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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감을 다루는 방법

수치감과 고통의 감정을 다루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느 여인이 있었습니다.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때에 사랑하지 않지만 같은 동네에 사는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모든 동네사람들이 자신과 그 남자와의 관계를 다 알게되고, 아이를 가졌다는 것 까지 알게 되었을때, 낙태를 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여인의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폭력적이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감을 주지 못했습니다. 


여인은 고통속에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아이를 볼때마다 그날의 악몽같은 일들이 떠올랐습니다. 수치감, 폭력에 대한 두려움, 생활고 등의 여러가지 어려움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천갈래로 찢어지고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수치감으로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자신이 원말 스럽고, 남편이 원망스럽고, 자신의 딸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아이만 갖지 않았어도 저런 남자와 결혼하지 않았을텐데, 그때 밤에 혼자 나가지만 않았었어도, 그 남자를 그시간에 만나지 않았을텐데. 수많은 후회와 원망의 감정들이 그 여인을 괴롭혔습니다. 결국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계속 자신을 원망하거나 타인을 원망하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여인은 어떠한 선택을 할수 있을까요? 만약 현실이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워서 견딜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부정해서, 이것은 현실이 아닐꺼야 하고 이건 환상일거야 하고 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하는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선택을 한다면, 그녀의 삶은 더 불행으로 치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때문에 결국은 더 심각한 정신적 질병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다른 방법은, 이러한 현실은 인정하되,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법을 취할수 있습니다. 남편은 자기보다 더 힘이센 존재라서 책임을 전가하기 어렵다면, 자녀에게, 너만 안생겼어도 내가 이렇게 괴로운 삶은 안 살았을텐데 라고 딸아이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딸이 생긴 것은 딸의 잘못이 아닌데, 이러한 책임전가는 사실 말이 안되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이 여인은 상황에 대한 책임은 면하게 되어서 마음의 수치감은 줄어들수 있겠지만, 상황이 벌어진 원인을 딸아이에게 돌림으로 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갈 주도권도 넘겨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불행한 상황에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수 없는 사람으로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이 여인이 자신에게 벌어진 불행한 삶의 사건이 만들어낸 수치와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사실 우리는 이 여인에게 어떠한 삶이 펼쳐질지는 알지 못합니다. 삶은 우리에게 커브볼을 던질때가 많이 있는것 같습니다. 갑자기 인생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삶에 큰 질문을 던질때가 있습니다. 그러한 사건들은 우리의 마음 깊숙히 가지고 있는 수치감과 두려움의 감정을 건드리게 됩니다. 그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도 삶을 살아가면서 삶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해서 너무나 오랜시간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현실의 문제가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든 현실의 문제를 풀려고 하니 풀리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릴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다른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저는 저의 행동과 생각패턴 등이 저의 조상들의 패턴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가족에 수많은 수치와 두려움의 감정이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가족에서는 그러한 수치의 감정을 숨기고 조상들은 다 좋은 사람인 것으로 포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포장을 하는 과정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의 고통은 모두 무시당했기 때문에 상당한 분노와 부정적인 감정이 남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상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라는 가스라이팅을 통해서 완전히 세뇌가 되어서 의식적으로는 그 내용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남게 된것은, 집안의 젊은 세대의 아이들이 이유를 알수 없는 두려움과 수치의 감정만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이유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소한 일에도 수치의 감정과 분노의 감정을 품게 되어서, 사회생활이 어려워 집니다. 저도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권위자와의 관계가 어렵고 힘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보게 되면서, 왜 제가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들었는지를 다시한번 깊이 이해할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저 혼자만의 상황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건강하지 않은 가족들 사이에서 이러한 현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정서적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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