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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무게

어려운 감정과 쉬운 감정이 있을까요?

모처럼만에 한국에 와서 부모님 집에 방문을 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고향집은 만감이 교차하는 공간입니다. 나이가 중년에 들어서야, 제가 집에오면 입이 막히고 몸이 굳는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만큼 공포의 감정과 무기력의 감정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면서 그것이 일반화된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핵심 감정은 사회생활을 할때에도 저의 가장 기본이되는 감정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저의 모습을 알아차린 것은 저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세상을 살아갈때 그러한 두려움의 감정과 무기력의 감정과 매순간 싸우면서 살아갔기 때문에 저의 삶은 쉬운 삶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방문에서는 좀 다른 통찰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을 만났을때 나 혼자 조용하고 있으면 집안이 편할것이라는 것과 나의 감정의 무게가 부모님들이 살아오신 삶에서 만들어진 감정의 무게보다 무겁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저의 마음의 상태나 생각과 감정에 대해서 솔직하게 부모님들에게 선뜻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저의 개인적인 생각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다른 실질적인 외압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불문명 하지만, 저의 이런 마음의 생각이 제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에 대해서 그동안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에 어려운 감정과 쉬운 감정이 있을까? 감정에도 무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니는 어린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던 그 마음의 고통과, 부모가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서 가족을 부양하기 어려워하는 그 마음의 고통중에서 쉬운 감정과 어려운 감정을 정할 수 있을까? 부모의 감정적 고통을 알아차린 어린아이가 부모님이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어려운데, 자기까지 감정의 어려움을 부모에게 이야기 하면 부모님이 더 힘드시겠지라는 마음으로 자신이 학교에서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을 부모에게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이 부모를 진정으로 도와주는 것일까? 아니면 부모가 자신의 어려운 감정에 파묻혀서 자신의 감정적 고통만 중요하고 타인의 감정적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에 빠져서 자녀의 어려운 감정에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을까? 과연 감정을 나누는 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어렵게 하는 것일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왜 저의 마음속의 감정적 고통을 집안에서 말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마음속의 생각을 말하지 못했는지가 좀더 분명해 졌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패턴이 사회 생활을 할때도 이어져서 저의 평생을 괴롭혔구나 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는 감정에는 무게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세상의 풍파를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아이의 감정에 대한 부모의 반응은 패턴이 되고, 아이는 이러한 패턴이 삶에서 반복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세상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 들어주고 존중해주는 그러한 세상을 예상할때 건강한 자존감과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갈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번 경험을 통해서, 몸에 밴 삶의 형태가 변화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되었습니다. 전화상으로 이미 이야기를 드렸던 내용이지만 집이라는 공간과 두분을 만나는 순간 그러한 이야기를 하기가 또 어려워 진 것입니다. 과거의 삶의 패턴이 또다시 되살아난 것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과거에 어린 제가 느꼈을 감정적 부담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수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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