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부모가 준 상처는 치료해야 합니다.

마음의 상처는 치유하지 않으면 자녀들에게 대물림 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도 30이 넘은 늦은 나이에 미국으로 와서 처음에는 고생을 하셨지만, 지금은 정착을 해서 전문적인 직업을 가지고, 결혼도 하시고 잘 생활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아버지가 상당히 폭력적인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어렸을때 많이 맞고 자랐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싫어서 고등학교를 갈때는 집을 떠나서 타지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셨다고 했습니다. 미국에 온 이유중에 하나도 아버지로부터 떨어지고자 하는 마음과, 한국의 회사에서 다른 사람밑에서 일하는 것이 맞지 않아서 독립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 였다고 했습니다.  


이분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버지가 폭력적이어서 많은 맞고 자라고, 아버지가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주지 않고 마치 아버지의 부속품인 것처럼 여겼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분은 자신이 맞은 것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아버지가 자신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아버지의 부속품인 것처럼 여겼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엄청난 정서적 폭력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이야기 하면서 그분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그분의 내면에 엄청난 분노가 있는것을 볼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부모는 전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미안하다는 말도 들을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에 무기력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갔던 많은 아버지들이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아버지만 뭐라고 하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피해자는 엄청난 감정적 고통에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가해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정서적폭력이 얼마나 자신의 삶을 갉아먹고 있는지 충분하게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강도가 집에 들어와서 사람을 칼로 찌르면 중대한 범죄자로 여기고 처벌을 하게되고 칼로 찔린 사람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합니다. 눈에 명확하게 피해자를 알수 있고 범죄자를 볼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서 공감할수 있습니다. 눈에 상처가 보이고 고통의 여부를 충분히 예측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적폭력은 어떤 행동이나 언어가 심각한 공격인지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격을 받은 사람이 어떠한 고통을 느끼고 어떠한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는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부모들은 자신들이 무슨 잘못된 행동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느경우는 자식들 잘되게 하려고 한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정서적인 폭력을 휘두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무서움이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저희 집이 아무문제가 없는줄 알았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인관계 특히 직장 상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은 있었지만, 밥은 먹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어서 미국으로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도 직장 상사와 동료사이에 문제는 있었지만, 그래고 어느정도 버티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제가 더이상 버텨낼수 없는 수준 이상의 정서적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현실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면서 책도 읽고 강의도 듣고 하면서 저희 집안이 상당히 심각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집안이고, 집안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친척들이 마음에 많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고 정서적인 어려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중년이 되도록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살아왔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러한 집안에서 자라다 보니 그러한 상황이 정상으로 인식되고 이에 따라서 저의 인지구조나 생각하는 패턴이 거기에 맞추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런 저의 생각이나 믿음 그리고 감정들이 미국에서 생활하다보니,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것입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그러한 면들이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다 범죄자만 있다고 해서, 범죄자의 범죄가 정당화되지 않습니다. 범죄행동은 범죄 행동인 것입니다.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부모들이 대부분이라고 해서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부모나 그들의 행동이 정상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정서적인 학대는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한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데 중대한 방해요소입니다. 인생 자체를 의미없게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 무서운 것은, 피해자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서적인 학대로 인해서 만들어진 인생의 문제를 자신이 모자라서 그랬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다고 자신의 잘못을 부모의 잘못에서 이유를 찾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자녀들의 문제일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부모들도 희생자일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처가 있으면, 그것을 찾아내서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모든 것이 정상인것처럼 살아간다면 집안 대대로 자손들까지 피해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을 갖는 것에 가장 큰 걸림돌은, 그래도 나의 부모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교를 보내주었는데, 그 이외의 사항을 가지고 부모의 잘못을 들추어 낸다는 것에 대해서 상당한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많은 부모들이 그러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을 보살펴주어야 하는 것은 부모가 해야할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러한 의무를 지켰다고 해서, 다른 모든 악행이 정당화 될수는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모의 잘못을 들추어 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트라우마와 상처들을 찾아내어서 치료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부모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면 안됩니다. 


한국은 비극적인 근대사로 인해서 국민들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나라입니다. 그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한국민은 한강의 기적을 일으켜냈고, 전례가 없는 경제적 성장을 이룩해 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눈부신 성장을 이룩해 냈지만, 마음의 상처를 돌아보는데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국민들의 트라우마와 마음의 상처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기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때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수 있을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감정을 마주보는 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