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올릴 핑계

당신은 한 번도 하지 않으셨던 전쟁의 이야기로

by 천루

어느 날 액자 하나 사다 달라던 외할아버지의 말씀에 무슨 사진인지 집에 있는 액자들 적당히 하나 골라 넣으시면 되지 않냐며 가족들 모두 의아해 했다. 서운해하시는 표정은 막상 떠오르지 않으면서도 그 분위기가 문득 한 번 씩 떠오른다. 집안의 온 심부름을 담당하던 손녀딸이 씩씩하게 제가 다니다가 하나 사 올게요 하고는 다이소에서 골라온 천 원 짜리 프레임 하나에 외할아버지께서는 국가 유공자 증서를 넣으셨다. 그런 걸 넣으실 거면 말씀을 정확히 하시지 그랬냐고 민망해하는 자식들 틈에서 역사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던 손녀딸은 막상 그게 어떤 무게인지 여전히 알지 못 했다. 증서를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곳에 잘 세워 두시고도 도통 언제 무엇으로 참전하셨는지 당신의 업적을 자랑은 커녕 입에 올리지 않으셨던 외할아버지셨다. 해양대를 다니셨으니 전쟁이 터지자마자 해군으로 일단 다 징집이 되었다는 이야기나 무슨 전투의 생존자셨다는 이야기들은 막상 돌아가신 후에야 어른들을 통해 파편을 모으듯 알게 되었다. 지금도 외가에 가면 그 프레임 그대로 유공자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신의 생신이 현충일 즈음이라 적적하지 않으시겠다고 안도하며 찾아뵈는 이 맘 때면 언제나 태극기가 나부낀다. 모처럼 활짝 열린 문 너머를 한 번 들여다보며 인사를 올리고 계단을 내려서면 생전 당신의 입으로 직접 들어본 적 없던 해군 이병이라는 낯선 명판이 영원히 남았다.


역사 시간에 배운 적 없던 장사상륙작전은 내가 철이 들고 나서야 조금 씩 매체에 이름이 오르기 시작했다. 학도병이니 양동 작전이니 부쩍 그런 영화들에 시선이 가고도 한참 후에야 상영관에 영화가 한 편 걸렸다. 감내할 자신이 없어 차마 걸음하지 못 하던 영화관에 아버지께 이끌려 보러 갔던 밤. 방에 돌아와 한참을 숨죽여 울고 말았다. 나의 세대는 알지 못 하는 전쟁의 무게 같은 것보다, 그저 그리운 마음이 너무 커서. 한 번도 여쭤보지 않았던 당신의 젊은 시절이 어떤 삶이었을지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어서. 한 참을 숨죽여 울었다. 배를 타셨다. 고작 그 것 뿐이 아는 게 없던 외할아버지의 젊은 시절이었다. 평생 한강 이북에서는 하룻밤도 안 주무시겠다던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야 그 자리를 기리는 전승관이 생겼다. 해변 한 끝의 삭막한 배 한 척이 아니었다면 그저 물이 좀 깊은 해수욕장일까 싶은 바다에 문산호가 자리했다. 그 앞 전승비에 새겨진 이름들을 살피고 살펴 당신의 성함을 찾아 가만히 쓸어 보았다. 찾았다며 어머니를 불러 알려드리고 사진을 찍어 외할머니께 보내던 나는 울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치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침묵하는 지식인이라는 부끄러운 아이덴티티와는 달리 국경일에 눈을 뜨면 국기 게양을 빼먹지 않는 일과로 삼고 온갖 국가 기념식 중계를 챙겨보곤 하는 나지만 그 중에서도 유난히 챙기는 날 중 하나가 현충일이다. 군인이나 경찰을 사회적 영웅으로 여기며 한 때 꿈꿨던 탓도 있겠지만, 외할아버지를 호국원에 모신 후로 부쩍 더 챙기는 것 같다. 바쁜 일상과 여러가지 환경들 속에 이리저리 치이며 자꾸만 무너지려는 몸과 마음을 겨우겨우 붙들고 버티던 요즘. 모처럼 휴일을 휴일답게 조금 늦은 식사를 하고 그 와중에도 또 강의라도 한 편 틀어놓고 책상에 앉은 아침이었다. 날씨가 좋아서 활짝 열어 놓은 창 밖에서 길게 우는 사이렌에 가만히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씩씩한 척 일상을 보내던 중에 또 한 번 조금 울어도 될 핑계를 찾아버린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