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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Apr 04. 2024

비움의 역설과 사교육

서울과 수원에 있는 대학생 딸들이 한 달만에 집에 다녀간다고 하여 부모로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

사전에 먹고 싶은 메뉴도 주문받았다.


마치 한달 동안 함께 식사하지 못한 아쉬움을 한 번에 해결하듯 그렇게 준비했고, 외식 계획도 잡았다. 혼밥하기 힘든 메뉴 위주로...


한우 스테이크, 냉면, 김치전, 모둠회, 케이크, 칼국수, 치킨, 라면, 탕수육, 야끼우동, 짬뽕, 베이글, 소금빵...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마다 의외로 딸들은 힘들어 했다.


말 그대로 식고문이었다.


음식맛을 모르고 먹는 것 같았다.


배고플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한된 시간에 한정된 메뉴를 넘어서려는 부모의 애씀은 아이들이 음식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했다.



2박 3일 동안 결핍의 축복을 깨닫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비워야 진정한 맛을 더 느끼게 되는 역설....



분명 아이들을 위한 준비와 베풂이었고, 동기도 의심할 여지 없이 선한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 부모의 후회를 덜려는 목적이 포함되어 있음을 직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그런 마음이 사교육 심리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결핍으로 누리는 즐거움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부모 사랑의 부작용, 그 단면일 수도...


자기주도학습은 실패와 좌절을 기반으로 한다. 초라한 시작이어야 지속적인 습관이 형성된다. 넘어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 남들보다 뒤쳐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 아이들은 이유도 모른채 자발성이 희생된 일상에서 힘겨워한다.



거기에 익숙한 아이들도 뿌리를 내리는 내실있는 실력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자신의 성과를 확인받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경쟁을 피할 수 없고, 그에 따른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양적팽창과 속도에만 초점을 맞추면 즐거운 배움의 성장을 음미할 여유없이 매순간 불안감을 떠안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마땅히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결핍을 인정하면서 생기는 절실함이나 자발적인 채움의 의욕은 공급과잉으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을 것이다.



아내는 서울로 올라가려는 아이들의 가방에 반찬과 먹을 거리들을 싸주었다. 더 넣어주고 싶은 것을 고민하여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확실한 건 비운만큼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비우지 않고 더 넣으려는 과잉은 역시 절실함과 자발성을 희생시킨다.



때로 부모와 교사는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배고픔과 관계없이 시간을 맞춰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제일 좋겠지만...


더 좋은 메뉴를 고민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맛있게 식사할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은 배고플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다음 번 딸들이 내려올 때는 배고픔을 감당하도록 할 작정이다.


그러나 그 다짐도 딸들을 마주하면 무너져내릴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딸들의 여유있는 즐거움과 더 큰 행복을 위해 부모의 욕심을 조금은 내려놓으려 애쓸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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