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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가족 이야기

수치감에 관한 이상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어느 소년이 경험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이 아이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리고 그의 부모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가 자랐을때 어떤 삶을 살았을지를 한번 생각해 보시면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것 같습니다. 


어느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경제적으로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양육은 그저 밥먹이고 재워주고 학교를 보내주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부모였습니다. 어느날 그 아이의 20대 숙부가 조카들의 출생신고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저 학교에 일찍가면 좋을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에 12월 30일 태어난 아이의 생일을 2월 28일로 앞당겨서 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는 거의 2살이 많은 아이들과 함께 초등학교를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40대였는데, 이러한 자신의 동생이 한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제기도 하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시간이 지나 그 소년이 학교에 갈 시기가 왔습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6살에 학교를 가야 한다고 하자, 아이는 무섭다고 아버지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버지는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학교를 가야 한다고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울면서 무서워서 학교를 가기 어렵다고 여러번 이야기를 했지만 아버지는 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아버지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자 그 어린이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방에서 울면서 뛰어나왔습니다. 아이는 집밖으로 맨발로 뛰어나왔습니다. 혼자 갈수있는 곳은 별로 없었습니다. 집밖에 굴뚝이 있었는데, 그 뒤에 숨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맨발로 뛰어나올 만큼 아버지는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그 아이를 위로해주는 사람은 가족중에서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쩔수 없이 아이는 초등학교를 6살에 가야 했습니다. 반의 친구들은 대부분 8살 이었습니다. 한달동안은 분리불안으로 인해서 아이는 혼자 학교에 있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학교에 데려다 주고 교실안에 1-2시간씩 머물다가 돌아왔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내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수업을 따라가기도 어려웠고 다른 또래아이보다 작았기 때문에 여러가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저학년때는 항상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부모들은 그러한 아이에 대해서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나오는 숙제나 공부는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아이는 어린시절의 공포스러운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어서, 권위자에 대한 불신과 분노, 그리고 두려움으로 인해서 제대로 사회생활을 할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의 실패의 경험들로 인해서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고, 주양육자와의 불안정한 애착과 관계트라우마로 인해서 C-PTSD의 증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자신이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 있다는 것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고 그저 그러한 증상이 일반적인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 삶속에는 이유를 알수 없는 불안과, 수치감, 분노, 두려움등이 삶을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들었고, 다른 사람들과 건강한 관계를 만들지 못해서 외토리로 살아야만 했습니다. 집안에서는 아이가 집안에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방에만 들어가서 있는것을 보고는 왜 그러는지 이야기를 해주거나 어려운점이 있는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성격이 그렇다고 생각하고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 아이는 집에서는 주로 다 헤어진 추리닝을 입고 다녔는데, 하루는 그 아버지가 이사로 있는 협동조합의 조합총회에 어머니와 같이 갔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조합 총회에 참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경품추첨을 하는 시간에, 사회자는 아버지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들이 대신 추첨을 하면 좋을것 같다고 해서, 이 아이를 불러내었습니다. 아이가 앞으로 나가는데, 많이 헤어진 추리닝을 입고 나가는 아이에게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입고있는 옷이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그러한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가 있는것인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중에 친척중의 한 아주머니가 그 아이의 어머니에게, 아이에게 좀 옷좀 사주지 그게 뭐냐고 한소리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아무런 이야기도 아이에게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아이들은 옷같은 것에 신경을 안쓰고, 아무거나 입고 다니는  검소한 아이들이라고 자랑을 하고 다녔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왜 자신을 일찍 학교에 보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아버지는 본인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너를 낳았기 때문에 더 늦어지기 전에 학교를 보내서 자신이 죽기전에 아이가 학교를 마무리할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일찍 보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믿었습니다. 나중에 한참 시간이 지난 다음에 성인이 되어서 그 말이 거짓말이고 숙부가 아무것도 모르고 출생신고를 임의로 앞당겨서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러한 글을 읽으면서, 별다른 문제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 그정도의 일들은 옛날에는 많이 있었던 일 아닌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과,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느끼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위의 이야기는 부모세대의 수치감이 어떻게 자녀세대로 흘러가게 되는지 단서가 될수있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속의 아버지가 어떻게 본인 세대의 수치감을 자녀세대에게 물려주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시면 흥미로운 점들을 발견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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