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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하지 못하는 어린시절 상처들

인식하지 못하는 어린시절 정서적 상처들은 삶에서 비슷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어린아이들은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수많은 감정경험을 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괴로움을 경험하면 그 괴로움의 경험을 고스란히 아이도 느낄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계획되지 않은 임신을 하고 아이를 갖는 것에대해서 부담을 갖거나 낙태를 생각한다면 아이는 자신이 필요없다고 느끼거나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을 느낄 것입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남편과 날마다 싸우고 분노에 휩싸여 있다면, 아이도 그러한 분노를 같이 느낄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가족들 아무도 아이에게 눈을 맞추어주지 않거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다면 아이는 외로움과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가질 것입니다. 부모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자녀에게 너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다고 이야기를 하거나 책임을 자녀에게 전가한다면 아이는 부모의 언어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자책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이러한 부모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에게 보모들은 세계이며 전부입니다. 그런 부모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아이는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신을 자책할 것입니다. 이러한 자책은 자신의 정체성에 심각한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아이들의 정체성은 쓸모없고 집안에 문제만 일으키는 존재라고 정의될 것입니다. 이러한 고통은 몸에 새겨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더라도, 부모들이 아이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해주지 않거나, 부모들이 너무 바빠서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할 경우, 아이들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들어갑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어려운 일들이 있어서 그 어려움을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은 자신의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은 혼자서 어려운 결정들을 혼자 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외로워도 아무에게 도움을 청할 곳이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할수도 있습니다. 가끔 들어온 아빠가 혼내기만 한다면 아이들은 부모의 존재를 자신이 의지하고 도움을 청할 존재로 보지 못하고 평소에는 관심이 없다가 가끔 들어와서 혼만내는 존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좌뇌가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논리적인 상황정보가 아니라 감정적인 정보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어떠한 일이 생겼을때 그 상황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대한 기억만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고통스러운 감정은 어떤 특징적인 상황과 연관해서 기억되는 경향이 있는데, 부모와의 부정적인 관계가 나중에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부정적인 관계로 표면화 될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할때 당사자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때 당시의 대상이 그러한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상처들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정적 고통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당사자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저의 경우에도 직장 상사들과 불편한 관계를 계속 만나게 되면서 처음에는 전혀 문제의식조차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의 정도가 더 강해지고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저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면서 문제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기위해 노력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과정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결국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기억들이 저에게 심각한 고통의 시간을 만든것인데 그것을 알아내는 과정이 힘든 것이었습니다. 


만약 이러한 감정적 고통이 찾아왔을때, 이를 애써 외면하고 계속 다른 사람들만 탓한다면 그 감정의 감옥에서 빠져나올수가 없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상황이 삶에서 계속 벌어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약한 강도로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강도는 더 커지고, 그래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살아가면 고통의 강도가 더 커지는 사건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상처를 돌아보라고 신께서 계속 부르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삶이 우리에게 감정적 상처를 치유하게 해주기 위해서 주는 좋은 기회인 것입니다. 그 고통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기 시작하면 새로운 인생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부름을 계속 부인한다면 이러한 감정의 고통은 자녀들에게 대물림 되어서 자녀들이 그러한 감정의 숙제를 해결해야 하는 단계까지 이어질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적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학대하거나 자녀들에게 감정적 짐들을 던져버리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도 전혀 부모님들의 행동에 대해서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랜시간을 살아왔습니다. 고생하신 부모님들이고 힘들게 살아오신 분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것 자체가 저에게는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껄끄럽고 문제가 자꾸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저는 전혀 알아차릴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직장 상사들을 탓하다가 나중에는 저의 안에 깊은 분노와 불안과 수치의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이 저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단순히 부모님 뿐만이 아니라, 저희집안 전체적으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잘못된 행동패턴과 믿음들이 저의 집안 사람들에게 있고 대대로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린시절 있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잊어버리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저의 안에 수많은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의식에서 지워버린 고통의 시간들이 의식으로 떠오르면서 저의 몸에 트라우마로 기억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의 상처를 유발했던 상황과 유사한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저의 삶에서 일어났는데, 그 유사한 패턴을 오랜시간동안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저에게 엄청난 수치와 고통이 있었던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고통을 더이상 참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모든 것들이 저에게 엄청난 고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알아차림이 저에게는 치유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은 유교의 정서가 있고 효에 대해서 중요시 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조상들에 대한 어떤 비판이나 오류를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소극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사람들은 없습니다. 조상들이 잘못했던 것에 대해서 객관적인 시각에서 재조명하고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사명인 것입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과거를 배워서, 과거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 않고,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만약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했던 일들을 무비판적으로 다 옳다고 한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은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조상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어떠한 고통을 자녀들이 경험했는지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 평가 없이는 가족대대로 내려오는 트라우마를 해결할 가능성은 요원해집니다. 


감정적 고통은, 감정적 문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인 사건들로 나타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감정적 고통에서 해방되어서 더 나은 삶을 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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