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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의 감정이 들때

수치심의 감정이 들때, 어떤 반응을 하는지를 살펴봅니다.

수치의 감정은 마주하기 어려운 감정 들입니다. 수치의 감정이 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감추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상황에 대해서 감추게 되는데 이때 자신이 수치를 느끼게 된 이유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감추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아담과 하와는 벗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자신들의 성기를 가렸습니다. 이러한 가리는 행위는 수치감을 느꼈을때 그 순간을 넘어갈수는 있지만 그러한 행동은 장기적인 방법은 되지 못합니다. 마치 나뭇입으로 자신들의 성기를 가렸던 아담과 하와의 방법이 장기적인 방법이 될수 없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성형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됩니다.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마음에 들지 않고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 그것에 계속 신경이 쓰이게 되고, 그것만 좋아지게 되면 모은 인생이 달라질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성형수술이라는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과 몸에 손을 대기 시작합니다. 물론 성형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지만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세상에 떠돌게 됩니다. 


수치의 감정은 그 감정자체에 머물지 않습니다. 다른 감정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성경에보면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동생과 같이 하나님에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제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생의 제사만 받아들여 졌습니다.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때 가인은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감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풀어야 하는 것이 합당해 보입니다. 왜 저의 정성을 받지 않으셨나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나요? 라고 하나님과 대화를 시도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수치심을 넘어서 분노의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는 엉뚱하게도 자신의 동생 아벨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사실 아벨은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입니다. 단지 자신은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것 뿐 다른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가인의 동생으로 같이 제사를 드렸다는 이유로, 가인의 제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가인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가인의 분노는 끝내 살인이라는 결과로 귀결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서 어떻게 수치감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형제간의 살인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지 보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사실 오늘날의 삶에서 많이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시기심이라는 것도 유사한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을때, 그것에 대한 시기심이 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기심에서 상대방을 괜히 미워하고 괴롭히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군대에서 자기보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잘난 후임병이 들어왔을때 괴롭히는 선임병도 비슷한 심리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기심은 인간의 삶을 고통스럽게 됩니다. 


이러한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의 잘못된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할때에만 가능해지는 것이지만,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고 수치감을 분노의 감정으로 발전시키고, 그러한 분노를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놓기 시작하면 좋지 못한 삶의 결과를 맞이하게될 것입니다. 


이러한 수치심의 감정과 분노의 감정은 대를 이어서 흘러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수치와 분노의 감정을 대하는 방법 자체가 집안 사람들의 방법으로 고착회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들이 자신의 수치와 분노의 감정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면서 문제를 직면하지 않고 다른 방법을 통해서 수치와 분노의 감정을 잠깐 잊어버리려고 한다면, 자녀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수치와 분노의 감정을 해소하도록 훈련되게 됩니다. 이것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의식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알아차리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어떤 가족은, 어른들의 잘못을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고, 거짓말로 자녀들에게 뒤집어 씌워서 책임지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부모도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자녀들은 영문도 모른체 모든 감정적 짐들을 뒤집어쓰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 자신이 수치감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지 모르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감정들을 또 자녀들에게 넘겨주는 과정을 되풀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가정이 건강한 삶을 살아갈수는 없습니다. 언젠가는 집안에서 한 사람이 그 건강하지 않은 감정의 대물림을 끊어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조상들이 했던 그 추악한 진실을 직면해야 하고 그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끊어내야 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자손들은 그 고통의 굴레를 계속 되풀이 해야 합니다. 


수치의 감정이 들때, 우리는 그 수치의 감정을 직면해야 합니다. 왜 내가 수치의 감정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러한 수치의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가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등등에 대해서 말입니다.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할수 있는 힘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힘인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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