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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방해하는 믿음

너의 것은 없어, 다 남을 주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렸을때 친척 사촌 동생들이 저희 집에 놀러 왔었는데, 아버지가 그 동생들에게 용돈을 주면서 저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상황이 있었는데 제가 많이 화를 내면서 방을 박차고 나왔다고 합니다. 저희 집에서는 큰형이 장손이고 공부도 잘하고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아들이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저는 별볼일 없는 아들이었죠. 집안에서 큰형에게는 공부에 대해서 많은 투자를 했었습니다. 큰형에게는 여러가지 책들도 사주고 영어교재도 고가의 영어교재를 사주었죠. 저는 항상 아버지가 대학교도 가지 못할줄 알았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저는 이런 이야기를 다 저의 마음속에서 삮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은 중요하지 않고 몸을 움직여서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한 덕목이었던 집이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눈에 보이게 차별이 있었을때, 부모님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도록 행동도 하고 요청도 하고 불평도 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내성적인 아이였고, 어쩌면 부모님에 대한 두려움과 본인에 대한 수치감때문에 정상적인 욕구에 대한 표현을 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결국은 혼자 부모님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나를 차별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상황이 생길때마다 부모와의 대화를 통해서 어떠한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생각으로 결론을 도출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어른들에게 전혀 물어보지 않고요. 


이러한 패턴은 사회생활에서도 비슷하게 진행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나에 대해서 차별적인 대우를 했을때 이에 대한 설명을 요청하거나 정상적인 요구를 할수 있었어야 하는데, 혼자서 차별받았다는 생각만 하고 분노와 수치감만 느끼고 끝났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에는 타인들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다는 잘못된 가정과, 타인들이  나를 차별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그 기저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타인들, 특히 권위자에 대한 두려움이 마음 깊숙한 곳에 깔려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일을 어느정도 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조금 복잡한 상황이 되면 이야기는 달라졌습니다. 일의 범위가 정치적인 이유로 바뀌거나 고객과의 관계에서 영업적인 이유로 상황이 바뀌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융통성 있게 대처를 했어야 하는데, 저는 흑백논리로 접근을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어려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될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죠.


이러한 명확하지 않은 개인의 감정적 반응들과 상대방의 의중을 읽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사회생활에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결국 주어진 일만 하던 하위직급에서 상위직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사람을 읽는 능력이 중요한 요소인데, 이러한 능력이 떨어지는 애착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살아가기가 힘든 것이죠. 결국 한계에 부딛치게 된것이죠. 


이러한 어려움들은 신뢰할수 있는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 하면서 배워가야 하는데 주변에 그러한 사람들이 없다면 어려움은 더욱 배가될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쌓이게 되면 정신적으로 버티기 어려워집니다. 결국은 정신적인 우울증이나 대인기피증 등의 문제들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심해지면 공황장애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사이에 좋은 상사를 만나서 행복한 시기를 보내기도 하고 여러가지 긍정적인 상황이 있었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의사결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에게 인생을 다시 살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인생은 다시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가치있게 살기를 소망하며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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