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세계를 돌보지 않고 외적인 요소만으로 불안을 해소하려는 시도의 무모함
저의 경우를 돌아보면, 중년의 위기를 맞이해서 표현할수 없는 불안함과 수치감 두려움등과 같은 감정들로 인해서 극심한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불안하고도 고통스러운 감정의 원인이 외부의 상황에 있다고 믿고, 그러한 외부의 상황을 변화시키려고 이런저런 시도들을 해보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은 오히려 상황을 더 악화시켰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을 오래 지속하면서 점점 더 심각한 어려움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사실 그때만 해도 저의 내면에서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내가 그런 고통속에 있는지 어떠한 단서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일면 이해도 되지만, 너무나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그저 외적인 상황만 개선되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이것저것을 해보았지만, 외적인 상황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시도했던 모든 것들이 실패하고 진전이 없어지자, 저는 자포자기 상황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할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되고 고통이 계속되면서 저는 살아갈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치유의 여정에서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했습니다. 책을 통해서 그리고 날마다의 삶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수 있는 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새로운 내용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심리학의 정신역동치료 분야에는 객체관계이론 (Object Relations Theory)라는 것이 있습니다. 객체관계이론에서는 내면세계는 어린시절 관계 특히 주양육자인 아버지나 어머니등과의 관계에서 만들어진 표상 혹은 객체들로 만들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내재화된 객체들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감정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혹은 이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만약 한 개인이 주 양육자와의 안정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안정적이고 풍부한 내면의 객체들을 만들지 못할경우에는 이러한 모든 작업들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고 설명을 합니다.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아의식이 약하거나 파편화됨
충분하고 일관된 양육관계를 경험하지 못한 경우에는 내면화된 안정적이고 일관성을 가진 정체성을 가질수 없습니다. 이러한 개인의 경우에는 공허함, 불안정성 그리고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증상들은 경계성인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등에서 발견되며 일관성없는 관계경험을 통해서 자아(Self)가 안정적으로 형성되지 않아서 발생하게 됩니다.
2. 불안정인 감정조절
내면화된 좋은객체가 없을 경우에는 나 자신이 홀로 있거나 어려움을 경험할때 안정시켜줄수 있는 존재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내적자원이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어려운 상황을 경험할때 감정적으로 폭주하기 쉽고 분노나 실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내적자원이 없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타인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을 보이기 쉬우며,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서 타인과의 관계에 어려움을 경험하기 쉽습니다.
3. 관계의 어려움
부부나 연인관계에서 자신의 내면에 채워지지 않은 주양육자의 모습을 이상화 하여서 무리한 것을 기대하거나, 이러한 무리한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주지 못할때 심한 배신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날때 방어기재를 통해서 만남을 추구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수 없습니다.
4. 상징적 사고, 놀이, 창조적인 일들을 할수 있는 능력이 떨어짐
내면에 안정적이고 풍부한 객체들이 있는 사람들은 상상력과 창조성 그리고 놀이를 즐길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없는 사람들은 경직되기 쉽고 기계적이며, 고도의 기능성만을 강조하는 삶을 살기 쉽습니다. 이러한 삶에서는 외적인 성공이 내면세계의 충족을 대체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5. 영적 혹은 존재적 공허함
신학적 혹은 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러한 사람들은 영혼의 상실, 신의 부재, 혹은 내면세계가 망가진 상황으로 볼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종교적체험, 공허를 채우기 위해서 외적인 지위나 성공을 추구할수 있지만 어떤 것으로도 만족을 경험할수 없습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어린시절 주양육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서 인간 내면에 안정적인 표상과 객체들이 풍부하게 만들어졌다면, 삶을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수 있는 좋은 토양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중요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주양육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지 못하고 불안정한 혹은 아무런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인간 내면에 불안정하고, 풍부하지 않은 내면세계가 만들어져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힘들고 어려워 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내면세계의 문제는 본인 스스로 알수 없기 때문에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것에서 찾기 쉽고, 그렇게 되면 고통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저의 삶속에서 제가 가지고 있던 문제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저의 내면이 부실하고 불안정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외부의 세계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세계를 모델링할수 있는 풍부한 내면세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복잡한 외부의 세계를 부실한 내면세계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중요한 정보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생각과 개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정적이고 건강하며 풍성한 내면세계를 만드는 것이 이 세상을 올바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