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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Feb 28. 2021

고급 호텔 옆 호스텔에서도 행복한 이유

첫 목적지는 인도네시아 발리. 아아 발리, 이름만으로도 얼마나 설레는 곳인가. 누구나 한 번쯤 마음속으로 꿈꿔본 휴양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부푼 마음을 안고 발리에 내렸다. 에어 아시아의 좁은 이코노미석 따위, 발리를 상상하며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었다. 뭣 모르는 23살의 대학생은 그렇게 발리에 도착했다. 옆에는 애인이 아닌, 외국인 친구 2명을 끼고선.


내가 본 발리는 아름답고, 평화로웠으며, 공기엔 특유의 나긋함이 배어 있었다. 어디에 있던 먼발치로 해변이 느껴졌고, 3층을 넘어가는 건물은 없었다. 거리에는 휴양지를 상징하는 야자수가 길을 따라 깔려있었다. 공기는 후덥지근했으며 사람들은 느긋했다. 그 여유로움이 이곳을 좀 더 휴양지답게 만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후 나의 발리 여행은 조금의 난항에 봉착했다.


처음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조금 충격을 받았다. 먼저, 남녀가 섞여서 같은 방을 쓰는 구조였다. 2층 침대 20개 정도가 나란히 붙어 있었으므로, 남녀 상관없이 40명 정도가 한방을 쓰는 셈이었다. (사실 말이 방이지, 강당만 한 크기의 방이었긴 했다) “유교-걸”인 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상황. 생각해보니 친구가 나에게 동남아 여행은 저렴하다, 200만 원으로 한 달의 여행을 할 수 있다고 했을 때, 어떤 조건인지는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나 또한 묻지 않았고. 숙소와 비행기 예약은 모두 그 친구의 담당이었던 터라 나는 아무런 감도 없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한 달 200만 원 여행의 조건은, 비행기는 가장 저렴한 에어아시아 이코노미석을 타며, 숙소는 가능한 일박에 만 원 이하인 호스텔에서 지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 마주했을 때의 당혹감이란.


마음을 추스르고 침대에 짐을 풀었는데, 옆에 앉아 있는 유럽인처럼 보이는 친구가 비키니를 입고 누워 있었다. 공원에 비키니까지는 오케이 했는데, 남녀공용인 숙소에서 비키니라고? 비키니는 해변에서만 입는다는 내 생각이 얼마나 짧았는지 깨달으며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호스텔을 나와 바다로 향했다. 바다를 향하는 길에서 5성급 호텔들을 만났다. 아, 저런 숙소는 얼마일까, 비교 섞인 질문이 자연스레 마음에 떠올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어느새 친구들과 바다에 도착했다. 목이 말라 바다 앞 과일 주스 가게에서 천 원짜리 드래곤후르츠 주스를 시켜 먹었다. 처음 먹어보는 진한 자두색의 주스는 생각보다 달았다. 그 의외로 맛있었던 주스가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다. 마치 아무 기대도 하지 않았을 때, 툭 하고 마주했기 때문에 더 반가운 선물처럼. 주스를 마시며 파도치는 해변을 바라보았다. 이내 마음이 평화로워졌고, 그저 이곳에 올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다.


발리는 호텔과 바다 외에도 가볼 곳이 많은 관광지였다. 발리 우붓도 있으며, 엠플 사원이 있고 계단식 논이 눈 앞에 펼쳐지는 뜨갈랄랑이 있다. 엠플 사원에서 발리의 전통 건물도 감상하고, 원숭이들도 만났으며 계단식 논에서 식사하며 밭의 절경을 즐겼다. 해가 지면 호스텔 주변의 식당에 가서 나시고랭과 미고랭 그리고 튀긴 음식들을 시켜서 맥주를 마셨다. 아, 맥주는 반드시 베트남 맥주인 타이거 맥주로.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는 호스텔 거실에 있는 커다란 창문을 통해 발리의 밤거리를 내다보며 일기를 썼다.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갖는 혼자만의 시간. 참으로 낭만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충분히 발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첫 여행지에서, 돈이 없어도 여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기서 소개하고 싶은 호스텔의 묘미. 새로운 당일 투어를 바로바로 예약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발리에 별다른 계획이 없이 온 우리는 하루 정도 시간이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호스텔에서 친해진 친구들에게 발리에 가볼 만한 곳을 물어봤고, 당일 등산 일출 투어를 추천받아 그 자리에서 예약했다.


다음 날, 새벽 2시에 기상했다. 다른 친구들도 주섬주섬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새벽에는 낮과 달리 쌀쌀하므로 가져온 옷들을 여려 개 꺼내 겹겹이 입었다. 호스텔 밖으로 나오자 지프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심하게 덜컹거리는 지프차에 몸을 맡긴 채 산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별안간 새벽에 발리에서 달리는 지프차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났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상황에 던져져 있는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다.


드디어 산에 도착했을 때,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산은 내가 알고 있는 푸른색이 아니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자갈길로 도배되어 있었다. 해가 뜨지 않은 캄캄한 밤하늘 아래서 의지할 것이라곤 나의 튼튼한 두 다리뿐이었다. 핸드폰 후레시를 켜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생각보다 강도 높은 등산에 힘이 들었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새카만 밤하늘에 박혀있는 아름다운 별들을 보며 힘을 냈다. 정상 부근쯤 도착했을 때, 초등학생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현지 아이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책가방에는 책 대신 물과 콜라를 넣고선, 어떤 어른보다도 능숙한 솜씨로 자갈길을 올랐다. 비틀거리며 오르고 있는 내게 손을 내밀기도 하면서. 당시 가난한 여행자였던 나는 음료를 사주진 못했지만, 그 아이들을 보면서 게을렀던 내 모습을 반성하고 더 힘을 냈다.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일출을 맞이했을 때, 지금까지의 수고는 모두 결실을 위한 아름다운 노력의 과정으로 변했다. 어두웠던 밤하늘이 밝아지는 것을 바라보며, 그 모든 추위와 힘듦, 두려움은 뿌듯함과 상쾌함, 기쁨으로 바뀌었다. 함께 오른 친구들과 바라보는 일출은, 아름답고 따뜻했으며 환했다. 등산을 통해 나는 어떤 힘든 순간에도 나에게 힘을 주는 것들은 존재하며 나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적응해 살아나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원이 된 지금, 내가 다시 발리에 간다면, 그래 솔직히 좋은 리조트를 예약할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 이러한 여행을 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대학생 때 이런 여행을 해볼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5천 원짜리 호스텔이 아닌 5성급 호텔에서 잠을 잤다면, 호스텔에서 다른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도 못했을 것이고, 호스텔에서 사귄 친구가 추천해주는 당일 투어에 참석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현지인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산 정상에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일출도 보지 못했겠지. 따라서 변화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능력을 깨닫는다든지, 세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낀다든지 하는 “살아있는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돈이 없어도 떠나라고. 떠나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상상치 못했던 광경을 마주하라고. 그렇게 새로운 세상을 가슴 한가득 담고 돌아오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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