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형이상학, 문자(Feat.교육의 목적과 난점3)

by 청블리쌤

<교육과 형이상학>

형이상학을 이루고 있는 ‘절대 수준의 논리적 가정’은 외양으로 나타나 있는 현상의 논리적 가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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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가르치는 여러 교과는 모두 그 ‘절대 수준의 논리적 가정’을 활용하는 일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며, 그 일을 가르치되 점점 그것을 탐색하는 데에 접근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계열화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가 있다는 것을 믿게 되는 것은 오직 그 계열화된 단계를 성공적으로 밟았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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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 원인’을 믿는다는 것은 외양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실재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외양에 머물러 있으면서 부단히 그 저편에 있는 실재로 눈을 돌리려고 노력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저자는 교육의 본질을 형이상학으로 설명한다. 플라톤의 이데아와 주희의 성리학도 일관되게 끌어온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되는 것과 그래서 얻게 되는 믿음은 교육의 난점이지만 반드시 넘어서야 할 여정이라고 외치는 것 같다. 눈에 보이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초월해야 절대 수준의 논리적 가정을 마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 여정은 반드시 계열화된 단계를 성공적으로 밟았을 때 가능하다.


저자는 또 종교적인 믿음과 비교하면서 설명을 이어간다.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어서 인용하지 않았지만, “종교는 믿음에서 시작하고, 교육은 믿음을 목적으로 한다”는 주장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교육에서 믿음이 목적이라면 당장 믿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과정은 아닌 것이다. 믿기지 않아도,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전제가 되는 여정이도 하지만, 도달점이기도 한 것이다.


영어공부를 하면서 성적 향상을 눈에 보이는 목적으로 두었을 때는, 목적은 구체화되었지만 실현과 성취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으며 대개는 반복되는 목표에 미달되는 좌절감을 겪어야 한다.

난 영어 티칭과 코칭의 목표를 “영어 문장이 보이는 것”으로 구체화한다. 그러나 당장 어휘, 문법, 구문 학습 등의 퍼즐이 모여도 확신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멀고 긴 여정이다.


물론 영어공부의 목적으로 내가 설정한 것은 형이상학적 사고의 도달점은 아니다.

저자는 교육의 목적을 이렇게 말했다.

교육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말하여 형이상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있으며, 형이상학은 교육을 통해서만 그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영어 문장이 보이는 내 영어 교육의 목표는 그 자체로 영어문장을 통해 형이상학적 사고를 이루게 할 도구와 수단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영어 교육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열화된 단계를 밟아야 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티칭을 통해 영어문장으로 형이상학에 이르는 나의 삶의 모형과 사고의 유형을 학생들에게 구체화시켜 보여주는 것만으로 아이들이 결국 이룰 수 있다는 믿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 수준의 사고에 이르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형이상학적 교육과 상관이 있는 것일지... 좀 더 나의 생각이 더 자라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문자와 교육>

문자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누구에 의해선가 일단 산출되면 그 순간부터 공동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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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서 문자가 ‘지혜의 실재가 아닌 외양’만을 전달할 수 있다는 위험을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마도 시험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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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산출하는 그 언어가 과연 학생 자신의 지혜를 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동의 소유물로 굴러다니는 것을 학생이 되받아내어 놓은 것인지 알 길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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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의 결과는 기껏해야 학생이 교육내용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만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을 뿐, 학생이 교육내용을 잘 배웠다는 증거로는 결코 사용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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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르치는 일이 곧 시험에 나오는 문제에 답을 하도록 하는 일로 비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서 먼저 가르치고 그 다음에 시험을 한다는 정상적인 순서가 거꾸로 되어서,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배운다는 식으로 생각이 전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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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라는 것은 주로 책으로 하는 것이고, 책으로 공부를 할 때 흔히 사람들은 책에 나와 있는 말을 외우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른바 ‘언어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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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뜻 모르고 받아 하면서도 무엇인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남의 말을 외우면서도 그것이 자기의 말인 양 착각 또는 가장하는 사람들, 바로 이런 사람들을 언어주의 교육은 길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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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실물교육’이 끊임없이 강조되어 온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합니다.

.. 루소의 <에밀>에서처럼 언어에 대한 편견은 루소의 일관된 교육이론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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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론에서는 인식의 기초를 이루는 개념은 구체적인 사물에서 공통적인 속성을 추상해서 얻어진다는 가정을 하고 있습니다.

.. 경험론이 옳다면 개를 여러 마리 보고 공통 속성을 추상하기 전에는 아무도 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초기 AI가 개를 인식하는 방법은 경험론이었다. 데이터를 축적하여 구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데이터 축적만으로 구별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AI로 하여금 그 경험론을 넘어서게 한 것이 딥러닝, 전이학습, 강화학습, 데이터 증강 등의 방법이었다.

저자는 소위 경험론에 기반한 실물교육으로는 ‘힘의 법칙’ 등의 추상적인 법칙을 배울 수 없다고 단정한다. 아이들에게 시소를 타면서 실물교육을 고집한다면, 늙어 죽을 때까지 시소를 타본들, 힘의 법칙을 말로서 듣지 않고서는 스스로 깨우칠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교육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존 듀이가 루소의 경험론, 실물교육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듀이는 ‘책에 의한 교육’, ‘문자에 의한 교육’이 ‘나쁜 교육’의 대명사인 것처럼 주장한다는 것이다. 듀이에 의하면 언어는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하는 일, 즉 실제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며, 그 맥락에서만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교과지식이 어떤 실제 문제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지를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듀이의 이론은 ‘프래그머티즘’ 또는 ‘도구주의“라고 한다. 듀이는 문자에 의한 교육을 계급사회의 유물로 보며, 직업교육과 인문교육의 구분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민이 평등한 민주사회에서는 누구나 실제적인 활동에 종사하고 있고, 지식은 그 활동을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자교육은 실용성이 없어 보일수록 타파해야 하는 양반의 특권으로 여겨진 것과 맥락이 통한다.


언어를 통해 완전한 지식체계를 흡수하고 교육의 정수를 온전히 다 받아들이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렇다고 더 큰 한계를 가진 실물교육을 고집할 수는 없다.

저자는 브루너의 지식의 구조를 언급하면서 언어의 한계를 유일한 교육의 자료로, 개념적 수단으로 어떻게 지식을 내면화하며 교육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저자의 긴 설명을 몇 문장으로 요약함)


브루너는 듀이와는 달리 교과는 언어나 그 밖의 상징체계로 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교과는 인간의 상징적 조작의 결과로서, 교과는 각 학문 분야별로 하나의 독립된 성격을 가진 총체적 조직, 즉 ’구조‘를 이루고 있다. 교과 각각의 지식 요소는 상호 관련을 맺으면서 총체적 구조로부터 그 성격을 부여받는다.

이런 교과는 학생이 배우기 전에는 바깥에 있는데, 이는 언어나 상징체계가 학생의 밖에 있다는 뜻이다.

교과를 배운다는 것은 학생이 그 바깥에 있는 교과를 ’내면화‘하는 것, 자기 몸 ’안‘으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 교과에 들어 있는 사고방식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것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개념적 수단을 통해 교과가 요구하는 안목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볼 수 있다.

교과의 의미는 학생이 궁극적으로 그것을 내면화했는가에 달려 있다.

학생들은 성현들이 무덤까지 가지 못하고 남겨 둔 찌꺼기를 자료로 해서, 성현이 가졌던 ’안목‘을 자기 것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찌꺼기를 남기도 무덤으로 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육의 필요성, ’필연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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