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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May 24. 2024

졸업앨범, 아이들의 찬란한 순간을 함께하려는 노력

우리는 매 순간을 기억에 다 담아둘 수 없어서 사진을 찍는다. 영영 익숙할 것만 같았던 현재의 모습이 낯선 과거가 되면 막연한 기억을 사진의 증거로 동기화할 것이다. 



졸업앨범이라면 몇 순간의 단편적인 모습으로 학교생활 전체를, 세월의 흐름을 넘어 떠올리려는 애씀의 결정체다.

물론 학생들은 오히려 원래의 모습과 달라지려고 애쓰기도 한다. 평소보다 화장을 더 하거나 평소 복장이 아닌 것으로 꾸미기도 한다.

코로나가 3년을 관통한 아이들은 졸업앨범을 보며 인지부조화를 느낀다고 한다. 학교에서 마스크를 거의 벗지 않고 생활했었는데 마스크 없이 찍은 사진에 세월이 흐름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낯선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이 아이들은 마스크를 하고 찍었어야 훗날 더 잘 기억이 나겠지만, 그럼에도 마스크를 씌운 사진을 원한 아이들은 없었다.



그래도 졸업앨범을 펼쳐보며 자신의 모습은 물론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자신이 혼자가 아니었음을, 서로를 이해하고 아껴주던 친구가 옆에 있었음을 벅찬 그리움으로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혼자가 아닌 여럿일 때에만 추억이 완성되는 것이니.



어제 우리 학교 1차 졸업앨범 촬영을 했다. 요 근래 가장 더운 날이었다. 폭우로 연기되는 상황보다는 낫다고 위로할 뿐이었다.

반이 11개라서 교복 반별 단체사진, 개인 프로필 증명사진, 자유복 개인 프로필과 조별 사진까지만 이번에 찍고, 가을에 찍을 동복 개인 프로필과 조별 사진, 동아리 사진은 남겨 두어야 했다. 아이들도 지금과는 조금이라도 달라질 다른 모습을 다양하게 남겨두길 원했다.



내가 개입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진행될 것이니 나는 가만히 쉬다가 문제가 생길 때만 나서야겠다는 안일한 생각은 촬영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흔적도 없이 사그라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걷고 뛰면서 현장을 분주히 오갔다. 

졸업앨범 교사 사진을 희망한 분들만 촬영하기로 한 내용으로 블로그 글을 쓸 때 이런 말로 마무리했던 기억이 그냥 몸에 새겨졌던 것 같다.



아이들은 애쓰지 않아도 리즈시절인 그 모습을 영원히 남겨두려 사진촬영에 진심을 다할 것이다. 나도 하루 종일 교내 촬영장을 오가며 아이들의 리즈시절이 영원히 잘 보존되도록 도울 결심을 했다.


정말 아이들은 촬영에 진심을 다했다. 아름답게 기억될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촬영 과정 중에 아이들은 불평불만도 없이 잘 따라줬다.



그런데 조별 사진 촬영 시 기사분께 아이들의 의견이 잘 반영되지 않았고 감정적인 반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 듣고 기사님을 뵙고 말씀드렸고, 이후 업체 사장님께 아이들의 뜻을 전하며 항의 전화를 했다.

사진 전문가의 입장에서 기술적으로 다 수용하지 않은 면도 분명 있었을 것이나 어쨌든 아이들의 마음이 상한 건 사진의 퀄리티에 관계없이 수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했다.

이후 학생회 임원들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재촬영까지 할 정도까지는 아닌 사소한 불편함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들에게는 업체 사장님께 뜻을 충분히 전달해서 2학기에는 좀 더 친절하게 촬영에 임하실 거라고 이야기했다. 



촬영의 과정에 반장, 부반장에게 중요한 미션을 주었다. 

반장 부반장 학생회장 부회장은 등교 10분 전에 와서 단체사진용 의자 세팅을 도우라는 내 지시에 불평 한 마디 없이 행동으로 헌신의 모형을 보여주었다.

반장, 부반장만 휴대폰을 소지하고 단톡방을 만들어 각반의 진행 상황을 올려서 다음 순서 반 아이들이 교실에서 편하게 대기하다가 시간에 맞춰 내려오도록 했고, 네 군데 코스마다 지체되지 않고 바로 진행되도록 부탁했다.

반장, 부반장들은 내가 정해준 규칙에 따라 너무 잘 따라줬고, 수시로 전화를 하면서 일정을 조정하고 대기 시간을 물으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겠지만) 촬영 중 오전에 안정적으로 수업이 진행된 반이 있을 정도였다. 

반 학생들도 반장, 부반장의 인솔에 잘 협조했다.



