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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재발견

그동안 삶을 사는데 방해만 되는 존재로 여겼던 감정의 중요성

감정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거추장 스러운 요소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기 위해서 억눌러야 하고 숨겨야 하는 것이 감정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참을인자 세개면 살인을 면한다는 말에서 나타내듯이, 부정적인 감정은 참고 표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식이 한국인의 의식에는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감정을 잘못 표현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개념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부정적 감정에 대한 시각은, 무조건 다른 사람들에게 웃으면서 대한다거나 극도의 친절함만을 강요하는 현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와 연관되어서 유교의 문화적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적 정서에서 남성들이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서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더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연결되어서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터부시 여겨지는 사회분위기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감정의 해소는,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러한 감정이 왜 만들어 졌는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러한 감정을 공감받고 해소하는 과정을 경험할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연습하고 훈련을 해야만 가능한 것인데, 어렸을때부터 말하는 것이나 감정의 표현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회적 편견을 가진 가정에서 살게 되면, 이러한 훈련 자체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부모도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부적절하게 자녀들에게 분노를 풀어내거나 언어적인 표현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자녀들은 이러한 부모에게서 감정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배울수 없습니다. 


한국에서 감정에 대한 무지가 광범위하게 퍼진 이유중의 하나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에서 생존이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던 세대는 감정은 사치라는 인식이 팽배했었다는 사실과 연관이 있습니다. 저의 집안에서도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배부른 소리라는 잔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먹고살수만 있으면 다 되었다는 인식이 집안 어른들 사이에 있었고, 그러한 분위기는 정서적인 교류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친밀한 관계 자체를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먹고 살고 학교가면 다 해결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어른들은 해소하지 못한 분노와 수치심을 자녀들에게 해소하는 모순적인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삶을 의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저의 경우도,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인해서 억눌려졌던 감정의 문제가 중년의 나이에 터져나오면서 심각한 삶의 문제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몰라서 오랜시간동안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우는 시기를 통과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어디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는지를 돌아보면서, 저의 집안의 심각한 트라우마와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종교적, 그리고 문화적 요소들이 날줄과 씨줄로 연결되어서 왜곡된 시각을 만들어내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정서지능이라는 말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감정과 정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의 심리학에서 감정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면서 감정에 대한 관심이 어느때보다도 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에 대한 관심은 현대의 새로운 발견에 의해서 새롭게 부각된 것은 아닙니다. 위빠사나등의 오래된 명상기법에서도 신체의 느낌과 감정에 대해서 오래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내용이고, 기독교의 신비주의에서도 개인적인 체험측면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부분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교의 카르마가 감정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주장하는 분도 보았습니다. 트라우마를 연구하는 분들은 이러한 감정의 기억들이 해소되지 않으면 몸에 기억되어서 나중에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은 세대를 넘어서 전달된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즉 내가 느끼는 감정들 중에는 조상들이 느꼈던 감정중에서 해소되지 않은 맥락없는 감정이 있을수도 있다는 이야기이고, 그러한 감정을 느낄때마다 혼란스러워 하거나, 자신에게 벌어지는 현실로 그러한 감정을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지식을 습득해야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아갈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만 집중하는 사이에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데 더 중요한 감정의 문제를 놓치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다른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가 더 어려워지는 미래사회가 도래하면서 먹고사는 문제때문이 아니라 외로움과 감정적인 어려움이 인류의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가 될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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