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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Jun 08. 2024

꿈같은 재회, 배움의 만남

존경하는 과선배에게 갑작스러운 전화 연락이 왔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가족동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지 10년 만의 연락이었다.

당장 만날 수 있냐는 물음에... 다음 날 아침 3시간 영어수업이 있어 쉬려는 시간을 포기하고, 10년 동안 이 기회만 기다렸다는 듯이 초대에 바로 응했다.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는데, 10년의 세월을 넘어 선배가 나타났다. 꿈꾸는 것 같은 장면이었고 우리는 반가움에 악수와 포옹을 나눴다.

 

늘 어떤 일이든 선두에 서서 본보기가 되었던 선배였다. 뭐든 두려움 없이 시작하는 그 추진력에 감탄하며, 나는 그 도전의 경과를 살펴보고 나서야 뒤를 따르기도 했다.

점심시간 인문학 독해 특강 가능성도 선배의 시작점을 보고 용기를 냈었다.

전국 기독교사 대회에 선배의 추천으로 서게 되면서 그 큰 무대에서 강연의 가능성도 보게 되었다. 나 혼자 자원해서 할 일은 아니었는데, 떠밀리듯 서게 된 그곳에서 발견한 가능성이었고 설렘이었다.

사대부고에서 함께 성장하며 이뤘던 일들과 은혜의 기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던 교사로서 삶의 변곡점이었다. 

 

연구, 삶, 스포츠, 학생들, 진심을 나누는 모든 분야에 열정이었던 선배는 늘 예측 불허의 삶에 도전하며, 부부 영어교사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하고 3남매와 함께 무작정 미국 유학길에 올라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초청을 받은 것도 아니고, 계획을 미리 다 짜놓고 대책을 마련한 후에 떠난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에서도 배움의 공동체를 하는 등 늘 무대가 좁다고 느꼈던 선배는 불확실한 더 큰 세상으로 발을 내디뎠다.

 

잠시의 만남으로 선배의 삶의 스토리를 다 들을 순 없었지만, 임팩트와 여운은 엄청났다.

 

선배의 만남을 통해 깨달은 건 만남과 배움이다. 선배는 만남을 확장하며 만남으로 인격적인 변화와 성장을 이루는 배움을 삶으로 구현하고 있었다.

 

커피 마니아면서... 초기에 미국에서 어렵고 우울한 시기에 1달짜리 맥도날드 커피를 3주 동안 사 먹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수중에 돈이 전혀 없던 건 아니었지만 차마 돈을 쓸 수 없다고 했다. 

그 심정이 뭔지 대충은 알 것 같았다. 가장의 무게일 수도, 자신의 선택을 온 가족들이 함께 지고 있는 아픔일 수도, 자신을 위해 선물 같은 사소한 것도 허락할 수 없다는 자존감의 상처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이들은 공부를 매우 잘했는데 미국 본토의 명문 대학에서 4만 불 장학금을 받고도 2만 불을 추가로 더 내야 하는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싱가포르 국제대학으로 떠나보내야하는 좌절감과 무력하고 미안한 심정이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본인도 뒤늦게 공부를 하면서, 경제적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아이들의 꿈을 온전히 펼쳐주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

그럼에도 아이들은 꿋꿋하고 당당하게 잘 극복하고 국제무대에 걸맞는 글로벌 인재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기뻤다.

아이들 어린 시절에 우리 아이들과도 어울리고 함께 소풍도 다녔던 기억이 생생해서... 성인이 된 아이들이 상상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 끈이 이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타국에 와서 더 먼 곳으로 아이들 둘을 떠나보내면서 선배는 염평안의 <요게벳의 노래>를 두세소절 이상 부르지 못했다고 했다. 눈물이 쏟아져서...

거리와 스케일부터가 다르지만, 나도 딸을 서울로 유학보내면서 눈물로 쓴 2019년도 글처럼 나도 그게 어떤 느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https://blog.naver.com/chungvelysam/221745645950

선배가 미국에 가서 석사과정을 할 때 나름 한국에서 카투사를 거치고, 영어실력으로 대적할 사람이 거의 없던 실력이었음에도... 과제를 제출하니 교수님으로부터온통 교정부호투성이의 피드백을 받았고... 토론하는 수업에서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우리나라 영어에서는 맞고 틀리고의 정확성을 강조하는 시험 영어에 익숙해져 있어, 자신의 주장을 온전히 펼칠 기회도, 훈련도 충분하지 않았던 탓이다.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의 기본기를 갖추고 영어에 대한 일정 수준을 넘어섰을 경우에 욕심낼 수준이라서, 당장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영어교육에 영어토론이나 에세이 첨삭 등의 방법을 바로 도입하는 건 무리겠지만... 약간의 틈만 있어도 자기주장을 펼치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선배는 자존감의 바닥을 겪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놀라운 건 거기서 주저앉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모든 과정을 잘 이겨내고...

