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시작되었다는 것이 키포인트
시드니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학기 사이에 있는 방학을 한 번 맞이했다. 때마침 학교가 2 학기제에서 3 학기제로 바뀌는 시기였기 때문에, 방학이 삼 개월 정도로 길었다. 삼 개월의 방학 동안 한 달은 시드니에서 식당 일을 해서 돈을 벌고(당시 호주의 최저 시급은 약 18달러로 한화로 약 15,000원 정도였다), 한 달은 그 돈으로 호주 주변국을 여행하고, 나머지 한 달은 한국에서 지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국에서의 한 달을 결심하게 된 것은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시드니의 높은 물가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도 있었다.
사실 동남아 여행을 결심하게 된 것은 내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시드니 대학 생활 동안 여러 국가에서 온 교환학생들끼리 친하게 지냈는데, 나와 함께 다녔던 교환학생 친구들은 모두 뉴질랜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나도 덩달아 뉴질랜드 여행을 알아보았다. 친구들이 계획하는 뉴질랜드 여행은 크루즈 여행이었으며 일주일에 이백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들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가격으로 고민이 되던 그때, 무리에 속해있지 않았지만 나와 개인적으로 친했던 다른 일본인 친구가 나를 꼬드겼다. 뉴질랜드를 1주일 크루즈 여행할 돈으로 동남아는 한 달을 여행할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그 말에 덜컥 넘어갔다. 사실 그 친구는 장래에 동남아에서 일하길 희망했기 때문에(자신의 전공 분야인 건축에서) 동남아 여행을 희망했던 것이다. 목적이 뚜렷했던 그 친구와는 달리, 나는 가성비라는 거부 못 할 유혹에 넘어가 물 흐르듯 이 여행을 선택했다. 가족들 품을 떠나 혼자서 여행 한 번 해본 적 없는 내가, 무려 한 달간 동남아를 떠도는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그것도 외국인 친구들과. 그것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렇게 인도네시아 발리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 베트남 호치민, 캄보디아 프놈펜, 태국 방콕으로 떠나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여행은, 이 여행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을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인생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