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구조>
학생이 물리학을 공부할 때 배워야 하는 것은 물리학의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구조적 특징'입니다. 이것은 물리학자가 공부하는 물리학과, 비록 수준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종류에 있어서는 완전히 동일합니다.
물리학의 구조를 배우는 데서 생기는 '생산성'이나 '전이 효과'는 생활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의 생산성이나 전이 효과가 아니라, 오직 물리학을 더 배우는 데 있어서의 생산성과 전이 효과입니다. 이는 물리학의 구조가 총체를 이루고 있다는 말입니다. 물리학은 구성 요소 사이에 상호 관련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구성요소를 그것의 상호 관련 속에서 배우고 나면 다른 구성 요소들을 쉽게 학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식의 구조는 지식을 더 잘 배우기 위하여 배워야 합니다.
지식의 구조나 형식은 지식의 이데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현상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형이상학적 개념, 즉 실재입니다. 이데아는 현상의 세계가 의미를 가지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의 논리적 가정입니다. 이데아는 우리가 실제로 파악하거나 도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파악하거나 도달하려고 하는 노력 그 자체에 의하여 확인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식은 이데아처럼 완전하게 도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추구하면 할수록 더욱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그런 것입니다.
자신이 무지하고 부족한 존재라는 고통스러운 느낌, 또는 고통스러운 희열의 느낌을 안고 사는 것... 제가 보기에 이것이 교과의 의미요, 교과를 배우는 이유입니다. (브루너, 피터즈의 교과관의 함의로 표현함)
이는 통상적으로 인식되는 교과가 살아간다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교과관과 대비됩니다.
제대로 된 배움은 체계를 통해 차츰 쌓여간다. 기본 원리부터 이해하는 방법을 체득했기 때문에 각 교과의 맥락을 가지게 된다. 관련된 새로운 지식이나 심화된 지식을 만나게 될 때 그 맥락으로부터 나온 연결고리로 지식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지식의 축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관련된 사항을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며 능동적으로 자신만의 지식체계를 갖추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모방하여 암기한 내용을 뱉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언어와 이야기로 재구성할 때 타인에게 전달되는 생명력을 갖는다.
도달점이 없어서 아쉬움보다 설렘을 갖는다. 끝없는 배움의 즐거움을 원하는 만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학 문제의 유형만 암기하듯 공부했다면 숫자만 바뀌어도 문제를 풀 수가 없고, 원리를 묻는 심화된 문제도 마주하기가 두려울 것이다. 심지어 풀이를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공백을 메우는 연결고리로서의 맥락과 이해와 원리 중심의 핵심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무지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언제든 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며, 이미 숱한 성취의 기억이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식의 구조에 도움을 주는 교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궁극적으로 스스로 깨우치고 배움의 길로 나아가겠지만... 교사의 가이드 없이는 방향성 없이 헤맬 것이기 때문이다.
교사는 오랜 배움과 고민을 통해 그 지식의 구조를 머리와 몸과 가슴에 새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체계를 있는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듯 넣어줄 수 없다. 학생 자신의 언어와 출발점, 준비도에 따라 각기 다른 스토리로 스스로 저장해야 한다. 한 글자도 빠짐없이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이해 체계로 정보처리를 하고 사고를 확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교사도 참고서나 교과서를 그대로 전달하듯 읊어주면 안 된다.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하고 접근하는 모형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면서 방법적인 면에서 지식에 접근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교사의 지식 모형도 완성품이 아니다. 끊임없이 개정판이 나오고 업데이트가 되듯... 설사 초중고등학교 수준에서는 더 이상의 깊이와 새로움이 필요 없다고 느껴지는 지점에서도... 꼬마 영어학자나 물리학자와 같은 미니어처 모형을 심어주려면 끝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구조화된 지식을 갖추지 못했거나,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할 노력이 결여된 교사들은 매 수업시간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연결고리 없는 단편만 제시하게 될 뿐이다. 학생들은 유기적이지 않고 긴밀한 연결고리가 없는 그 수업에 몰입할 이유를 찾지 못한다.
한 시간의 수업도 큰 그림에서 의미를 갖춘 유기적인 퍼즐의 조각처럼 준비한 것이려면...
교사의 배움과 학습은 평생을 이어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 멈춤 없는 배움이 아이들에게도 진정한 교육의 모형으로 전이될 것이다.
<교육의 어려움: 결론에 대신하여...>
교육을 하는 이유에 의하여 규정되는 교육의 의미(또는 목적)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론적 질문을 추구하는 활동, 즉 이론적 활동의 가치를 알고 그것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데에 있습니다.
...
교사가 하는 일은 희랍의 자유민이나 조선시대의 양반이 하던 바로 그 일이며, 국가가 교사에게 봉급을 준다는 것은 그 일이 끊임없이 이어지도록 하기 위한 제도적 조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차이는... 자유민이나 양반의 경우와는 달리, 오늘날 교사는 그 신분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자는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고 말한다. 원하는 이들이 많으면 본질을 이루려는 사람보다 부러워하는 이들의 난입으로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며, 그러면 현재 교사의 역할은 사라지거나 존 듀이가 강조한 것처럼 유목적적 문제해결 활동을 도와주는 일로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상상 속의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한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이 누리는 신분상의 특권을 남에게 떠들썩하게 자랑할 것이 아니라, 오직 교사들끼리의 비밀로 간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소중한 보물일수록 남에게 보이지 않고 혼자만 몰래 꺼내 보는 법입니다.
이러한 교수님의 마무리는 자조 섞인 냉소로도 들린다. 교육의 가치를 깨닫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마다하고 교사를 우선적으로 선택한 이들에게는 공감할 주장이지만, 그럼에도 교사됨에 도전하는 교직에 대한 대우와 고통스러운 현실을 생각하면...
"너나 해라. 교사"
이런 말을 듣게 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러니 그 보물 같은 인식은 세상과 타인의 인정과 존경과 사회경제적인 대우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며, 이후 극적으로 그 인식이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교육은 경제논리로 그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학생 한 명을 만나는 일이, 그 거대한 세상을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하고 기적 같은 일인 것인지... 소중하고 귀하기 때문에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학생의 과거를 위로하고, 현재의 성장을 도우며, 미래에 펼쳐질 잠재성까지 바라보는 일...
연봉의 가치 이상의 열정페이로만 이룰 수 있는 기적이지만...
그런 기적을 믿고, 가치에 헌신된 교사들에 의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