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고 명확한 글쓰기와 수업

<제발 이런 원고는 투고하지 말아주세요-김태한>을 읽고

by 청블리쌤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를 생활화하고 있다. 구독자가 늘며 공감이나 좋아요 개수에 따라서 은근 책으로 출판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기도 한다. 카카오 브런치는 어떤 의미에서는 출판을 앞둔 잠재적 작가의 커뮤니티다. 실제로 후광효과 없이도 브런치를 통해 출간 작가가 된 사례가 적지 않다.


막연한 생각이라도 그런 고민과 상상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이 재미있을 수 있다. 제목과 <예비 저자를 위한 헛수고 방지책>이라는 부제목처럼 아무나 투고를 해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 투고를 하거나 출판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도움이 될 만한 현실적인 조언과 지침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꼭 책으로 출판하지 않더라도 SNS에서 글쓰기를 계속하는 경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내가 쓰는 글이 일기가 아니라면(요즘에는 일기도 많이들 공개를 하지만) SNS의 글은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래서 최소한의 노력과 독자를 위한 배려가 필요한 것이니...


이 책을 보면서 난 책을 출판해봐야겠다는 생각보다(젊은 시절 한 번 겪어봐서 막연한 환상도 없다) 그저 블로그와 브런치 활동에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했다. 정말 글을 잘 쓰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중들이 원하는 건, 그들이 궁금해하는 작가(혹은 유명인)의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SNS를 통해 유명인이 된 사람들도 포함된다.


소신껏 글을 쓰고 생각을 나누려 노력하지만 나도 블로그 이웃이 탈퇴하는 숫자나 공감 숫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웃 숫자가 줄면 떠나지 않게 하려면 어떤 글을 썼어야 했는지를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난 그저 내 글을 쓴다. 물론 오탈자가 없도록 퇴고의 수고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혼잣말이 되지 않도록 좀 더 친절하게 풀어서 써야 하기도 하지만 그런 내 글이 마음에 안 든다면 떠날 수도 있다는 당연한 일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마음의 평안이 온다. 오히려 더 소신껏 글을 쓰고 블로그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네이버 블로그의 포스팅 중에 "수능수험번호의 비밀" 조회수가 수능 시즌에 갑자기 만 명을 넘어선 일이 있었고, 카카오 브런치에서 "사교육 없이 대학 간 딸의 이야기"가 갑자기 만 4천 명의 조회수를 넘어선 일이 있었다. 영문을 알 수 없지만 놀라운 경험이었고 이벤트로 그칠 거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의 부담이 컸었다.


어쨌거나 나의 글쓰기 대상은 그저 한두 분이라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생각과 체험을 겸손하게 나눌 기회가 있다는 것, 누군가 내 글에 조건없이 반응을 해준다는 것, 생각할수록 정말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이 책의 내용 중 실제적인 지침도 좋았지만 글쓰기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본업인 내겐 아래 두 구절의 잔상이 오래 남아 생각을 정리해 보려 한다.




논문의 저자는 지도교수와 심사위원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나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고 난해하게 풀어 놓았는지에 따라 논문의 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에 한껏 힘을 주어 논문을 씁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글쓰기는 다릅니다. 쉽게 쓰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글이면 됩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쉬운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단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글을 쓰고 나면 여러 번 읽어보고 쉼표 하나, 부사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합니다.

간혹 철학 등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학문을 전공한 교수들이 TV에 나와 알기 쉽게 이야기해 주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으신가요? 이것이 지금 제가 이야기하는 내용과 비슷한 맥락입니다. 지식을 철저히 내 것으로 흡수해(자신의 수준을 발견하고) 정리한 뒤(자신 있게 쓸 수 있게 정리한 뒤) 쉽게 풀어내는 것(쉬운 문장으로 쓰는 것)입니다.


(중략)


글을 ‘짧고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세요. 저자가 자기 자신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독자들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덕분에 글을 쓸 때나, 수업을 할 때나 난 논문을 쓰는 것처럼 힘을 주어 쓰거나 말하지 않는가를 돌아보았다.

예전에 어떤 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무개 선생님은 아는 게 너무 많다는 건 알겠는데, 수업 듣는 저는 한 개도 모르겠어요. 쌤은 아는 게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정말 이해가 잘 돼요."

칭찬하는 말인지 아닌지 잠시 당황했었다. “나도 나름 공부도 계속 열심히 하고 있는 영어전문가라고!”라고 변호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면서 그저 웃어주었다. 좋은 의도로 한 말이니까...


그러고 보니 교육의 많은 분야가 지식 자랑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학원에서는 어려운 걸 할수록 아이들과 학부모님들이 학원을 더 높게 평가하고, 영어문법은 지식적으로 많이 가르치고 공부해야 문법을 제대로 하는 것 같고, 학생들도 영어 단어장을 좀 더 어려운 걸 들고 다녀야 좀 더 있어 보이고 실력향상의 효과가 드러나는 것 같고... 교사들도 이왕 내가 알고 있는 거 더 가르쳐주면 좀 더 실력 있는 교사가 된 것 같고...


사대부고에서 교생지도를 할 때 교생선생님들도 그런 유혹에 많이 빠지곤 했다. 그때마다 난 이런 방향으로 조언을 해드렸던 것 같다.

“선생님이 준비하신 모든 노력과 수고를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쏟아낸다면 아이들은 하나도 기억을 못 하거나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어요. 교재연구하신 것 중에 덜 중요한 것은 잘라내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잘라내야 다른 것을 살릴 수 있어요. 마치 발이 썩어 들어가기 시작할 때 발끝까지 살리려고 하다가 전체를 잃는 일일 수도 있는 것처럼요. 그리고 중요한 내용을 남겨두었더라도 교사의 시간낭비를 통해 압축하고 단순화해서 예술작품 같은 수업을 만드는 거예요. 곰탕을 오래 우려내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요. 매일 똑같은 내용을 곰탕으로 우려내서 반복하라는 말로 오해하지 마시구요.ㅋ 한 시간 수업을 위해 10시간을 우려내야할 수도 있어요.

수업은 교사의 만족이 아니라 아이들의 만족감을 위해 하는 거예요. 설사 교사가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오해를 받더라도 아이들이 소화해낼 수 있는 용어와 눈높이와 이해 수준으로 전달해야 해요.“



책에 이런 구절도 있었다.


그는 당연하다는 듯 직관이라는 단어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1~2분 정도 설명을 했지만, 저는 그 내용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명심하세요. 설명이 장황해지면 '모르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과 '알고 있는 것 같은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저자조차 자신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는 원고가 많습니다. 이럴 때 제가 예비 저자에게 "이 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보시겠어요?”라고 묻습니다.

예비 저자가 글을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 글은 매우 명확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을 쓰기 전에 반드시 이 글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해 보세요.



말이 장황하다는 것은 자신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교사가 수업시간에 장황한 설명을 늘어지게 한다면 아이들은 그 어딘가에서 같이 헤맨다. 학생이 질문을 했는데 답변이 길어진다는 건 정답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회피하고 있는 중인 거다.

소위 사교육 일타강사에게 학생들이 열광하는 것은 간결함과 명확함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그저 삭제하고 생략한 후 남겨 놓은 한 가지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고민과 연구로 압축된 간결함이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큰 임팩트로 다가온다.


내가 강연할 때마다 자주 언급하는 그림이다. 얼핏 둘 다 비슷해 보여도 피카소 그림과 6살 아이의 그림은 완전히 다르다. 교사의 수업은 피카소 그림 같은 고도로 압축하여 단순화된 예술작품이어야 한다.

말과 글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하기는 더 어렵다.

피카소말그림.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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