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대학에 진학한 둘째 딸은 첫 학기 마치고 방학인데도 댄스 동아리 활동 때문에 서울에 가 있다.
어제 딸과 일상적인 통화를 했다.
"지금까지 학교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
라는 딸의 말이 행복감으로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평소 들었던 얘기로 그런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단정적인 언어로 듣게 되어 너무 기뻤다.
딸은 수능 전에 Day6 멤버인 원필의 <행운을 빌어줘> 노래를 들으며 수능대박을 기도하는 마음이었는데, 수능 망하고 친구 집에서 이 노래를 눈물로 끝까지 다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수능 전의 그 기대감과 희망이 산산이 부서진 느낌 때문이었을 거다.
https://youtu.be/5gR8kqgv9oc?si=uw7mDGLZvSnjARNF
내 발 앞에 그려진 출발선
이젠 딛고 나아갈 그때가 된 거야
앞으로 총 몇 번의 몇 번의 희망과
그리고 또 몇 번의 몇 번의 절망과
차가운 웃음 혹은 기쁨의 눈물을
맛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행운을 빌어 줘
내 앞길에 행복을 빌어 줘
계절이 흘러 되돌아오면
더 나은 내가 되어 있을 테니
기대해 줘
- 원필의 <행운을 빌어줘> 가사 중
그리고 대학 한 학기 마치고 여름방학 동아리 수련회 가는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이 차올랐다고 했다.
수능 끝나고 들었을 때 이렇게까지 행복해질 줄 알았을까? 하면서 지금 현재의 행복감에 감격해하는 마음을 내게 전했다.
그 얘기를 들은 나의 마음은 행복으로 녹아내렸다.
딸은 대학 첫 학기 22학점을 수강하면서도, 거의 매일 있는 댄스 동아리 연습에, 뮤지컬 연합동아리 안무감독에, 틈틈이 댄스 학원에 가서 댄스를 익히면서 그동안 학업으로 미뤄두었던 댄스로 충만한 꿈같은 삶을 살고 있다.
대학에서 너무도 좋은 친구들과 선배들을 많이 만나서 교감하며 삶을 배우며 성장하는 그 모든 순간이 다 특별했다.
여름 방학에 주 4일, 거의 하루 종일 댄스를 배우고, 2학기 공연 연습을 하면서, 댄스 자체도 즐겁고, 모여서 함께 나누는 수다의 향연도 재미있고,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뜻을 맞춰 함께 안무를 짜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넓혀가는 것도 재미있다는 딸의 일상을 나누면서 통화 끝에 모든 순간 행복하지 않을 겨를이 없는 것 같다고 함께 기뻐해 주었다.
얼마 전 딸의 블로그에서 봤던 종강 기념 배경화면이 떠올랐다.
딸의 삶을 닮은 사진과 홈화면 문구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불가능해, 자존심이 말했다
위험해, 경험이 말했다
해결책이 없어, 이성이 말했다
한 번 해보자, 심장이 속삭였다
- William Arthur Ward
영어로는 이렇게 번역되었다.
It's impossible, says Pride.
It's risky, says Experience.
There is no way out, says Reason.
Let’s try, murmurs the Heart.
딸은 불가능해 보인다는 자존심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댄스를 마음껏 할 수 있을 인서울 명문대를 목표로 노력했지만 모의고사 때마다 노력을 비웃듯 증명되지 않는 현실에서, 더 이상 자존심이 그 이상의 노력을 허락하지 않으려 할 때, 딸은 내게 울면서 물었다.
정말 가능하냐고.
경험적인 통계로 볼 때나 이성적인 추론으로 볼 때 위험하고, 방법이 없어 불가능하다고 말해주는 것이 오히려 정답 같던 그 상황에서...
난 딸에게 늘 확신을 주었다.
그렇다고. 정말 가능하다고...
반복되는 좌절에 딸은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따지듯 묻기도 했다.
난 차분하게 근거를 얘기해 주었다.
내 말에 확신이나 설득력이 있었다해도 딸 스스로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딸은 아빠의 확신에 찬 말을 듣기 전부터 심장의 속삭임을 이미 듣고 있었을 거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빠의 말을 귀가 아닌 가슴으로 들을 수 있었던 거다. 그런 마음을 먹는 것과, 노력을 멈추지 않은 것도, 모두 딸 스스로 자기주도적으로 한 일이다.
난 딸의 그 마음을 확인시켜주는 역할만 하며, 변함없이 내 자리에서 응원과 격려만 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딸은 삶 자체로 그 모든 걸 증명해냈고, 본인의 치열한 노력으로 얻어낸 그 무대에서 행복의 최대치를 넘나들고 있다.
딸이 진학한 숙명여대는 애초에 목표도 아니었고, 계획에도 전혀 없었다.
그러나 수능 후 평소 성적을 받지 못한 아쉬움은 현실적인 선택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한 미련이라는 것을 한참의 방황과 고통 속에서 받아들였다.
딸에게 전화통화할 때 숨겼던 나의 본심을 얘기했다.
수능 망치고 정시 원서 쓰기 직전까지 딸의 속상함의 장벽 때문에 현실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정시로 성균관대 이상을 노릴 수 있는 성적이 꾸준히 나왔지만, 수능을 망치고 보험으로 내놓았던 중앙대 논술을 도전하기 위해 상경한 날...
중앙대 논술도 합격권일 거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100% 장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실제로 8명 정원에 12등 하면서 간발의 차이로 결국 불합격하긴 했다) 혹 논술 떨어지면, 정시로 가능한 대학 중 하나로 숙명여대를 생각하고, 논술 응시 후 일부러 딸과 함께 숙명여대 캠퍼스를 둘러보고, 숙명여대 근처에 있는 삼일교회에서 저녁예배를 드리고 귀가하는 계획을 짰던 거라고...
그때 이미 수능 가채점 결과를 분석했고, 중앙대가 안 되면, 숙명여대도 옵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캠퍼스를 일부러 둘러보면서 나도 딸도 현실로 받아들였음 했던 거라고. 그 과정에서 딸의 좌절감 만큼 내 가슴도 아파왔지만, 함께 저녁예배 드리면서 오히려 그 인도하심과 그동안의 은혜에 눈물로 감격했었다. 이 곳이 딸의 캠퍼스와 교회가 되게 해달라는 소원의 기도로...
거의 선택의 여지가 없던 옵션이었지만, 그 당시 나도 딸이 이렇게까지 행복해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일단 입학을 하더라도 최소 반수를 하게 될지 모르겠다는 상상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입학 이후 딸이 자주 전해 오는 일상이 내게는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딸 주변의 친구들과 선배들이 이미 실명으로 내게도 다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주저앉을 이유는 없다. 언제나 또 다른 기회가 기다리고 있으며, 알고 보면 계획에 없던 그 우연 같은 현실이 내게 가장 행복한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니...
딸이 인용한 작가의 다른 명언도 가슴에 와닿았다.
The pessimist complains about the wind; the optimist expects it to change; the realist adjusts the sails.
비관론자는 바람에 대해 불평하고, 낙관론자는 바람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며, 현실주의자는 돛을 조정합니다.
수능 성적에 비관주의자가 되었지만, 삼수를 하려는 낙관주의자를 거부하고, 대학 생활 하면서 비관주의자에서 벗어나 현실주의자로 지금의 현실에 최선과 진심을 다하고 있는 행복한 딸에게 전하는 칭찬과 격려의 말처럼 들려서 너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