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해서 명문 대학에 진학한 제자의 어머님과 대화를 하다가 의대 증원을 놓고 반수를 권할까 고민한다고 하셔서 현실을 말씀드리면서...
몇 가지 사항을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답답해하거나 궁금해하는 학생이나 학부모님께 도움이 되고 싶다는 의도였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3393835356
댓글이 달렸다.
나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공교육 교사인 내가 이런 시기에 굳이 이런 글을 올리는 것이 불편하다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답변을 달았다.
불편한 마음 드려서 죄송합니다 공교육 교사로서 저의 부족함을 돌아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책이나 어떤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한 것은 아니었지만 민감한 이슈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겠구나... 그렇게 보는 분들도 많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고심 끝에 글을 내리지는 않았다. 그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더라도 앞서 언급한 학부모님처럼 정보가 필요한 분들이 선별적으로 도움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물론 고3 담임을 하고 있었다면 더 빨리 준비해서 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주었을 것이다. 당장 입시 판도에 영향을 주는 상황일 것이니까.
물론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의대에 진학한 많은 제자들도 떠올랐다.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일일이 연락을 해주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든 교사는 중립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자신의 정치적인 성향이나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적으로 언급하여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
그래서 늘 조심한다. 사실 나의 의견을 학생들이 굳이 궁금해하지도 않으니 굳이 먼저 얘기할 필요도 없다.
교사인 내게 블로그도 중립의무의 영역이다.
나의 의도와 노력으로 결과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겠지만 글의 소재는 물론, 글의 내용 중에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민감하게 다가올 내용은 없는지 늘 살피고 고민한다.
나의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나, 언급하는 대상을 특정하는 일이 없도록 늘 의식한다. 때로는 글을 완성하고도 공개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내가 인플루언서가 아닌 것치고는 과할 정도로. 어쨌거나 이론적으로는 누구라도 볼 수 있는 플랫폼에 올려놓는 것이니, 교사의 중립성이 아니라도 누구에게라도 사소한 불편함이라도 끼쳐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반 학생들에 매일 신문기사나 사설 읽고 댓글 달기 활동을 할 때에도 민감한 사안은 피했다. 혹 토론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양쪽 입장을 모두 보여줘서 각자 판단하고 선택하도록 했다.
사실 난 비겁할 정도로 순응적이다. 교사되기 전에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과 같이 침묵하지 않는 이상적인 교사를 꿈꿨지만 교사가 되자마자 한계를 바로 인정해버렸다.
소시민적인 교사인 나는 그렇게 내게 허락된 영역과 영향력의 범위에 머물며 그렇게 살아왔다.
사교육을 뒤집어엎기보다 공존과 협력을 유지했던 것 같다. 딸들은 학원을 보내지 않으며 소신을 지켰지만 학교 학생들에게는 내 영어 멘토링과 양다리를 걸치라고 대놓고 얘기한다. 물론 학원은 학원을 다니지 않기 위해서, 자립하기 위해서 다녀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그저 나의 소심한 도전이나 도발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자립은 내 수업과 코칭 프로그램의 목표이기도 하다.
둘째 딸 정시 원서 쓸 때 진학사와 고속성장 프로그램을 활용했지만, 내가 사설 컨설턴트 같은 역할을 했다. 고3 담임으로 원서 쓸 때도 사설업체의 자료도 활용했지만 학교에서 상담으로도 충분하도록 애썼다.
수능 대비에서 입시 컨설팅, 학습 컨설팅 영역까지 사교육업체가 주도하는 상황에서 공교육 교사로서 전문성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고 필요한 분들께 가닿기를 소망했다.
얼마 전 지인의 소개로 입시 성과를 부인하고 더 큰 꿈을 품으며 재수를 결심한 자녀의 어머니와 무상으로 상담을 했다. (무상을 강조하는 것은 공교육 교사의 겸직금지를 어기지 않았다는 걸 확실히 하기 위함)
상담 후 감동적인 답변을 받았다. 부모로서도 너무 힘들어서 아들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그 마음을 보듬어 주기로 했다고. 부모로서도 큰 힘과 위로를 얻었다고.
감사했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이렇게 쓰임 받을 수 있다면 금전적인 보상 이상의 감사다.
나의 블로그 활동도 관종의 몸부림일 수도 있고, 올해부터 광고까지 달아서 겸직허가까지 받고 얼마씩 수입(하루에 보통 몇 십 원, 한 번씩 몇 백원, 드물게 어쩌다 천 원 단위로)을 올리고 있어 나의 순수한 의도를 온전히 주장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나눔의 본질은 변함없다고 믿고 싶다.
그런 내게 그 댓글은 중립과 배려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다는 위험 신호였던 것일까?
의대증원이 입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블로그 글은 당장이라도 내려야 할까?
앞으로 어떤 선까지 글을 쓰고, 공개해야 하는 것인가?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한 고민에 생각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