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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동력으로 하는 삶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지배할때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습니다.

두려움이나 불안을 동력으로 하는 삶에 대해서 지난번 글에서 언급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좀서 실감나게 설명을 하기 위해서 저의 경험을 한번 이야기 해드리려고 합니다. 언젠가 저의 아들과 센트럴파크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기새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의 아들이 소리나는 곳을 살펴보도가 조그마한 아기새를 찾았습니다. 저희는 아마도 나무위에 있는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미 오후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너구리나 아니면 다른 동물들이 잡아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기새를 일단은 집으로 데려갔다가 다음날 구조센터에 새를 데려다 주려는 생각을 가지고 아기새를 손으로 들어 올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기새는 소리를 막 내면서 저를 할퀴었습니다. 포근했던 둥지에서 떨어져서 아마도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를 잡으려고 제가 손을 가까이 가져가니 아마도 본능적으로 적이라고 생각을 한것 같습니다. 손을 몇번 할퀴고 결국은 조그마한 상자안에 넣어서 아기새를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집으로 데려와서 조금 큰 상자에 담아놓고 음식과 물을 주었지만 잘 먹지 않고 밤새 뒤척이고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다음날 결국은 동물구조센터에 아기새를 데려다 주었습니다. 떨어질때 다리를 약간 다친것 같은데, 그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저도 확실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아기새와 경험을 통해서 저는 저의 삶이 아기새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극도의 두려움에 빠진 아기새는 자신을 도우려고 하는 사람인지 아니면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인지를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두려움때문에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공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위험에 빠져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밤새 잠을 잘 못이루고 계속 소리를 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사람도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현재의 상황을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창의적인 능력과 지적 능력이 강화되어서 올바른 선택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불안하다고 판단이 될 경우에는 생존모드에 진입해서 올바른 결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게됩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면서 저 자신이 모든 상황을 안전하지 않은 불안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얼마전에 깨달았습니다. 몸이 항상 긴장되어 있고, 마음이 경직되어 있어서 경직된 사고를 하고, 주변 상황이 위험하다는 인식에 굉장히 민감한 저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본인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오랜기간 살아왔지만, 항상 긴장하고 경직되어 있던 저의 모습을 다시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금 읽고있는 Jill Bolte Taylor 의  "My Stroke of Insight" 에서 저자는 자신이 왜 뇌과학자가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자신의 남자형제가 20대 초반에 조현병 진단을 받았는데, 어렸을때부터 왜 자신과 동일한 상황을 목격하면서도 자기와는 완전히 다른 인식과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서 무척이나 신기했다고 하면서 그러한 이유로 자신이 뇌과학을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읽었습니다. 즉 저자는 삶이 자신에게 던져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삶의 방향을 설정하고 그 방향을 따라서 삶을 계획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서 자신이 안과의사가 되어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고 싶다는 삶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갔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극명하게 대비되는 삶을 대하는 자세가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전자의 경우였기 때문에 그러한 삶이 어떻게 결론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도 책의 저자나 아버지의 눈을 고치기 위해서 안과의사가 되었던 아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직업의 귀천을 떠나서 두종류의 사람들이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날마다의 삶이 수준은 비교할수 없는 수준의 것입니다. 두려움에 반응하면서 사는 삶은 평안이나 성취감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저 두려움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삶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삶입니다. 이러한 삶을 대부분의 애착트라우마 환자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인식을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무의식적 수준에서 이러한 반응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삶의 질문들에 답을 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날마다의 삶에서 의미를 추구할 수 있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사용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매진할 것입니다. 이러한 삶의 기저에 깔려있는 방향을 인식하지 못한체 단순한 기술을 채용해서 삶을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저도 더이상 두려움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삶이 아니라, 더 큰 차원의 의미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방향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남은 저의 삶은 날마다 의미와 목적이 있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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