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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죄와 트라우마

원죄를 설명하는 가장 합리적인 개념

원죄는 기독교의 교리가운데 하나로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통해서 모든 인류안에 죄가 들어왔다는 개념으로 성 어거스틴에 의해서 처음 붙여진 이름입니다. 물론 이러한 개념 은 성경상에 사도바울등을 통해서 언급이 된 경우가 있지만, 원죄라는 용어는 성 어거스틴에 의해서 만들어진 용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원죄라는 개념은 모든 인류가 죄인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고 모든 인류가 예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에 매우 유용한 개념이었습니다. 


원죄라는 개념은 기독교의 죄의 개념과 구원의 개념을 쉽게 설명할수 있었지만, 죄가 인간의 전적인 타락인지 아니면 부분적 타락인지에 대한 논란에 대한 확실한 답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인류의 전적인 타락을 지지하는 쪽은 원죄로 인해서 인류는 전적인 타락을 했기 때문에 선을 행할 어떠한 능력도 가지지 못한다는 의견을 주장했으며, 부분적 타락을 지지하는 쪽은 전적인 타락이라는 개념을 지지하지 않았습니다.  전적인 타락을 주장하는 쪽의 대표는 칼뱅주의이며 부분적인 타락을 주장하는 대표는 알미니안주의입니다. 칼뱅주의는 프랑스 신학자 존 칼뱅(1509-1564)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고, 알미니안주의는 네델란드 신학자 야코뷔스 아르미누스(1560-1609)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참조링크를 보시면 도움이 되시겠습니다. (https://www.gotquestions.org/Korean/Korean-Calvinism-Arminianism.html). 


여기서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전적인 타락인지 부분적 타락인지에 대한 논쟁이 아니고, 어떻게 원죄로 표현되는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과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후손들에게 전달되었는지에 대한 방법론에 대한 논의입니다. 지금까지 글을 쓰면서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글로쓰고 이와 관련된 책들을 읽고 상담공부를 하면서 세대를 통해서 전해지는 트라우마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어떠한 삶의 문제들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 글을 통해서 나름대로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와의 깨어진 관계를 통해서 애착트라우마가 만들어지고, 이를 통해서 세상에 대한 인식(Perception)이 왜곡되고 감정을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잘못된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서 정리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감정적 고통들은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그 감정을 마주하여서 해소하는 과정을 경험해야 해소가 될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적 고통을 회피하고, 그 고통에 담겨있는 의미를 파악하려고 하지 않다면 트라우마가 해소 되지 않고 세대를 통해서 전달되게 됩니다. 


앞으로 이러한 원죄와 트라우마의 연관성에 대한 글들을 기회가 되는대로 써보려고 합니다. 만약 원죄로 인해서 만들어진 깨어진 관계와 수치와 두려움의 감정이 트라우마가 되고, 이러한 트라우마가 세대를 통해서 전달되며 이러한 트라우마의 근본적인 해소가 구원이고 개인의 삶에서의 트라우마를 해소하면서 살아가는 과정이 성화라면, 신앙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은 더 삶과 연결될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집안에 이어져 내려오는 트라우마로 인해서 말로 표현할수 없는 고통을 경험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려운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이 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집안사람들 전체의 고통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이 더 확대되면 민족과 모든 인류가 트라우마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경험했던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미국에서 흑인노예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경험했던 트라우마, 같은 민족이 전쟁을 벌여야 했던 육이오의 트라우마와 같이 셀수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세대를 이어서 전해져온 트라우마들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트라우마에서 해방되어서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몇자 글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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