선배는 미국의 한 유명한 주립대학에서 교육행정 및 리더십 박사과정을 지도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한국인이 미국 본토에서 미국인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는 사실이 전율할 정도로 존경스러웠지만, 처음부터 계획했거나, 충분히 준비해서 넉넉하고 여유 있게 진행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 감탄스러울 정도로 놀라웠다.

 

그 모든 걸 삶으로 겪으면서, 선배는 "괜찮다"라는 메시지로 힐링과 위로의 멘탈 코칭까지 하고 계신 듯했다. 박사과정이라고 고민이 없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안 힘든 것이 아닐 것이니... 그들에게 전달되는 선배의 위로의 말이, 그저 말로만 존재하다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삶 자체의 위로로 전달될 것이니... 내가 원래 잘나서,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는 메시지보다, 자신도 힘들었고, 좌절했고, 바닥을 겪었다는 현실 인정부터 극복과 성장의 스토리가 묻어 나오는 공감의 위로가 말할 수 없는 진정한 힐링의 모형이라는 것을 선배는 삶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선배는 한국 영어 엘리트였음에도 미국에서 바로 적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아이들 교육문제 등을 겪어내면서... 틀려도 좀 부족해도 괜찮다는 마음 비움을 통해 스스로 용기를 끌어모으며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틀려도 좋으니 일단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말의 정확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망설이는 것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고, 부족하고 충분치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숱한 시행착오와 아픔과 좌절의 순간들을 넘어 이론이 아닌 삶으로 느끼고 있었고, 그런 서로의 삶의 과정에 존중의 마음을 전하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있었다.

우리 삶의 좌절이나 실패나 실수도 낭비는 아님을... 그 모든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서 이 순간의 자신의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10년을 넘어 다시 만나니... 희끗해진 머리로 확인되는 세월의 흔적 외에도... 한결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꾸준히 자리를 지키면서 성장해 온 인생의 관점과 성장의 모습을 더 객관적으로 서로에게 확인시키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아 행복했다.

 

선배는 내게 미국 자신의 집에서 겨울마다 한 가정씩 초대해서 섬기는 마음으로 잘 쉬다 가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게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지만... 

나의 비행기 탑승 최대 거리는 제주도라고. 차를 타고 이동하고, 여행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담이 커서.. 미국까지는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정중한 초대에 응할 수 없어서 너무 미안했다.

그래서 헤어지는 순간이 더 비장해졌다.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없는 헤어짐의 무게를 그대로 느꼈다.

 

내가 먼저 연락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도 하지만... 이렇게 불쑥 연락할 수 있다는 것, 세월의 흐름까지도 넘어서 그런 연락을 부담 없이 해줄 분이 있다는 것도 예기치 않은 기쁨이었다.

 

나태주의 시가 떠오른다. 둘째 딸이 재수 과정 마무리에 수능을 앞두고 플래너에 구절 일부를 적었던... 그 감동과 울림이 선배의 삶으로도 이어지는 것 같았다. 예측할 수 없어서 더 축복 같은 삶... 그래서 은혜에 기댈 수밖에 없는 삶... 

내게 연락을 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생존을 위한 치열한 삶의 과정에서 닿지 못할 연락이었다고 하면서... 선배는 그 힘들었던 지난날을 웃으면서 회상했지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었을지 난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그 웃음 속에 “잘 살았다”는 다짐 같은 감사가 포함되지 않았을까.

도전과 상황의 정도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사는 일 - 나태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은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날갯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은 잠잠해지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선배에게 글을 공유해드리니 이렇게 문자가 왔다ㅠㅠ

** 글 읽고...

나보다 내 속을 더 세세히 헤아리는 그 관심에 감동하고, "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는 시인의 첫 소절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네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학생들 위한 **의 그 진심 늘 믿었고, 예전보다 더 깊어진 그 사랑이 존경스러워

또 불쑥 연락할지 또 아나

건강히 잘 지내자구


나도 바로 답장했다.

형과의 만남은 이번뿐 아니라 늘 제겐 축복이었어요. 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늘 제게 믿음과 신뢰를 주신 것만큼 제가 성장했어요. 제게 주신 영향력을 생각하니 형의 전공이 형의 리더십과 삶의 모습과도 너무 잘 어울려요. 지식만 전달하시지는 않을 것 같아 더 기대하고 응원하게 되어요.

선물 같은 연락과 만남 너무 감사해요

민호기 목사님 초청해서 함께 부르셨던 하늘소망처럼 우린 반드시 또 만날 거니까요. 그 전에 또 만나면 더 좋구요.

형도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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