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 콤플렉스

by 김정유

"자기는 적당해서 좋은 것 같아. 너무 못생기지도, 너무 잘생기지도 않아서 좋아!"

20대 초반에 사귀었던 연인이 내게 했던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스타일도 막 아이돌처럼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 입는 것도 아니고… 키도 너무 작거나 크지도 않아서 같이 다니기에도 좋고…"라며 말을 이었다. 그의 말은 의도가 무해해서 더 아팠다. 돌이켜보면 '수수해서 좋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는 그 말을 자꾸 되뇌게 됐고, 스스로 ‘적당 콤플렉스’라고 이름 붙였다.


그 후 학교를 다니며 용돈벌이를 위한 과외 자리를 구하는데, 그 ‘적당 콤플렉스’가 다시 떠올라 나를 괴롭혔다. 문과를 졸업한 나는 수학을 가르치기엔 이과 친구들에 비해 범위가 제한적이고, 영어를 가르치기엔 해외 유학파 친구들에 비해 부족한 게 사실이었다. ‘나는 왜 뭐 하나 특출난 게 없을까’, ‘그때 그가 했던 말이 맞았던 걸까’—문득문득 생각하게 됐다.


나는 특별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눈에 띄게 모자라지도 않다. 내세울 만큼 뚜렷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인생도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무난하게 살아왔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남들과 같은 ‘무난함’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요즘 우리는 끊임없이 ‘남들과 다른 개성’과 ‘특출남’을 요구받는다. 유퀴즈에서는 유명인이 나와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를 들려주고, 인스타그램 속 누군가는 개성과 끼를 뽐낸다.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취준생에게는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경험과 역량’을 서술하게 한다.


반면 나는, ‘그럭저럭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냥 그런 하루하루. 무사히 퇴근해 저녁으로 먹고 싶었던 엽떡에 좋아하는 분모자를 추가할 수 있는 삶에 감사한다. 예전에는 이것이 지루함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 지루함이 결국 나 스스로의 중심을 지켜온 ‘적당함’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적당함은 쉽게 오해받는다. 대충 사는 것, 목표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적당함은, 삶의 균형을 아는 사람만이 선택할 수 있는 용기이자 절제다. 연예인 고현정 님이 유퀴즈에서 “지루한 것이 가장 고급스러운 것”이라고 했던 말도 떠오른다.


꾸미되 과하지 않고, 덜어낼 줄 아는 것. 부족함 없되 과시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적당함’의 아름다움이다. 동양철학의 '중용', 일본 미학에서 말하는 와비사비(Wabi-Sabi)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의 자기계발서도 『아들아, 너는 인생을 이렇게 살아라』보다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책들이 인기일 테다.


나는 이제,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덜 괴롭히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대단해 보이지 않더라도, 오늘을 잘 살아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기로 했다. 적당함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 내 마음에 귀 기울이는 일. 이게 어쩌면, 내가 가장 나답게 사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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