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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블리쌤 Jun 10. 2024

믿는 자들과 교사의 우선순위

지난 주일 목사님이 설교 중에 <졸업>이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을 언급하셨다.​


주인공인 1타 강사가 라이벌 학원 부원장 자리와 높은 연봉 약속을 받아 학원을 옮기려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있을 때쯤...


시범수업에 참가했던 단 한 명의 학생이 자신의 수업을 듣고 싶어 등록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에 빠진다.


단 한 명의 학생과의 만남으로 자신이 추구했던 가치와 순수한 가르침의 열정, 그 첫사랑을 회복하듯 주인공은 그냥 학원에 남기로 한다.



목사님은 이건 드라마일 뿐이라고... 현실에서 잘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하면서..


믿는 자들은 이래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연봉이나 조건을 따라 움직이지 말고, 사명감과 소명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고...


한 영혼을 위한 마음의 움직임이라도, 그게 돈의 가치보다 더 클 리는 없는 거였다.


좋은 조건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겠지만 우선순위와 가치관의 문제일 것이다.


목사님 본인도 교회를 옮길 때 조건을 따진 적이 없었다고... 직전 교회에서는 고등부를 하고 싶은 열정만으로 교회를 옮겼었다고...


삶을 통과하는 메시지여서 울림이 더 컸다.


설교를 듣고 감히 나의 교사로서의 삶을 돌아보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저 학생들과의 만남이 더 중요했던 것 같기는 하다.


학생들이 간절히 원하기만 한다면 무료 특강도 서슴지 않고 시행했고, 몰려드는 아이들이 그저 고맙기만 했다.


무료로 수업을 해주는 것이 반드시 교육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강의수당을 거부한 적도 물론 없었지만 어쨌든 내게는 우선순위가 돈은 아니었다.


예전에 영재고 초빙 제안도 수업시수가 적다는 이유로 거절했고, 수석교사 권유도 적은 수업시수와 담임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고려하지 않았다. 늦게라도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라는 선배 교사의 진심 어린 조언에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수업으로 학생들을 만나지 않는 삶은 절대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규수업으로도 모자라 영어멘토링을 19년째 하고 있고 어떻게든 교실 밖에서도 아이들을 만나려 애쓴다.


그동안은 내 주변의 학생들에만 집중했었지만... 이제는 친구와 지인들의 자녀 컨설팅도 해주고... 다른 학교에 초대받아 강연도 하면서 사명감 같은 소명을 이어가고 있다.


세대교체를 이뤄야 할 교직의 막바지에... 티칭과 코칭의 노하우를 후배선생님들께 전수라도 하듯 기회가 되면 어떻게든 초대에 응한다.


한 번씩 먼 거리의 강연도 마다않고 다니는 것은 넉넉히 감당할 만하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남에 대한 간절함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행복하게 하는데 강사비까지 주니 더 감사하긴 하다.


우선순위가 경제적인 것이나 사회적 인식이나 성과에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초대에 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믿는 자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목사님의 설교는 내게 위로와 격려처럼 들렸다.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그리고 그런 순수한 초심 같은 마음을 나이가 들면서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더 확고하게 해주는 동력이 될 것 같아 감사했다.


멘토링하면서 이탈하는 학생들보다, 남아 있는 학생들에게 집중할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단 한 명의 만남이라도 소중하다.


교사들은 낭비 같아 보이는 비경제적인 활동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전혀 의지가 없는 무력한 기초반 학생들을 고객 모시듯이 쫓아다니면서도, 그렇게 효율이 없어 보이는 그 과정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그 아이들에게 어른 한 명의 포기하지 않는 관심의 의미 때문이다.


교사는 인격적으로 학생들을 만나 전인적인 성장에 관여하기도 한다. 본인의 의지와 절실함이 있다면 늦더라도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경로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교감을 이루며, 관심과 애정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주는 건 인공지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성적만을 위한 활동과 노력만큼의 보상만 바란다면...


그것이 합리적으로 보일수록... 교육은 황폐화될 것이며, 공교육은 영영 무기력할 것이다.


난 공교육의 경쟁력을 믿는다. 그 경쟁력의 시작은 낭비와 경제적이지 않은 비효율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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