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영어듣기 성적을 확인시켰다.
전에는 전체 성적을 교실에 게시하거나 반에서 공람하듯 돌리면서 자기 이름에 사인하도록 했었다. 심지어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전교 석차를 대자보처럼 게시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자신이 자발적으로 공개하려 하지 않는 한, 다른 학생의 성적을 교사가 임의로 보여줄 수 없다.
그래서 한 명씩 나와서 자기 성적만 확인하고 들어간다. 줄을 서서 확인을 해도 거리를 유지해서 앞사람 성적을 안 보는 것이 예의다.
그래서 해당 학생만 확인할 수 있도록 코팅해서 만든 성적확인 아이템
잘 한 학생을 칭찬해 주고 싶어서 성적 확인시킬 때 이렇게 제안했다.
100점 맞은 사람은 쌤과 하이파이브하자고.
그러나 그것 자체가 학생의 성적을 임의로 공개하는 일이기도 했고, 100점을 맞지 못한 학생들에 대한 상처가 될 것 같았다.
학창시절 열등감으로 성적으로 내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했던 욕구가 그 상황에 투영된 걸 깨닫고는 부끄러워졌다.
그 괴로운 반성 끝에 그 다음 반에서는 이렇게 제안했다.
100점 맞은 사람 하이파이브!
100점이 아니라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이파이브!
망쳐서 격려가 필요한 사람 하이파이브!
성적에 관계없이 잘하고 싶고 열심히 하고 싶은 사람 하이파이브!
이러니까 애들이 웃기 시작했다. 이러면 모든 학생들과 하이파이브를 해야 할 것이니까.
아이들의 웃음에 힘을 얻어 이런 농담을 덧붙였다.
더 잘 할 수도 있었는데 노력이 부족해서 자극이 필요한 사람은 하이파이브 대신 쌤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다!!
실행에 옮기지 않은 농담이었지만, 노력이 부족한 것에 대한 사소한 자극이라도 되기를 바랐다.
그러고 부담스러워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모두에게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아이들은 기분의 정도와 격려의 정도에 따라 내게 손바닥을 마주치는 강도가 달랐다.
잘한 학생들을 칭찬하여 더 잘하게 하는 것도 교사의 역할 중 하나지만...
결과보다 노력하고 애쓰는 과정에 칭찬을 하며 격려하는 것이 더 교육적인 교사의 역할일 것이다.
누구라도 각자의 타이밍에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섞인 격려는 물론이고.
성적에 속상해하는 아이들을 비판하거나, 격려를 빙자해서 잘하라고 하는 말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대부분은 본인도 더 열심해 해야 하는 걸 자각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의 강제적인 이끌림으로 움직이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니까.
오히려 뒤로 한발 물러서서 함께 아파해주며 아이가 스스로 아파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스스로 의지를 다지려 할 때, 혹 확신이 조금 부족하다면 그 사소한 부분을 채우면서 용기를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공부할 의지나 노력을 지속할 습관은 교사가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형성해가는 것이니까.
아이들의 출발점과 속도는 다 다르다. 열심히 하는데도 아직 결실을 못 볼 수도 있고, 아직 시작을 못했을 수도 있다. 성적과 준비도나 진행과정에 상관없이... 아이들은 누구나 하이파이브할 자격도, 권리도 있다.
아이들에게 말 대신 하이파이브로 그 절절한 응원의 마음을 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