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고통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면 어린시절의 고통이 반복됨을 알아야함
삶을 살아가면서 고통스러운 삶의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것이 어린시절 주양육자와의 고통스러운 관계의 경험을 반복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했는지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알아차림이 있을때 더이상 그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때 자신이 당하는 감정적 고통을 외면하거나 별일 아니라고 무시해 버리면 그러한 고통을 인정할때까지 계속 더 강도가 강한 현실의 상황을 마주해야 합니다. 저는 감정적 고통을 인식하지 못해서 계속적으로 고통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만약 제가 일찍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면 그 고통의 경험을 줄일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저의 직장생활에서 더 성장할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른 많은 분들은 이러한 감정적 고통을 반복하지 않고 일찍 그 상황을 알아차리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올려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친구와의 관계, 직장에서의 관계, 그리고 가족간의 관계를 통해서 여러가지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모든 관계의 기본이 되는 것은 주양육자와 경험했던 어린시절 관계의 경험입니다. 한번은 직장에서 구매절차중에 하나로 어떤 제품을 사는 계약을 체결하고 왜 그 계약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설명을 했는데 위원회에서 제가 이야기 했던 내용에 대해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 저의 내부에서 엄청난 답답한 감정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답답한 경험이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감정이 느껴졌을때 처음에는 그 감정을 그대로 믿고 그 답답한 감정때문에 저를 이해시키려고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사용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러한 질문은 통상적인 질문이었고 저만 그러한 상황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저는 이러한 답답함의 경험이 어린시절 저의 이야기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부모님들에게 느꼈던 답답함의 감정이 되풀이되고 있었다는 것을 더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심각한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경험이 얼마나 삶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저는 가족들과 살면서 친밀한 유대관계나 소속감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또한 부모님들과는 건강한 애착관계가 아니라 회피애착을 맺었습니다. 부모님들을 피하고 저만의 세계에 숨어있는 것이 저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어렸을때의 경험을 통해서 판단한 것이죠. 그 방법은 나름대로 가족들과 살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방어전략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어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직장 상사들과 한번도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저의 내면에는 직장상사들이 모두 궁극적으로는 나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들이 될것이고 무서운 존재들이라는 믿음이 저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도 한참 나중에야 알아차린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저를 힘들게 했던 믿음은, 그러한 사람들에게서 내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할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믿은 것입니다. 아니 한가지 방법법은 도망가는것 밖에 없다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겨우 알아차렸습니다. 이러한 무의식적인 저의 믿음들은 저의 직장에서의 삶을 무척이나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저의 모습이 반복강박이라는 심리학적 용어로 설명할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한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이 만들고 선택했던 방어전략이 자신의 삶이 성장하는 것을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을 자신이 했다는 것도 모른채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다는 것도 웃기는 상황이었습니다. 정말로 어려운 것은, 그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그런 방식으로 오랫동안 살아왔는데 중년이 지나서 깨닫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서 살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장 막막한 것은 대안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연착륙할수 있는 대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냐 아니냐가 질문이 되어서는 안되었습니다. 과거의 모습대로 더이상은 살수 없다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바꾸어야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