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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자와 같이 있는것이 편한가요?

권위자와 같이 있는 것이 편안하고, 쉽게 이야기할수 있다면,

여러분은 권위자와 같이 있을때 편안함을 느끼고 따뜻함을 느끼시나요? 그리고 권위자들과 편안하게 이야기할수 있나요? 만약 이 두가지를 모두 할수 있다면 여러분의 삶은 이미 행복한 삶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어떤 분들은 그거야 어떤 사람과 같이 있느냐의 문제지, 그건 사람따라 다 다른거 아니야?  이렇게 대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전반적인 경향성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권위자에게 편안하게 다가갈수 있다는 것은 기억속에 권위자에 대해서 좋은 경험과 기억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부모와의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따뜻함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러한 상황을 다른 권위자에게도 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정경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특히 어떤 물체나 대상에 대한 감정경험이 있을수 있는데, 예를 들면 아버지와 어린시절 즐거운 경험을 많이 했던 사람들은 아버지를 생각하면 좋은 감정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번의 사건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와 살면서 있었던 여러가지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썰매를 만들어 줬다거나, 음식을 만들어줘서 맛있게 먹었던 경험이 있다거나, 아니면 여행이나 등산을 다니면서 행복했던 경험이 많이 있는 아이는 아버지를 생각할때 즐거움과 기쁨의 감정이 느껴질 것입니다. 


이러한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한 감정은 광고에서도 많이 사용되는데, 광고에서 담배를 멋있게 피는 영화배우가 나온다면, 담배라는 특정 대상을 생각할때 멋있고 담배를 피고싶다는 감정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만약 광고에서 멋있게 차를 운전하면서 달리는 성공한 사람들을 보여주게 되면, 광고에 나오는 차량과 성공, 만족 등의 감정을 연결하게 되면서, 그 차를 가지면 성공한 것이라는 만족감의 감정을 느낄수 있게 됩니다. 이런 광고에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좋은 이미지, 혹은 감정경험을 자신의 상품과 연결시켜 놓으면 소비자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살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에 미국에 왔을때 하숙집에서 3달 정도를 머무른 적이 있는데, 거기에 있는 여학생이 하나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교를 가기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는 학생이었는데, 그 집을 관리하고 계신 할머니에게 존대말을 하지 않고 친구처럼 말을 편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것이 무례하거나 버릇없이 안들리고 친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할머니도 말을 놓고 편하게 대하는 그 학생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저의 경우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여학생은 아마도 자라는 환경에서 할머니와 친구처럼 편하게 지내는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유추해 봅니다. 그것이 전혀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이해되지 않고 할머니가 친구처럼 편하다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에, 다른 할머니들을 볼때도 그러한 편한 감정을 예상하게 되고, 쉽게 말도 걸고 대화를 할수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을 해봅니다. 


이러한 권위자에 대한 개인적인 감정경험은 사회생활을 할때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 수준에서 작동하는 이러한 권위자에 대한 자신의 감정경험에 대해서 인식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동적인 감정반응에 대해서 무지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학생때 초대를 받아서 다른 집에 갔을때 어른들이 편하게 있어라고 말하시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항상 편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그분들에 대해서 믿지 못하거나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른들 앞에서 편하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경험이 없고, 더 솔직히 말하면 그러한 편한 감정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감정경험의 무서움은,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머리로 추측할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느껴보지 못한 것을 머리를 써서 논리로 경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편안함이나 사랑이라는 감정을 논리로 설명할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것은 느껴봐야 알수 있는 것들입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면, 저는 권위자와 만날때 전혀 평안함이나 즐거움등의 감정을 느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을 기대하지도 않고 그저 힘들어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참아내야 한다는 억제와 수치의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은 권위자와 강하게 연결되어서 사회생활 내내 권위자만 만나면 이러한 감정이 반사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이러한 저의 감정반응은 사회생활 내내 저를 괴롭혔습니다. 제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권위자와 같이 있는것이 편하고 즐거운 경험인가요? 권위자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있나요? 아니면 두려움과 수치감, 불안감등의 감정들이 떠올라서 같이 있기가 어려운가요? 같이 있으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할수 있나요?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신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의 사회생활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분들은 다른 사람과의 깊은 관계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자신의 기술과 지식에 의존하여서 사회생활을 할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이신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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