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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방학, 휴식의 양면성

복직연수 강의 마치고

by 청블리쌤

어제 이번 여름방학 중 유일한 강의였던 대구 영어교과 후반기 복직예정교사 연수를 다녀왔다.

손목 통증도 계속되고, 한 번씩 손님처럼 찾아오는 가벼운 돌발성 난청으로 약물치료와 휴식이 필요했던 방학인데, 쉬면서 오히려 침체되는 느낌이 든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 외의 즐거움은 죄책감을 동반하며 어떻게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낭비 없이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듯, 늘 의미 있고 생산적인 일에 매달리려 하는 자신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냥 이 순간의 휴식을 누리면 될 것인데, 매 순간 의미와 생산성을 얻어내지도 못하면서 늘 마음의 부담이 가득하다.

방학 동안의 긴 휴식이 신체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충전의 과정임은 확실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정신건강에는 해로운듯한 느낌까지 들 정도다.

교사가 되어서도 코로나 전까지는 고등학교에서,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은 짧은 휴가 외에는 거의 방학보충수업을 하면서 지냈다.

중학교에 와서도 방학이 수업과 강의로 채워지는 것이 체력적인 부담은 있었지만,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침체되지 않았던 느낌이었는데...

수업과 강의 일정이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이번 여름방학은 달랐다.

그래서 방학 일정이 빡빡했다면 엄두를 내지 못했을 학부모 및 학생 무료 영어학습컨설팅을 블로그로에서 신청받았고, 방학 기간 중 우리 학교 학생들과 온라인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 같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나의 가치가 증명되지 못할 것처럼...

어제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교 학생과 전화상담을 했다. 학습 진도와 속도, 열정으로 비춰지는 갖가지 애씀과 노력에 대해 불변하는 자신의 가치를 믿으면서 본인이 감당할 수 있으면서 진정한 배움의 기쁨이 일어나는 행복한 학습여정이어야 한다는 나의 조언은 나에게서 나와서 나를 향한 이야기였다. 아직 불완전하다는 자책과 여전히 노력이나 성취가 부족하다는 부담감으로, 지금 이 순간의 기쁨과 매 순간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나를 향해 충분한 휴식과 여백조차 의미 있으며, 그걸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학생에게 얘기하는 척하며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었다ㅠㅠ

복직연수 강의마저 없었다면, 그래서 연수를 준비하고 고민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오히려 더 힘들 뻔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허탈한 허전함도 느꼈다. 그래서 더 감사한 기회였다.

이번에는 선생님 세 분과 둘러앉는 분임토의 세팅이라서 연수 시작 전 선생님들의 상황과 현재의 고민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 편안하게 교감을 이룰 수 있었다.

세 시간 동안 급격한 변화에 대한 적응에 초점을 맞추면서, 공교육 교사로서 매시간 의미 있고 재미있는 수업을 하기 위한 원리와 이해 중심의 수업 설계 방향, 학생들과 자녀들의 자기주도학습을 돕는 학습코칭을 사례를 통해 전달드렸다.

몰입이라는 말로 묘사가 적절하지 않을 정도로 세 분 모두 세 시간 내내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이시면서 (나 혼자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내 이야기를 경청하셨다. 그럴 수밖에 없는 좌석구조와 래포형성의 덕을 좀 본 것 같기도 하다.

강의 중에 수업설계와 학교수업에도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내 자료와 영상 평생 무료 이용권과 1회 상담권을 드린다는 농담 같은 제안에 쌤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뭔가 특별한 혜택을 받는 느낌이라면서, 아침에 연수 올 때 무거운 기분이 보상받는 것 같다고...

부디 진짜 혜택이 되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마칠 때 사전에 준비한 내 코스의 영어자료 유인물과 제본한 인쇄물도 응원의 마음을 담아 선물로 드렸다.

명함도 함께 드렸지만 늘 그래왔듯이 인연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선생님들의 성함을 기록해두며 만남에 큰 의미를 부여했고 진심이 담긴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내가 뭐라고 이런 귀한 자리에 초대를 받는 것인지, 횟수를 거듭할수록 내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걸 더 실감한다. 대상과 인원에 관계없이 그저 감격스러울 뿐이다.

남은 방학 기간, 의미 없어 보이는 휴식, 생산적이지 않아 보이는 삶의 여백... 그 숨겨진 의미와 생산성을 찾아보려 한다. 휴식이 이토록 애써야 하는 것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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