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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기

감정의 기원 (Genesis of Emo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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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린 시절부터 신앙 안에서 자라왔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이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중, 중년의 깊고 고통스러운 위기를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삶의 표면 너머에 더 깊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것이 단지 막연한 느낌일 뿐, 명확히 말로 설명하거나 정의할 수는 없었습니다. 내면의 고통이 계속되면서 손에 잡히지 않던 그 무엇이 점점 더 구체화되기 시작했고, 그러한 내적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들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심리학, 정신건강 상담, 그리고 신앙 서적들을 공부하면서 감정과 내면, 존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접하게 되었고, 그것들이 어느새 저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사람의 마음과 존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외적 행동의 수정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삶 전체를 바꾸어가는 과정입니다. 진정한 변화는 사람들 앞에서 잠시 보여지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한 내면의 전환을 동반해야 합니다. 저는 제 삶을 돌아보며,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해왔던 신앙생활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진지하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의 신앙생활은 내면의 변화보다는 외적인 모습과 종교적 행위에 집중되어 있었고, 실제 삶을 변화시키기보다는 형식에 머물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신앙적으로 보일까”에 몰두하며, 감정의 뿌리를 보지 못한 채 반복적으로 실망하고 자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제 내면을 보기 시작한 것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내적 고통이 삶을 압도했을 때였습니다. 이전까지는 내면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살았고, 오직 외적인 성취와 형식에만 집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제 삶을 무너뜨리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세계 너머에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인생이라는 그림의 표면을 들추었을 때 그 뒤편에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제 주변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던 곳이었고, 그 커튼을 들추는 데에는 40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 시간을 지나며 저는 신앙생활의 본질에 대해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이란 무엇이며, 그 목적은 무엇일까요? 내면의 세계를 성찰하는 시간이 저에게 새로운 시각과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 생계, 직장에서의 과업과 성취 욕구는 여전히 내면의 여정과 충돌했습니다. 때로는 내면을 성찰하는 일이 현실 도피나 여유로운 사람만의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두 세계는 대립이 아니라 결국 통합되어야 할 여정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이 생각과 경험들을 글로 정리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감정”이라는 주제가 있습니다. 저는 성경 속 감정에 대한 서술들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 싶습니다. 그것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과 인류가 감정을 어떻게 다뤄왔는지를 살펴보고, 나아가 신앙생활과 감정 인식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창세기는 세계와 인간의 기원뿐 아니라, 감정의 기원에 대해서도 중요한 통찰을 줍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벌거벗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은 후 그들은 스스로의 수치를 인식했고, 그로 인해 두려움과 숨음이 등장합니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인간이 죄를 지은 후 최초로 경험한 감정입니다.


이후 가인의 이야기에서도 감정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제사를 받지 않자, 가인은 분노하고 동생 아벨을 살해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4:7). 이는 감정이 곧 죄라는 의미가 아니라, 감정에 압도되어 죄로 나아가지 않도록 감정을 인식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중요함을 시사합니다.


가인은 수치심을 직면하지 않고, 그것을 분노로 바꾸어 외부로 투사했습니다. 결국 그는 동생을 탓하며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성경은 가인을 “악인의 대표”로 묘사하지만,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는 그러한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의 감정과 죄를 인식하지 못하고 회피한 것이 더 깊은 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정신건강 상담에서도,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것이 치유의 핵심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신앙생활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은 단지 도덕적 행위나 외적 열심에 머무르지 않고, 내면의 감정과 진실을 마주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여정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감정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훈련이 신앙의 본질적 요소 중 하나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는 성경 속 감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보려 하며, 가능하다면 불교나 타 종교와의 비교도 시도하되, 제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정직하게 나누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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