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생(?)에 공존하는 옛 제자들과의 교감

Feat. 제자 카페 소개

by 청블리쌤

<옛 제자 1>

다른 지역에서 교사를 하고 있는 제자가 내게 카스테라, 찹쌀떡 세트를 우리 학년실로 보냈다.

내가 학년부장이 되었다고 부장 가오를 세워주는 목적이었다고. 그중 찹쌀떡 아이템은 수석교사 도전을 강요하는 큰 그림을 담았다고 했다.

22년 묵은 제자의 뜬금없는 선물을 학년실 담임쌤들과 나눴다.

제자는 그냥 쑥스럽게 몰래 올려놓지 말고 티를 팍팍 내면서 드리라고 내게 코치했다ㅋㅋ


제자에게 전화로 뭐 이런 걸 보내냐고 하니.. 당연한 듯 이런 거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이렇게 대답했다.

2년 전 전체 선생님과 반 학생들한테 내 생일떡을 돌렸던 그 제자다.

제자의 마음 씀이 너무 고마웠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2715674448

<옛 제자 2>

우리 학교에는 고등학교 1학년 시절에 영어멘토링, 청블리특보 과정을 수료한 성인이 된 청블리키즈가 있다.

고1 때 내게 영어를 배웠던 청블리키즈인 제자와 지금 한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는 신기한 체험을 하고 있다.

그 제자를 내 수업에 초대했다. 제자만을 위한 일종의 수업공개였던 셈이다.

제자는 세월의 흐름을 건너 뛴 듯 학생처럼 앉아서 여전히 누구보다 빛나는 눈빛으로 수업에 몰입했다.


제자는 수업 후 내게 이랬다.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생활동 전혀 없이, 선생님의 티칭만으로 학생들이 이렇게 수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놀랍다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중3이고, 유독 올해 수업태도가 좋은 아이들이라서 그런 거라고. 그대가 수업하는 중2 수업과 비교해서 움츠려들지 말라고...

그리고 수업에 몰입한 건 내가 아니라 제자의 의욕과 겸손한 배움의 태도였을 거라고...


학생들 사이에 앉아 있는 제자 덕분에 추억 속으로 여행을 떠난 듯,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을 이루는 설렘과 흥분의 순간이었음에 감사했다.



<갓 제자 3>

퇴근 시간을 넘기고도, 칼퇴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학교에 남아 있었다. 전입교사 환영 친목행사를 학교에서 진행하기도 했지만, 이후 부장회식이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친목행사를 다 소화하지 못하고 학년실에 올라와서 업무를 하고 있는데...

올해 졸업생이 불쑥 학년실에 찾아왔다.

이제 막 현실 제자를 벗어난 제자와 작년에 함께 했던 인연을 그 기억을 떠올리며... 현생의 일상을 공유하며... 미래를 함께 그려봤다.

제자는 미리 연락도 없이 발길 가는 대로 학교를 찾아왔다고 했다. 학교는 떠났어도 그리움은 남겨 놓은 것 같았다.

오히려 계획하면 마무리 지을 수 없었을 여정이었을 것이다.



<현생에 공존하는 제자와의 교감을 이어가다>

이미 또 다른 제자들을 만나는 일상 속에서, 동시대가 아닌 넓은 간격의 제자들과 하루 만에 교감을 하면서 난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어우러진 시간을 사는 듯한 축복감을 느꼈다. 제자로 만난 그 순간의 교감과 그때 주고받은 영향력은 영구적이고, 그래서 더 두렵고 떨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화석처럼 굳어지기를 거부하듯 이후의 만남과 연락으로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행복이었다.


아무리 친하게 지냈어도 이벤트 같은 만남이 아닌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가 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귀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헤어짐 이후에 어어지는 그런 인연만이 의미가 있다는 건 아니다.

