서도, 학생들의 자치적 활동도 보장하고, 홍보와 게시도 더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 같았다.

 

이제까지 아침 영어단어시험도 우리반에서조차 내가 관여하지 않았다. 도우미를 한 명 정해서 등교 직후 바로 정해진 범위 내에서 선별하여 단어를 불러주는 역할을 맡겼다.

담임쌤들이 시간과 기회를 허락해 주셨으므로, 영어학습도우미 교육도 내 역할이었다.

어제 선정된 도우미들을 불러서 미션을 주었다. 단어장 및 단어시험지 배부, 단어시험지 리필, 아침 단어 시험 실시, 실시 후 다음 날 단어 범위 칠판에 적어두기 등의 구체적인 지침을 주었다. 20개의 범위 중에서 5개 시험출제를 미리 해둘 것과 정확한 발음이 되도록 미리 공부하며 준비할 것도 당부했다.

반 애들이 다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말고 바로 실시해야 모두가 습관처럼 등교하자마자 단어시험지를 준비하게 될 거라는 팁도 주었다.

열정적인 도우미 학생이 제대로 응시하지 않는 학생들은 어떻게 조치해야 하냐고 해서, 그냥 두라고 했다. 안 하면 자신의 손해지만, 강제할 방법은 없다고, 그냥 시험만 진행하라고, 부담을 덜어주고 도우미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마침 내가 작성한 단어장으로, QR코드 찍으면 동영상강의 및 온라인 단어시험까지 응시할 수 있는 데다가, 중간, 기말고사범위에 포함되어 어차피 공부해야 할 거라는 필요성까지 내가 수업시간에 강조하면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학생들에게는 매일 단어시험이 평생 영어학습의 자산이며 습관형성의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니... 훗날 이 모든 것이 선물이었음을 알게 될 거라고 설득하려 한다.

 

 

네 번째

학생들과 교류가 더 확대되었다

타이틀이 주는 만남의 정당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학년부장의 타이틀로 아이들을 모아서 얘기하기가 너무 수월했다. 어떤 사안이든 적극적으로 학생들과 교류할 채널과 통로가 더 생긴 느낌이다. 그만큼 내가 가치를 두고 있는 다양한 교육의 기회가 확대되고 반 학생들을 넘어서 전체 학생들에게 통로가 열린 것 같다. 

이미 이제까지도 영어멘토링 영어멘토링, 청블리댓글부대, 방학자기주도학습 등의 교육활동에서 학반을 초월해서 실시해왔지만, 더 본격적으로 더 큰 정당성과 자격으로 그런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설렌다. 

물론 학생들의 참여 인원수가 프로그램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며 그보다 한 학생, 한 학생을 소중히 여기며 진심을 다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진리를 잊지 않기를... 

모든 담임쌤들께서 이렇게 부족한 학년부장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고 인정해주셨다. 그래서 난 내 부족함에 가슴 아파하기보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소신껏 더 집중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의 부족함은 첫날부터 이미 쌤들이 채워주고 계셨다. 

첫날 만난 학생들에게서도 순수한 열정과 의욕을 마주했다.

학년부장은 학생들과 담임쌤들 없이는 존재 자체에 의미가 없는 자리다. 

그래서 나의 첫걸음은 따뜻했고 설렜고 감사했다. 그렇게 행복교육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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