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많은 이들이 주는 것을 선택한다. 선물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기쁘다는 것은 계산으로 나오는 값이 아니다. 그 간극에는 상대에 대한 호감, 우정, 사랑 등이 존재한다.
받는 것이 당연한 관계는 없지만, 받는 것에 익숙하다 보면 이내 생긴 당연함으로 받는 감사를 잊고 지내기도 한다. 그러다 어떤 이유로든 받는 것이 당연해지지 않게 되었을 때 그동안 못다 한 고마움까지 한 번에 다 갚아낼 것처럼 새삼 고마움을 더 절절하게 느끼게 된다면 슬플 것이다. 뒤늦게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깨닫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걸 빨리 자각할수록 후유증도 후회도 적게 남는다. 뭔가를 당연하게 여기는 속성은 감사와 행복의 반대편에 있다.
우리는 낯선 이들이나 아직 친해지지 않은 이들에게 사소한 일로도 큰 감동을 받는다. 그게 당연한 일이 아니어서다. 물론 이유 없는 호의는 부담스럽고, 거부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서로에게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다. 그 선을 넘나든다는 것은 친하거나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과 의사의 표현이고, 그걸 받는다는 것은 친밀해질 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일 것이다.
최근 서울 올라간 딸이 겪었던 감동 에피소드 두 개...
<에피소드 1>
작은딸이 기숙사에 입사했을 때 룸메이트는 아직 오지 않았다.
딸이 자신의 공간을 정리하고, 욕실에 서로의 칸이 정해지지 않은 공간을 배분하려는데, 배려한다고 생각하며 높은 칸에 자신의 물건을 두고 사진을 찍어 룸메에게 전달했다. 배려의 마음으로 위의 칸에 물건을 두었는데 와서 협의해서 원하면 다시 배치를 바꿀 수도 있다고...
룸메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렇게 해도 된다고. 먼저 온 사람이 임자라면서...
그런데 자신의 키가 177이라서 높은 칸도 괜찮다고...
딸도 우리 집안에서는 키로는 나 다음으로 이인자인데 의문의 일패였다ㅋㅋ
딸의 입장에서는 배려한 게 맞았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난 흐뭇하게 웃었다. 친해져야 할 운명을 받아들인 둘은 만나기도 전에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던 거다.
입사 둘째 날 외출 후에 기숙사에 돌아가 보니 아직도 대면하지 못한 룸메도 외출 중이었는데.. 자기 자리에 이런 게 올려져 있다고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딸 못지않게 나도 감동했다. 이렇게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친구라서 그냥 마음이 놓였다.
<에피소드 2>
딸은 수능 후, 수능 생각을 안 하기 위해서라도 알바에 올인했다.
처음 시작한 알바에서 근무시간 조정이 되어 딸은 알바를 하나 더 구했다.
술집이었다. 그것도 우리가 다니는 교회 뒤편에 있는...
교회 친구들은 부모님은 아시냐며 신기해했다고 했다.
그러나 토마토 생맥주 등을 파는 술집이라도 분위기 좋은 음식점에 가까웠다. 딸은 금요일, 토요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 주로 설거지를 했고, 한 번씩 서빙도 도왔다고 한다.
무엇보다 사장님도 함께 일하는 청년도 딸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직원이라기보다 손님이라는 착각이 들게 할 정도로...
사장님은 스스로를 두목이라고 불리길 원했고, 모두들 딸을 박신혜라고 불렀다. 설마... 맞다. 배우 그 박신혜... 다들 무리수라고 욕하겠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뭐 그렇게 불릴만하다고 얘기해 주었다.
저녁 늦은 시각, 사장님은 아래 사진처럼 매번 다른 음식으로 저녁을 챙겨주셨다고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딸은 서울로 올라가면서 이곳에서의 알바를 그만두는 걸 매우 아쉬워했다.
얼마 전 사장님이 알바비를 정산해서 보내주셨다면서...
교회수련회 때문에 빠진 날까지 월급 입금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보통은 못 받아서 따지듯 얘기하겠지만, 딸은 더 받아서 따지는 것이었는데...
딸은 가족톡에 사장님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캡처해서 올렸다.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
이 일이 아니라도 딸은 매번 6시간 동안 그 힘든 일을 하면서도 너무 행복하게 알바를 다녔다.
특히 밤 12시까지 일하고, 다음날 아침 9시부터 빵집 오픈 알바를 했는데, 아침마다 빵집 알바갈 때 걸어서 10분 거리를 동행해 주면서 그 전날 알바 할 때의 훈훈한 에피소드, 두목님의 아재개그, 저녁 메뉴, 그렇게 받은 환대에 대해 딸은 행복하게 얘기했고 나도 더불어 행복했다. 딸이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났구나... 적어도 가게 사장님에게 직원들은, 알바생까지 포함해서 모두 소중한 인격체였다는 걸 매번 확인했고, 이 메시지는 그 마침표였다.
사장님은 재료와 요리에 정말 진심이시라고... 골목길에 있는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걸 봐서도 알 수 있었는데.. 딸은 저렇게 좋은 재료로 요리하시면 남는 것이 있을지 걱정할 정도였다.
딸이 번 돈.. 그것도 애쓴 것에 대한 보상이니 의미 있고 귀하긴 하지만... 난 그 만남에서 딸이 얻게 된 행복과 안정감에 더 감사했다. 수능 후 힘들었던 딸에게 선물 같은 만남이었다.
사장님이 빠진 날을 의도적으로 더 계산해서 주셨을지 알 수는 없지만...
계산하지 않고 손해 보는 그 마음이 주는 감동도 너무 컸다.
그건 한순간의 연기가 아니라 삶으로 구현되는 것 같았다.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자신의 일에나, 손님들에게나, 일하는 직원들에게나 일관된 따뜻함으로 인간적인 존중심을 삶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에... 나도 한수 배운 느낌이다.
우리의 삶은 손해와 낭비로 점철된다. 손해와 낭비가 있는 지점에 헌신과 인간적 교감과 사랑이 존재한다. 당연한 계산값이 아니라서 감동까지 더해진다.
누군가는 신세 지는 일이라고 꺼리겠지만... 받은 은혜 같은 선물은 또 다른 이들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그것이 문화가 되면 그 공동체는 매우 따뜻해질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알바생일 것이고, 일이 능숙하지도 않은 초보 알바였을 것인데,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존중은 일에 능숙하지 못해 스스로 하찮다고 여길 수도 있었던 딸의 자존감을 높여주었고, 인간관계에 대한 신뢰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난 이렇게 답해주었다.
우리 딸이 정말 사랑 많이 받았네.. 그만큼 너가 사랑스럽기도 하니 이상할 건 없지만.. 좋은 사람들 만나서 아빠도 정말 행복했다.. 아빠가 술을 마실 줄 알아야 가서 매상을 올려주는 건데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