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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니 Feb 13. 2021

룸메이트, 새로운 가족

여행 중에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

   

혼자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혹은 오랜 기간 해외에 체류할 경우, 가족 같은 룸메이트를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낯선 타지에, 혼자 살아남기는 어렵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인지, 우리는 낯선 곳에 장기로 체류할 때 가족과 같은 룸메이트를 만들곤 한다.


룸메이트가 가족이 되는 과정은 이렇다. 통성명과 동시에 식사를 같이 한다. 이야기가 잘 통한다고 느끼면 잠시 후 있을 간단한 외출에 동행한다. 며칠을 함께 지내다 좋은 여행지가 있으면 “같이 갈래?” 물어본다. 시간이 크게 엇나가지 않는 이상 동행한다. 필요할 때면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비자 정보나 혹은 알아두어야 할 것들을 서로 알려준다. 그렇게 빠르게 가까워진다. 같이 여행을 떠남으로써 즐거움을 함께 느끼고, 정보 공유를 통해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잠까지 함께 잔다면, 정말 가족이 된다.

 

시드니에서 나 또한 가족과 같은 룸메이트를 만났다. 나는 시드니 생활 10개월 중 후반의 4개월을 셰어하우스에서 지냈는데, 한 달 사이 룸메이트가 여러 번 바뀌었고, 마침내 한국인 여자 3명을(나 포함) 룸메이트로 만나게 되었다. 통성명으로 시작한 우리 사이는 함께 식사함과 동시에 급격히 가까워졌다. 우리는 곧 늦은 밤에 퇴근하는 서로를 마중 나가고, 쉬는 날에는 도시락을 싸서 근처 공원으로 피크닉을 가며, 외식은 함께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들로 인해 나는 외로움이 줄어들었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었으며 좋은 일을 함께 즐길 수 있었다.


왜 우리는 해외에서 가족 같은 룸메이트를 만들까? 먼저 요리를 할 때만 해도 1인분은 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적은 양을 만들려고 해도 2인분은 거뿐히 넘고, 어느 정도 재료비에 맞는 양을 만들어 내려면 3~4인분은 훌쩍 넘어버린다. 이때 가족과 같은 내 룸메이트가 있다면 마음이 훨씬 편하다. 요리를 나누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먹은 요리를 나에게 언젠가 어떤 형식으로든 돌려줄 것이며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내가 만든 요리를 나누어주는 것이 아쉽지 않다. 요리를 만들어서 나누어 먹는 기쁨은 여행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 직접 만든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 그 후의 유대감은 남달라진다.


아직도 비 오는 날 시드니의 룸메이트들과 만들어 먹었던 전과 막걸리가 잊히지 않는다. 외국인 룸메이트들에게는 한국의 문화를 알려주고 싶어서, 한국인 룸메이트들에게는 한국의 맛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마트에서 온갖 해산물과 밀가루를 사서 해물파전과 김치전을 만들었었다. 그리고 막걸리까지. 그 맛은 가히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다들 너무 맛있다고 해서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날 나는 신이 나서 전을 부치고 또 뒤집었다. 과연 혼자 요리를 해서 먹었다면 그렇게까지 맛있었을까? 식사가 끝난 후 요리하느라 고생했다는, 너무 맛있었다는 룸메이트들의 인사가 어떤 성취만큼이나 뿌듯했다. 물론 한국에 와서는 한 번도 파전을 부치지 않았다. 정 먹고 싶다면 아마 근처에 식당에 가서 사 먹겠지. 지금 그리운 것은 그 파전이 아니라 함께 먹었던 그들이었다.


사실, 혼자 하는 여행은 때론 사무치게 외롭다. 새로운 장면에 감탄하느라 정신없는 순간들도 있겠지만, 그 여행지까지 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외롭다. 실제로 여행을 해 보면, 특정 나라에 갔을 때, 유명한 방문지까지는 비행기에서 내려서 또 다른 경로를 통해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오페라하우스가 있고 본다이 비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숙소에서 짐을 푸르고 식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목적지까지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은 길면 하루가 넘게 걸릴 수도 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말동무가 되어 줄 친구가 필요하다. 장기 여행자라면 오랜 여행으로 외로움이 더 깊으므로 더욱 그렇다. 반드시 깊은 사이로 발전하지 않더라도, 가벼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한층 더 편안하게 해준다.


또, 혼자 하는 여행은 위험하기도 하다. 비단 나쁜 일을 당할 확률을 차치하고서라도, 어떤 정보를 몰랐을 때 낭패를 겪을 수 있다. 그 지역에서 꼭 가보아야 할 방문지를 알지 못하고 지나칠 수도 있고, 더 저렴하거나 더 편한 이동 수단을 놓칠 수도 있다. 장기 여행자의 경우, 자신이 방문하는 모든 여행지를 샅샅이 조사하고 올 수 없으므로 더욱 그렇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장기여행 시 가족 같은 룸메이트를 만든다. 너무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날에는, 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어쩌면 여행과 사람은 한 끗 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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