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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식 못할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의 비극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감정과 욕구가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가 당연하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당연한 것들을 우리의 이성과 몸이 알아차리고 살아가고 있는가 라고 질문을 바꾸면 많은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저도 사실 이러한 인식없이 평생을 살아오다가 중년의 위기를 맞이하고 수많은 혼돈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도대체 내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경험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서 계속 질문을 해왔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다가 내자신에게 질문했던 것이 내가 나의 감정과 욕구를 인식하고 살아왔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글에서도 여러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저의 삶의 형태는 두려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삶이었습니다. 물리적, 정서적으로 폭력적인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저의 아버지는 전형적인 C-PTSD의 증상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정서조절이 힘들고 정서를 억누르고 자녀들과 대화를 하지 못했습니다. 친밀한 관계를 갖는것이 불가능한 분이셨습니다. 어머니는 정서적인 표현을 전혀 하지 않으시고 억누르시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분노와 수치와 두려움의 감정을 억누르고 있다가, 불규칙한 시점에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그 쌓였던 감정을 폭발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 외의 여러가지 상황에서 저는 항상 부모님의 분노의 감정에 두려워 떠는 삶을 살았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집은 안전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불안하고 눈치를 살펴야 하는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러한 상황에서 할수 있는 일은, 저의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숨어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의 문도 걸어잠갔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한가지 목표는 생존이었습니다. 어떻게 두려운 상황에서 살아남느냐 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불안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 공부도 하고 뭐라도 하려고 했던것 같습니다. 결국 두려움이라는 감정에 묻혀서 저를 다른 사람들과 구분할수 있는 감정과 욕구는 수면 아래로 숨어버렸던 것이라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단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만나게 되면 다른 여러가지 감정이나 욕구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삶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보다는 아버지의 감정과 분위기에 더 민감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경향이 저의 몸에 배어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이나 욕구가 저의 감정이나 욕구보다 더 우선순위가 되는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은 그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욕구는 먹고 사는 수준에서만 해결이 되면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분위기만을 살피면서 살아왔던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집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공감받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 어렵고 자신의 욕구를 관철시키는 것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욕구를 이야기 하는 것을 이기적인 것으로 생각해서 이야기 하기 꺼려하는 경향도 가지게 됩니다. 지금 저의 어린시절을 돌아보면 저희 집에서 항상 하던 이야기가, 먹고 살면 됐지 더이상 뭘 바라냐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즉 자신의 감정과 욕구는 최소한으로 유지하라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듣고 자랐던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의 집에서는 먹고 자고 학교보내주는 것만 해주어도 부모로서의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생존에 필요한 욕구 이외에 다른 감정이나 욕구는 사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세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알게 모르게 엄청난 방해요소가 되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서서히 깨닫고 있습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대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대하게 되고 이야기 하게 됩니다. 그 말은 다른 사람들도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되는 존재로 인식하고 대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그런 존재가 아닌데 말입니다. 


두려움에서 도망가는 존재가 아니라, 인생에서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성취해 가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잘 읽어낼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인생을 통해서 진정으로 이룩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감정과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첫번째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인정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욕구도 인정하고 존중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읽어내는 일은 짧은 시간에 할수 있는 일들이 아닙니다. 자신을 자세히 관찰하고 시행착오를 거처야 할수 있는 일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파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면,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알아차리는 연습을 했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감정과 욕구를 더 쉽게 읽고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것은 저에게 재능도 있고 일을 잘했는데, 저의 트라우마와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깨짐으로 해서 당연히 요구할수 있는 것들도 요구하지 못하고 삶에서 뒤쳐졌다는 자괴감이 너무나 저를 괴롭혔습니다. 자신을 그냥 먹고사는 것만 해결되면 만족하고 살아야 하고,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하는 내면의 목소리와, 자신에 대한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느낌과 생각들이 저의 삶을 갉아먹었다는 자괴감 때문에 더 괴로움을 경험했습니다. 저에게도 감정이 있고 욕구가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없었던 것이죠. 


그래도 이러한 문제점을 깨달은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삶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으니, 새로운 시각에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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