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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마주보는 용기

감정의 폭풍속에서 도망치지 말고 온몸으로 느껴지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

얼마전에 만난 30대 젊은 부부가 있습니다. 남편은 고등학교때 어머니와 다른 남동생 두명과 함께 미국에 유학을 왔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 대학교에 진학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몰라서 1년정도 여행을 다녀왔었는데, 그 이후에는 건축쪽으로 진로를 결정해서 문안하게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의 중요한 선택의 과정에서 모든 일들이 물 흐르듯이 흘러갔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혼하는 과정에서도 아내가 한국에서 와서 직장을 찾게되는 과정에서도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에서도 집을 찾는 과정에서도 미국에서 20년을 살았던 제가 보더라고 한가지 한가지가 사실 쉽지 않은 과정이었는데, 그 가정은 순조롭게 모든 일들이 이루어졌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직장생활도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같이 만나게 된 과정도 순조롭게 모든 일들이 그 가정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모든 일들이 결정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편분은 특별한 인생의 목표라던가 투철한 사명이 있어서 엄청난 의지력으로 상황을 극복하겠다는 의식 자체가 있지는 않은 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면서 삶이 이렇게 잘 풀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1세대로 이민을 오신 분들은 대부분 영어를 많이 쓰지 않아도 되고 블루칼라의 일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고생고생을 해서 자녀들을 교육시켜서 자녀들이나 손자, 손녀 세대에 가서야 사회의 주류로 편입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유학을 온 사람들은 학교를 마치고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직업을 구한 다음에도 영주권 때문에 오랜기간 동안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그중에 영주권을 받지 못해서 돌아가는 사람들도 생기게 됩니다. 그 이후에는 결혼이라는 관문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졸업을 한 다음에 영주권과 결혼이라는 두 관문을 잘 통과한 사람들은 비로소 미국사회에서 어느정도 기반을 가지고 정착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힘든 여정을 거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그 남편분은 그러한 마음고생을 크게 하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그분을 보면서 저의 삶을 한번 돌아보았습니다. 34살에 처음 미국으로 직장을 구해서 온것도 쉽지 않은 경우이지만, 그 이후에 언어적인 면,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던 회사의 분위기, 새로운 미국이라는 사회에 적응하는 일,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애착 트라우마라는 고통과 싸워야 했던, 미국에서 다른 친척없이 아내와 둘이만 아이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여러가지 상황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제가 오랜시간 경험해야 했던 정서적 공황상태가 왜 나에게 왔던 것일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정서적 공황상태가 왔을때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그 감정에 압도되어서 아무것도 할수 없었고, 그러한 상황이 장기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 압도 되어서 혼자만의 세계에 오랫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도저희 그 고통에서 빠져나올수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를 이해할 수 없었고, 저도 어떻게 그러한 정서적 공황 상태에서 빠져나갈수 있는지 알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숨어 있을수록 그 고통은 약해지지 않고 더 강도가 강해졌습니다. 아무도 저를 그곳에서 구출해줄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저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저는 그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저를 저만의 감옥에 가두고 속박시켰습니다. 저는 그 고통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습니다.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정의 고통이 몸에 익숙해지면서 제가 죽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정서적 고통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감정이 괴로울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저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죽을것 같은 감정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할수 있는 것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야 알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자기 자신의 감각을 모두 마비시키고 살아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다가 미국으로 와서 살면서 더이상 감정을 막아놓고 살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막아두었던 감정의 뚝이 무너져 버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막아두었던 감정들이 쓰나미가 되어서 저를 무너뜨려버렸다는 것을 말입니다. 


저는 그 감정의 쓰나미 속에서 옷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몸의 곳곳에 상처가 나고 나의 에고는 너덜너덜해졌습니다. 저의 모든 치부가 드러나 버렸습니다. 한동안은 나에게 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신이 없어서 혼동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난 10년 이상을 그렇게 보낸 것입니다. 이제야 각종 감정의 쓰레기가 곳곳에 널려있는 감정의 쓰나미가 지나간 자리를 돌아보면서 그 의미를 찾아가고 그 과정에서 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직 그 깊은 의미를 다 알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제가 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경험을 한것인지는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들이 있다는 것에 신기해 합니다. 그리고 격한 공감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어떠한 감정이 찾아올때 가끔이지만 감정에 압도되지 않고 바라볼수 있는 여유가 있을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피하지 않고 마주하면 가끔씩은 새로운 깨달음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이제는 감정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자신의 감정센서를 끄지 않을 겁니다. 감정이 찾아오면 반갑게 맞이하고 그 감정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합니다. 그속에 숨어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많은 비밀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특히 고통스러운 감정일수록 그안에 특별한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가족의 이야기와 조상들의 이야기도 들어있습니다. 그속에 큰 비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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