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똑같은 일을 한다는 것은 교직의 본질에 해당하는 특징이요, 그와 동시에 교직을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직업과도 구별짓는 특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학생들에게 교과를 가르칠 때, 우리는 낱낱의 지식을 가르침으로써 그 지식에 전제가 되어 있는 ’삶의 자세‘도 동시에 가르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학생에게 현상을 보도록 가르치면서 그와 동시에 현상을 보는 것이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교과의 의미에 관하여 한 줄기 희미한 서광이 비칩니다. 그 희미한 빛은 교사의 삶의 자세로부터 그 학생이 받은 감명에 의하여 더욱 강화됩니다. ’아직 확실히는 모르지만, 저 선생님이 저토록 열렬히 가르치는 것을 보면 무엇인가 틀림없이 좋은 것이 있는 모양이야. 나도 한 평생 저 선생님처럼 저 교과를 가르치면서 살아야지‘하고 학생은 생각합니다. 이 학생이 사범대학에 가서 교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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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교사가 되겠다는 학생에서 그 성공의 가장 찬란한 증거를 발견합니다. 그 학생이야말로 그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육학적 관점에서) ’비정상적인 상태‘에서는 현상을 보는 일에 능력도 관심도 없고,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라는 믿음은 더욱 없는 교사가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르치는 일의 의미에 관해서보다 그 일에 대한 사회적 대우에 더 신경을 씁니다.
교육의 목적을 가장 구체적으로 말하면, 그것은 훌륭한 교사를 양성하는 데에 있습니다.
교육의 정상화는 교육적 관계의 정상화를 뜻합니다.
교육적 관계는 교육의 가치, 또는 교과의 가치를 매개로 하여 맺어진 관계입니다. 그 가치를 완전히 갖추었다는 뜻이 아니라, 교사 자신이 현재 그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뜻이요, 더 중요한 것으로서, 적어도 현재 학생의 입장에서는 교사 이외의 다른 데서 그 가치를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학생은 교사가 구현하고 있는 가치로 말미암아 교사와 관계를 맺고 있고, 그 가치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교사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또한 교사는 그 가치를 다음 세대로 이어갈, 그 가치의 ’잠재적 전달체‘로서의 학생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상태를 전제로 한 꿈같은 이야기였다. 현실에서는 교사의 사회적 대우나 인식이 부러움의 대상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값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불완전한 상황에서 교사 뒤를 이어 ”선생님 같은 교사가 되고 싶어요“라는 제자들의 존재에 교사들은 전율한다.
교육적 관계가 교과의 가치만 전달하고 진학과 진급의 수단만 된다면, 그 목적을 다 이룬 학생들이 교사에게 연락을 하거나 만남을 이어갈 이유는 없다.
그 이상의 삶의 가치와 교감이 이뤄졌기 때문에 제자들이 교사를 찾아오는 것이라는 생각에... 물론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교사에게 기억되는 존재인지에 대한 의구심으로 더 큰 용기를 내지 못하면 연락하지 못하지만...
많은 제자들이 나에게 고마워할 것이 아니라 내가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고마워해야 한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저자는 교사의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교사가 되지 못하는 학생들이 의사나 변호사나 사업가 등이 된다는 상상의 나래도 펼쳤다.
교육을 받으면 잘 사는 것인가? 에 대한 대답으로 교사로 살아가고, 교사의 뒤를 따르는 것은 물질적 성공과 성취로 국한해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제와 결론이다.
환경이 받쳐주지도 않고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기적처럼 교수님이 이야기하는 이상을 현실로도 마주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너무 큰 위로를 얻었다.
교사로서 무슨 특별한 위치나 사명이나 존재감이 드러나는 역할로 위기 상황에서 영웅으로 대접받기보다 학생들이 위기 상황을 겪지 않게 예방하고 지도하며,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과 칭송과 인정조차 받지 못하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일인지...
교권이 무너지고 사기가 떨어지는 현시대에.. 난 교사 대상 강의할 때마다 그 자긍심을 함께 돌아보며 힘을 내기를 응원한다.
