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흙수저 vs. 정서적 금수저
많은 부모들은 자연적으로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고싶어 합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만 있다고 해서 자녀들에게 좋은것을 줄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무엇이 좋은 것인지 모르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이런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독을 주면서 자신들이 자식들을 위해서 좋은것을 주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살수도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아예 처음부터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줄 생각도 없으며 거꾸로 자신의 욕구를 자녀를 통해서 해소하려고 하는 부모들도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자녀들을 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떤것이 좋은 부모인지 알지 못하고 부모가 되기 때문에 막상 부모가 되었을때 좋은 부모가 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당장 경험하는 육아의 어려움과 과거의 상처가 가장 심하게 드러나는 시기가 자녀를 양육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교육에 진심이어서 어떻게 해서든지 자녀들에게 공부할수 있는 기회들을 최대한 제공해주고 싶어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경제적으로 유산을 많이 물려주고 싶어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같이 시간을 많이 보내고 좋은 경험들을 많이 해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일까요? 물론 개인마다 차이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의 경우는 가장 좋은 부모는 건강한 정서적 유산을 남기는 부모라고 생각합니다.
최성애,조벽 부부가 쓰신 "정서적 흙수저와 정서적 금수저"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많이 사용하는 흙수저와 금수저는 금전적인 유산을 많이 받았느냐와 못받았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됩니다. 하지만 정서적 흙수저와 금수저의 구분은 부모에게서 얼마나 정서적인 인정과 보살핌, 그리고 격려를 받았느냐, 얼만큼 건강한 애착관계를 부모와 맺었느냐에 따라서 결정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건강한 정서적 유산을 받을수 있다면 더이상 기대할것이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서적 유산을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부정적인 정서적 유산을 물려받지 않는다면 더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부모들은 자녀들을 통해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무엇인가를 이루기를 바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심한 부모는 자신들의 기본적 욕구를 자녀들을 통해서 만족시키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각한 경우는 부모들이 자녀들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이 부모를 보살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란 자녀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어떤 경우는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수치감이나 분노를 자녀들에게 투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자녀들은 이유도 알지 못하는 분노와 수치를 짊어지고 평생을 씨름해야 합니다. 사실 수치감이나 분노는 어떠한 사건을 통해서 경험하게 되는데, 아이들은 이러한 구체적인 사건이 없이 부모들에게서 투사된 감정과 씨름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치 실체없는 그림자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유없는 분노와 수치심과 평생을 싸워야 한다면 그 인생이 어떻게 될지를 말입니다. 대부분은 일평생을 보이지 않는 분노와 수치심과 싸우다가 자신의 자녀들에게 또 그러한 감정을 물려주고 쓸쓸하게 인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만약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물려받은 정서적 유산에서 조금씩이라도 개선하고 해소해서 자녀들에게 더 좋은 정서적 유산을 물려줄수 있다면 이세상은 점점 더 좋은 세상이 될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