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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 고통과 정서적 고통

정서적 고통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하나요?

우리는 어린아이가 넘어져서 눈에 보이는 상처가 생기고 피가나면 바로 아이의 고통에 공감하고 상처를 치료해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정서적 고통에 대해서는 무감각 하거나 공감하지 못하고 더 심한 경우에는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이러한 상황이 벌어졌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경향이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눈에 보이는 육체적 고통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수 있고, 눈에 보이는 상처를 통해서 고통의 정도를 어느정도 예상하고 공감해 줄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입증책임이 없습니다. 옷으로 가려져있어서 보이지 않는 상처라면 상처를 덮고 있는 옷을 제거하고 상처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상처로 인한 고통에 공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즉 장황하게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서적 고통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고통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고통을 공감받거나 이해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수 있도록 설명을 잘 해야합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마음속의 정서적 고통을 설명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첫째는, 언어적으로 어린이들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둘째는,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정서적 상태가 고통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자신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받을 수 있는 안전한 사람이 없다면,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어린이는 자신의 정서적 고통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정서적 고통을 설명하기보다는 방어기제를 개발하고 적용하게 됩니다. 따라서 아이가 정서적 고통을 방어하기 위해서 방어기제를 개발하고 적용하기 전에 아이의 감정적 고통을 알아차리고 공감해주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만의 방어기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가게 되어, 성인이 되었을때는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가 더 어려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로 어른이 되면, 자신이 어떠한 방어기제를 만들었는지에 대한 의식적 정보가 없게됩니다. 무의식속에 이러한 정보를 숨겨두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살아가는 자신만의 방법을 의식하지 못한체 살아가면서 박복강박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렸을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방어전략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면서 삶에서 반복적인 문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는 저의 내면의 정서적 고통을 언어화하는데 실패했고, 나만 아무런 이야기 하지 않으면 가정이 편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서적 고통을 모두 내면화 하는 방법을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닫고 높고 튼튼한 성을 저의 마음에 둘러싸면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면서 피상적인 관계만을 만들면서 세상을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위기가 닦쳐왔다는 느낌이 들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혼자서 모든것을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나의 삶에 관심이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이러한 믿음이 있다는 인식도 저에게는 없었습니다. 


이러한 저의 방어전략은 저의 삶을 너무나 외롭고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혼자 살 방법을 찾다가 저의 한계에 부딛치면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졌고 자살충동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할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더이상 문제의 해결을 할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정서적 고통의 상태에서는 극심한 정서적 고통을 경험해야 했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으로 고통당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의 고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지 못했습니다. 가족들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번 한국 방문을 통해서 가족들과 만나면서 저의 어린시절의 상황에 대해서 더 깊은 이해를 할수 있게 되었고, 왜 내가 자신의 감정적 고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못했었는지에 대해서 이해를 할수 있었습니다. 나만 조용하면 가족이 편할것이라는 생각과 부모님들의 감정적 무게에 눌려서 저의 감정적 고통을 이야기 하기 꺼려진 것도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패턴이 성장하면서 저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도 말입니다. 이러한 모든 인식은 저의 사회생활에서의 대인관계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편협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제는 저의 고통을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들에게도 저의 정서적 고통을 이야기 했고, 형들과 형수님 그리고 아내와 아들에게도 저의 정서적 고통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공감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그러한 방어전략이 사회생활에 많은 문제들을 야기했다는 것들과 처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을 왜곡시켰다는 것도 인식하고, 그러한 감정적 쓰래기들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세상이 바로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먼길을 돌아왔지만, 이제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물론 모든 현실의 문제들이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앞으로 어떤 삶이 펼쳐질지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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