우리가 만나는 아이들의 미래에 미칠 영향과, 대를 이어 전달될 교육적 가치에 대해 생각하면 설렘과 흥분을 감출 수가 없다.
우리의 노력은 사소하지 않으며, 우리의 역할은 절대 하찮지 않다.
<삶의 자세로서의 교육>
어떤 한 사람의 삶의 자세는 그 사람의 말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에서 나타납니다.
한 사람의 삶의 자세는 ’구체적인 삶을 통하여 그가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가리킵니다.
끝없는 탐구는 오직 실제적 결과를 내려고 할 때에만 방해가 됩니다.
’이론적 삶‘의 성공은 탐구를 종결짓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탐구를 영속시켜 나가는 데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교과를 가르치는 일인 한, 그리고 교과의 중요한 부분이 이론적 지식인 한, 교육의 목적은 학생들로 하여금 이론적 삶의 자세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험대비와 동일시하기 때문에 평생공부의 개념이 낯설어지는 거라고 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능을 익히는 공부부터, 돈을 관리하는 방법, 업무를 잘 하는 방법, 은퇴 후 삶의 설계 등 끊임없는 도전과 같은 미션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한 노력이 곧 공부일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그런 당장의 성과나 해결을 위한 공부는 목적을 이루고 나서는, 시험이 끝나고 나서처럼 공부의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저자는 그런 실용적인 목적의 공부나 교육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교육의 본질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실용성 있는 공부도 진정한 학습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결과여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끝이 없는 탐구를 추구하는 것이 공부다. 그러니 치열한 연습 끝에 무대를 내려올 때와 같은 허탈함은 진정한 공부와 상관이 없다.
교과별로 추구해야 할 탐구의 분야가 따로 있겠지만, 교과를 포함해서 삶 전체를 아우르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은 선택적 상황처럼 느껴진다. 실용적인 목적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이 넓어지고 탐구의 확장으로 융합적 관심이 이어지면 삶 자체의 풍요로움은 비교할 수 없는 축복이 될 것이다.
자신의 학문을 축적하고 쌓아 올리는 것을 현학적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풍요로운 삶을 살아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인 것이다. 각자의 가치 추구와 삶의 우선순위는 일반화시킬 수 없지만.. 모두가 동일한 수능시험 같은 테스트를 통과하는 대신 그냥 배움의 성장과 교육의 효과를 언어가 아닌 삶으로 누리면 될 일이다.
<학교교육의 성격과 과제>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점은 사회적 지위가 교육의 결과라는 생각의 순서를 거꾸로 하여, 교육을 사회적 지위의 수단으로 삼는 데에 있습니다.
교육을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교과를 배우지 않으면 생활에 불편이 온다든지 경제발전이 안된다든지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교과를 잘 배운 결과로, 훌륭한 안목을 갖춘 사람들이 사회적 지도자의 잘에 올라가야 합니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이 순리를 뒤집어서 사회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그것에 필요한 공부를, 또 그 공부만을 하려고 하는 사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학부모의 인식은 물론,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교육의 본질만으로는 목표가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으며 성취감을 누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교사들조차도 확신을 가지고 기다리면 현상을 보는 시각과 관점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쉽게 할 수 없다.
나의 영어교육의 목표는 영어문장을 보이도록 도와주어 자립시키는 일이다. 영어의 노출시간에 따라 시간이 많이 걸리고 기다림과 인내가 전제가 되는 과정임에도 그런 안목이 실제로 영어성적 향상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나마 그 성과와 성취를 중간에 확인시키면서 지속할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교육의 본질에 따른 목표는 너무 멀게 느껴진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만큼...
그러나 교사라서 그 본질을 타협할 수는 없다는 다짐 을 멈출 수 없다.
저자는 입시위주의 교육이 아닌 인문고등학교 교육의 방향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유능한 생활인이나 경제발전을 위한 인력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학문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에 헌신하면서 후세대에 그 정신을 전달할 사람들은 소수만으로 충분합니다.
인문고등학교 교육은 그 소수의 사람들, 인류문화의 정신적 지주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기르는 교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