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니 Feb 28. 2021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

feat. 갭 이어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는 슬리핑 버스를 통해 이동했다. 국가 사이를 버스로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후에 탑승 시간이 16시간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조금 후회했지만. 그래도 비행기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거의 도시에서 도시로 넘어가는 비용) 타 국가로 움직일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베트남에서 캄보디아로 넘어가는 슬리핑 버스 안에서, 19살(국제 나이) 영국인 청년을 만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갭이어를 가지며 몇 개월째 세계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19살에 세계 일주를 하는 영국인 청년이라. 호기심이 들어 어느 국가들을 다녔는지,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이것저것 물었다. (여행자가 되면 성격이 조금 더 외향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본다. 그리고 상대방도 그런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준다.) 영국인 청년은 한국에는 이미 다녀왔다며, 자기는 아시아 중에 한국이 제일 좋았다고 답했다. '립서비스인가?' 싶어 왜냐고 물었더니, 나라가 “생동감” 넘친다고 대답한다. 특히 밤에…. 무슨 말인지 몇 초가 지난 후에 이해했다. “클럽 문화”를 말하는 것이었다. 세계 일주 중 가장 좋았던 것이 클럽이라니, 스무 살은 스무 살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해졌다. 영국에서는 이렇게 마냥 어린 학생들도 아무렇지도 않게 갭이어를 가지고, 세계 일주를 하는데.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쉴 틈 없이 앞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원하면 배낭을 메고 나와 다른 국가들을 엿볼 수 있는 여유가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굉장히 획일화된 교육방식을 취한다. 하나의 시험을 통해 평생을 좌우하는 대학 입시를 결정하는가 하면, 특정 시험의 등수로 좌르르 번호 매기곤 한다. 그렇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지 알지 못한 채, 모두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또 달린다. 대학을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질까? 이미 중요한 유년기를 그렇게 보낸 학생들은 쉽사리 자신만의 인생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다. 외국에서 대학 입학 전 많은 학생이 선택하는 갭이어는 한국 대학생들에게는 사치로 들릴 뿐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것은 정해진 길에 이탈자가 되는 것만 같다.


그래, 사실은 내가 그랬다. 고등학생 때는 등수라는 숫자에 연연했고 하고 싶은 것은 모두 입시 후로 미루었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었지만, 감히 혼자서 떠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사실도 학교에서 주는 교환학생이라는 기회를 통해서 알았다. 그 기회를 잡지 못했다면 이렇게 넓은 세상을 만나지 못했겠지. 그렇게 나는 내가 직접 선택하는 삶보다는, 선택을 당하는 삶을 살아왔다.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며 멋지고 또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나아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면, 혹은 턱 밑까지 숨이 차올라서 더 나아갈 힘이 없다면, 후에 있을 이 보 전진을 위해 일보 후퇴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변의 소음을 끄고,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낯선 곳으로 떠나 온전히 내 마음에 집중해 보는 것. 마음속에서만 꿈꿔오던 곳으로 떠나보는 것. 그곳이 반드시 유럽일 필요도, 저 먼 남미일 필요도 없다. 그저 내 마음이 원하는 곳이면 되지 않을까? 그곳에서 우리는 어쩌면, 우리도 몰랐던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고, 인생의 새로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후에 인생이 힘들 때 꺼내볼 수 있는 귀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장소는 새로운 것들을 보여준다.

작가의 이전글 새벽에 일어나서 여행하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