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생들은 교사가 아니라 시간이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그 긴 시간의 흐름에 아이를 위탁하고 기다려야 함을 인정하는 것은 교사의 무력감과 고통스러운 마음비움이 동반되겠지만.
시간이 교사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보다 나를 교사로 믿고 따르는 학생들에게 더 집중하는 것이 옳다.
엄밀히 말하면 그 선택은 교사가 아닌 학생 스스로 한다.
그렇다고 포기한다는 건 아니다. 교사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최소한의 역할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감당한다. 언제든 손을 내밀면 냉큼 잡아 줄 준비도 늘 되어 있다.
학생 한 명으로 인해, 학부모 한 분으로 인해서도 교사의 삶은 불안감과 같은 증상과 마음의 짓누름으로 송두리째 흔들리기도 한다.
아무 역할도 해줄 수 없다는 무기력과 쓸모 없는 것 같은 무가치함, 무의미의 존재감도 교사가 싸워야 할 실체가 된다.
그럴 때는 교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타협할 수 없는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한두 명으로 가려져 있지만 여전히 날 필요로 하는 더 많은 아이들을 의도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백지에 찍힌 점보다 그 외의 공간에 집중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지만, 그게 오히려 자기객관화에 도움이 된다.
나는 요즘 학교에서 수업에도 더 열중하고 학생 멘토링에도 더 집중한다. 생각보다 자주 있는 학부모, 교사, 학생들 대상 외부강의에서의 역할과 선한 영향력의 가능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한다.
그런 의도적인 집중 없이는 내가 무너져내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여전히 가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없으면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인정과 칭찬, 특히 절대 다수의 지지는 내가 추구하는 교육 방향이 아니어야 했다. 나는 나 자신을 넘어설 수 없는 여전히 미완의 존재다. 모든 이들의 마음에 들 수도 없고 모두를 지금 당장 변화시킬 수도 없다.
그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 겸손함이며, 그래서 난 여전히 노력을 멈추지 않고 학생들과 함께 성장할 기회를 얻는다.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 없어서 그저 같이 아파할 뿐이지만, 그래서 더 절실하게 사랑하며,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응원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없는 좌절감으로 주저앉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만 집중하고 싶다. 그 한 걸음의 의미만 생각하고 싶다. 멈추지 않는 걸음이 모여 결국 불안과 걱정도 다 넘어서게 될 것이라 소망하며...
교육의 길은 지금 이 순간의 열매가 아닌 씨를 뿌리고 가꾸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니까.
나를 교사로 필요로 하는 아이들조차도 시간의 위탁이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희망을 품는 것이니까.
당장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더 긴 시간의 개입과 더 오랜 기다림이 필요할 것이다.
최근 컨셉관련 책을 보다가 위로가 되는 글을 발견했다.
평소 같으면 그저 지나쳤을 것인데, 따뜻한 위로가 담긴 종류의 글도 아닌데도 한참 시선이 머물렀다.
역시 텍스트는 읽는 사람들만의 스토리로 무한 확장되는 거였다.
모두 아래의 글이 각자의 사연과 상황에 맞는 위로가 되시길.
컨셉 수업 - 호소다 다카히로
<모든 면에 능한 사람은 컨셉을 쓰기 어렵다>
상식이나 절대 선을 컨셉으로 삼고 싶어 하는 이유는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기 위해서는 때로는 미움받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에어비앤비의 ‘전 세계 어디든 내 집처럼’도, 스타벅스의 ‘제3의 장소’도,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결정하는 동시에 어떤 사람이 대상에서 제외되는지를 명확히 드러내지요.
에어비앤비는 호텔 같은 극진한 대접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스타벅스는 지금보다 흡연자가 훨씬 많았던 1990년대부터 이미 흡연자를 대상에서 배제해 왔습니다. 당시 일본의 카페 문화를 생각하면, 적게 잡아도 주요 카페 이용자의 절반 이상을 무시한 셈이지요.
“모두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면 결국 아무도 기쁘게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대해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 카페를 운영하던 시절을 되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가게에는 많은 손님이 찾아온다. 그 10명 중 1명이 ‘꽤 괜찮은 가게네. 마음에 들어. 또 와야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10명 중 1명이 다시 와준다면 경영은 이루어진다. 반대로 말하면 10명 중 9명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더라도 별로 상관이 없는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나 그 ‘한 사람’에게는 철저하게 마음에 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경영자는 분명한 자세와 철학 같은 것을 기치로 내걸고, 참을성 있게 비바람을 견디며 그것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가게를 경영하며 몸소 배운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큰 사랑을 받으려면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컨셉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각오가 반드시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