현생 제자였던 그 순간 이미 만남의 축복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학교에 와 있는 제자가 고등학교 때 동시대를 살았던 학년 동료선생님과 셋이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 후 2차로 오래전 제자가 사장으로 있는 카페에 갈 약속을 잡았다. 카페 사장인 제자에게는 미리 알리지 않은 약속이라서, 불쑥 손님으로 제자를 마주치길 기대하면서.


회식을 부담스러워하며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힘겨워하는 내가, 교사로서 그렇게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인연을 이어가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제자들은 나의 한계까지 넘어서게 하는 특별한 만남의 증거다.


그래서 난 아무리 힘겹고 어렵게 보여도 처음 두 사례의 제자들처럼 훌륭한 제자들에게 우리 팀에 영입하듯이 교직의 길을 권한다. 물론 소질과 적성까지 고려해서... 이 축복을 제자들도 누리며 학생들에게 행복을 전하길 바라면서...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완성하려는 부담은 가질 필요 없다. 완성 수준이 아니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나만의 역할만으로 충분하며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완성해 간다.

준비가 안 된 교사라도 괜찮다. 성장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지만 않는다면 오히려 제자들과의 만남으로 함께 성장할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니...


교사로서의 자리는... 교사 개인의 약점과 한계도 넘어서게 하는 힘이 있다.

행복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다.


<에필로그>

윗글의 초안을 작성한 후 일주일이 지났고...

두 번째 제자와의 저녁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약속한 날 손과 팔의 통증이 심해져서 치료받으려 조퇴를 했다.

그 대신 또 다른 제자의 카페를 제자와 동행하는 동료선생님께 소개해 드렸다.

집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내게 선생님으로부터 카페에 가서 내 이야기를 하니 모르더라는 민망한 느낌의 톡이 왔다.

그래서 바로 카페 사장인 제자에게 전화했다. 카페가 조용해서 알바하시는 분께 맡기고 일찍 나왔다고... 난 웃으면서 상황을 얘기했다.


그런데 바로 카페에 가 있는 선생님으로부터 사진이 전송되었다.

image.png?type=w773


빵이 서비스로 번개처럼 나왔다고...

그러시면서 선생님은 이렇게 얘기하셨다.

아이고 부장님~

제자 힘들겠어요ㅜㅜ

갑질이에요~ㅋ

어떤 곳에서 이렇게 맛있는 빵을 서비스로 줄까요~ㅎㅎ

제자에게 선생님의 사진을 공유했다. 사진을 보고 제자는 이렇게 답을 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햇쮸?

그래서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고마워 쌤들이 맘에 든다고 또 오시겠단다 옆의 쌤은 제자 힘들겠다고 갑질 아니냐고 걱정하시고. 이렇게 맛있는 빵을 서비스로 준다고 감동하시고.

너무 고마웡..

제자 답변

저정됸 당근이쥬. 가게에 있었으면 더 챙겨드렸을텐데..

카페 홍보부장으로 임명하겠어요ㅋㅋ

감사합니다 오늘 조용했는데

나의 답변

그래 기회를 또 만들어볼게^^ 안 바쁠 때는 마음껏 쉬고 충전하렴. 또 봐용^^

갑질과 홍보의 그 어딘가에서 나의 발걸음은 망설임을 거듭하겠지만... 어떤 이유로든 일상에서 마주치는 제자와의 만남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다만, 나의 존재가 부담이 되지 않기만을... 너무 편해서 교사와 제자의 관계가 아닌 손님과 사장님처럼 대할 수 있기를... 그렇게 편하게 대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 나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제자가 나를 홍보부장으로 임명해서도 아니고ㅋㅋ 협찬을 받은 것도 아니지만...

지난 번 제자 카페(김광석길 바람이불어오는 곳) 소개 이후 두 번째로 순수한 의도로 제자 카페 소개... 커피와 직접 구운 소금빵, 베이글, 커피케이크가 맛있는 집...

대구 수성대학교, 동신교회 근처를 지나시는 분들은 한 번씩 들르셔도 좋을 듯...


https://naver.me/xJt7BD47

keyword
작가의 이전글2025 대구지역 고등학교 입학전형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