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자신의 삶에 적응해 간다
이번주에는 업무상 남수단의 벤투(Bentiu)라는 곳으로 출장을 왔습니다. 외따로 떨어져 있는 섬으로 남수단의 난민들이 자리잡고 살아가는 곳입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면 황량하기 그지없고, 땅에 내려서 바라보면 그 삶의 막막함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러한 땅입니다. 남수단의 내전으로 갈곳을 잃은 사람들이 겨우 구호물자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큰 규모의 난민촌입니다. 10만명 정도의 난민들이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환경에서 살아갈수 있을까 의문을 제기할수 있지만, 그곳에서도 시장이 형성되고, 나름대로의 삶의 규칙이 만들어지고 어떻게 해서든 삶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명화된 도시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수도꼭지만 틀기만 하면 물을 사용할수 있지만, 그들은 노란 물통들을 가지고 물을 구하기 위해서 먼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들이 사는 땅은 비옥해서 어떤 작물이든 기를수 있지만, 반군들이 자란 식물들을 못쓰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마저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결국 자신들은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원조물자에 자신들의 삶을 의지해서 살아가야만 하고 평화를 기대하지도 못하는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나일강 줄기에 위치하고 있고, 강이 한국처럼 명확하게 물길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범람하게 되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그들에게는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둑을 만들어서 물이 범람하지 못하게 막아 놓았지만, 비의 양이 많아지고 나일강이 더 범람하게 되면 그들의 삶의 터전은 당장이라도 무너질수 밖에없는 풍전등화의 상황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왜 성실하게 일을 하지 않고 원조에 의존하고 살아가고 있냐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실이라는 것이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수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고 계획을 하고 하나씩 이루어 가지 않는다고 이야기 할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루 하루의 불안한 삶만 있을뿐, 미래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랫동안 살게 되면 무기력증에 빠질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막 사는 삶을 정당화 시키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삶의 상황을 대하는 각 사람의 특성이 존재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인 분위기나 상황이 개인의 삶에 영향을 줄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심리학에서 어린시절 부모와의 애착관계가 인간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습니다. 부모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면서 아이는 자신만의 애착유형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그러한 애착의 형태는 평생 자신의 대인관계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안정애착을 경험한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과 안정적인 애착의 경험을 만들어 가고, 회피애착등 불안정 애착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건강하지 않은 형태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과 맺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어떠한 애착의 형태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자신의 애착 형태를 알수 있습니다.
출장간 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최근에 은퇴하고 얼마 있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은퇴를 했지만, 가족들과 오랫동안 떨어져서 외딴곳에 살다보니, 자녀들과의 관계도 서먹서먹하고 다 독립해서 가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관계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배우자와도 오랜시간 떨어져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화도 잘 되지 않고 자주 다투게 되어서, 자원봉사 형태로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사람을 보았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동료가, 자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자신은 이렇게 오지에서 생활을 하면서 적응을 하고 잘 지내고 있지만, 가족들과는 정서적인 거리가 많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집에 가면 외롭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와 아들은 호주에서 생활하면서 자신들만의 삶에 적응을 했기 때문에 자신과 공감대를 이루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못내 아쉬워 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에 적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조정하게 되지만, 그러한 적응이 주어진 환경에 맞는 것일뿐, 다른 모든 사람들과 같이 건강하게 어울리면서 살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나름 잘 적응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그 시대의 상황에 잘 적응을 한 것이지, 어쩌면 절대적인 상황에 잘 적응을 했다고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자연재해와 전쟁으로 사회 전체가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시기에,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