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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본능으로 사는 사람들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에 빠지면 사람은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됩니다.

다미주신경이론(Poly Vagal Theory)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 핵심내용은 사람은 안전하다고 몸이 느낄때 친밀한 관계를 맺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람이 안전하다고 몸이 느끼지 못하면 싸우거나 도망가거나 얼어버리는 반응을 하기 때문에 친밀한 관계를 맺을수 없다는 것입니다. 몸이 이렇게 반응하도록 원래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몸에 대한 연구결과가 심리학에서 폭넓게 인용되고 사용되고 있는데, 이것이 트라우마의 연구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를 예로 들어 설명을 드리면, 저의 유년시절 기억은 항상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아버지의 행동이나 말에서 항상 두려움을 느꼈으며, 집은 저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몇년 전까지도 집에가면 온몸이 굳고 말이 안나올 만큼 집은 저에게 두려움을 유발하는 장소였습니다.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문제는 집에서 느꼈던 그러한 몸의 반응이 학교생활과 사회생활까지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몸의 반응에 대해서 저는 알고 있지 못했고 무의식적으로 저는 일평생을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으로 삶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삶의 순간순간을 안전하지 않다고 몸이 느끼기 때문에 도망가야 하느냐 아니면 싸워야 하느냐, 그것도 아니면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있느냐를 무의식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삶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가 처음 다미주신경이론을 접한 다음에 저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저의 삶의 퍼즐들이 맞추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그때 그러한 행동을 했을까에 대한 생각을 저는 수없이 했었습니다. 지금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과 결정들을 수없이 많이 했던 저였습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서 저 자신을 학대하고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이 다미주신경이론으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저의 일평생은 양육환경으로 인해서 불안과 두려움으로 점철 되었던 삶이었습니다. 집에서 몸이 굳고 말이 안나올 정도면, 그 정도는 상당히 심각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저는 주로 도망가거나 그자리에서 얼어붙는 반응을 하고 살아왔었습니다. 그래서 삶에서 두려움이 느껴지는 상황이 나타나면 도망가거나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몸이 자동적으로 그렇게 작동을 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결정과 행동을 해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한 이후에도 한참동안이나 두려움의 반응에 익숙한 몸때문에 그러한 반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지냈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몸의 반응과 인지반응에 변화가 있는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한 이후에, 저의 주변에서 애착트라우마로 인해서 어린시절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는 분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여유가 있는 분인데도, 아직도 그 여유를 누리지 못하고 어린 소녀가장으로 살던 과거의 삶을 살아 왔습니다. 어렸을때 부모에게 학대받으며 살았고, 그 가운데서 사랑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일했던 그모습 그대로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지만, 오히려 일을 놓지 못하고 살고있습니다. 본인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녀들의 감정을 읽을수 없습니다. 그저 가장 기본적인 학교보내주는것, 먹여주는것, 그리고 재워주는 것을 해줄수 있을 뿐입니다. 아이들이 감정적으로 어떠한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일을 만들어서 몸이 견뎌내지 못할정도로 까지 일을 만들어서 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그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그분의 행동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됩니다. 아직도 그분에게 세상은 두려운 곳이고 어떻게든 싸워서 이겨나가야 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을 해서 인정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쉴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모든 행동이 무의식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자신은 왜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는지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님들은 자신을 학대했지만 아직도 부모가 자신을 학대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린시절 부모들이 자신을 학대했었고, 부모들은 자신을 사랑할수 있는 힘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분에게는 삶이 끝날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 분노를 마음에 쌓아놓고 억누르고 있지만, 다른 기회가 되면 억누르지 못하고 터져나옵니다. 


저와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많이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삶을 열심히 성실하게 살지만, 그분에게 삶은 전쟁터이고  날마다 생사의 갈림길을 건너야 하는 위기의 연속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며 깊이있는 관계를 맺을수 없습니다. 삶을 더 평화롭게 살수 있는 길들이 있지만 자신이 만든 감옥에 빠져서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 저의 과거의 모습과 너무 겹쳐져 보였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저의 과거의 상황이 더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자녀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저의 부모님들이 어떤 상태였는지도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이유없는 두려움을 느끼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못할것 같은 막연한 감정적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그러한 감정이 저의 과거의 고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감정이 현실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저 자신에게 돼새기면서 저의 감정을 돌아보았습니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아마 잘못된 감정이 수시로 떠오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감정들이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고통에서 비롯 되었다면, 당연히 과거와 함께 보내주어야 할 것입니다.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도다"라는 어느 성경구절처럼, 오늘 삶에서 당하는 감정은 오늘 족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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