오늘 아침에 반장, 부반장, 학생회장, 부회장들을 소집해서 아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할 예정이다. 그 감사의 마음이 더 잘 와닿게 작은 간식도 주문해두었다. 



나는 네 군데 코스의 소요시간이 달라 반별 동선이 얽히거나 다른 코스 진행 중인 학반의 또 다른 차례가 되는 등의 변수를 고려해서 수정된 순서를 단톡방에 바로바로 알려주었다.

거의 오전 네 시간 내내 네 군데서 진행되는 상황을 고루 살피면서 반 아이들 촬영장도 지켜주지 못했고(감사하게도 담임의 빈자리는 교생쌤들이 그 이상으로 잘 채워주셨다ㅠㅠ), 3학년 전체 학생들의 인생 최고의 순간이 박제되는 순간을 일일이 봐주며 응원해 주지 못해 아쉬웠다.

그래도 마주치는 아이들마다 그들의 멋짐과 예쁨과 이 순간을 위한 진지하고 진심인 노력을 알아봐 주고 한마디씩 해주며 진심 어린 표정을 지어주었다. 그러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신기하게도 그냥 자연스럽게 그런 표현을 하고 있었다.



졸업앨범 진행과정에서, 촬영 현장에서 학년부장의 무게를 느꼈다. 학년 담임쌤들도 너무 협조를 잘해주셨지만, 부장의 무게는 뭔가 달라야 하는 거라는 비장함을 스스로 짊어졌던 것 같다. 내가 좀 더 애쓰면 아이들이 좀더 행복하고 편안하지 않을까 하는...



촬영 후 수고했다는 작년 3학년 부장님의 격려 메시지에 작년에 얼마나 고생하셨을지 눈물이 나려 한다고 작년에 못다 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어떤 반은 동선이 꼬여서 사진을 먼저 찍게 된 것에 대해서 더 기다려서 원래 순서대로 찍도록 양보하겠다는 의사를 격렬하게 밝혔다. 누가 보면 너무 이타적인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4교시 수업을 안 하고 싶어 하는 의지의 발현인 것은 애써 숨기지 않은 그들의 솔직한 표현이 아니라도 금방 알 수 있었다. 양보가 받으들여지지 않자 개인 증명사진 촬영이 진행될 때 아이들은 최선을 다했다. 기사님과 악수를 청한다거나 일부러 복장을 엉망으로 앉아서 옷매무새를 고친다거나 하는 시간 지체를 위한 귀여운 반항으로... 그 눈물겨운 노력에도 시간 내 촬영을 마치고 그들은 4교시 수업을 들어야 했다ㅋㅋㅋ



반장 부반장들에게는 사전에 순서 진행이 지체되어 수업을 몽땅 빼먹는 상상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그러다가 자칫 7교시 내로 다 못 끝낼 수도 있다면서...

그런데 아이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거의 오전 중에 다 마무리되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뜨거운 오후 시간에 야외촬영을 하지 않게 되어 다행이었다.



오후에 두 개 반 수업이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차라리 수업하는 게 낫겠다며 너무 힘들다는 표현을 수업하지 말자는 말로 대신했다.

애쓴 아이들을 위해 나도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난 선물이라고 생각했지만 고막 테러였을 수도. 그렇다면 참으로 미안한 일이지만... 아이들은 티를 내지 않고 그냥 함께 즐거워해주었다. 어쨌거나 수업진도를 나가지 않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즐거움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 7교시 수업 학반에서 지난번 다 답변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고...

반장에게 내 자리에서 기타를 가져오라고 했다. 

세팅하고 노래하려는 순간 뒷문과 창문이 열리면서 3학년 담임선생님들이 둘러싸서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셨다. 그 반 학생들에게도 특별한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사제동행으로 학년부장 망가짐쇼에 참여하면서 모두가 내 기타와 노래를 함께 잘 참아내면서ㅋㅋ 특별한 교감이 생겼을 것이다. 그 순간 내가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어떤 아이들은 자신의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아쉬움은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그것도 그들 학교생활의 일부임을 받아들일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못다 한 아쉬움은 현실을 사는 지금 이 순간 자신의 몫으로 남겨질 것이니. 아이들은 그 추억을 딛고 더 성장하고 더 행복하며 그들의 삶을 완성해 갈 것이니.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그들의 찬란한 리즈 시절, 그 찬란한 기억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고, 또 행복했다고... 부디 나를 잊지 말아 달라고ㅠㅠ


글을 쓰고 다듬으면서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ㅠㅠ 

졸업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아이들과의 이별을 예고하고 있다는 걸 수차례에 걸쳐서 몸으로, 눈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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