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도 10년도 여전한 그리움이다.

소소한 일상 속에 스며든

by 천루

삶의 대부분을 한 동네에서 지낸다는 건, 일상의 모든 공간이 곧 추억의 공간이라는 말과 같다. 버스를 타고 지나치는 어느 길목이나 아무런 특색 없어 보이는 평범한 사거리까지 모든 곳이 곧 크고 작은 기억 하나쯤은 품고 있는 그런 곳이고, 나는 그런 곳을 여전히 매일 아침저녁으로 지나치며 또 새로운 기억을 쌓아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기억들 속 아주 소소했던 일상이지만 더는 되풀이할 수 없는 그런 추억은 종종 무언가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작은 스위치 하나를 누르곤 한다. 이유도 모른 채 왈칵 쏟아내고 마는 그런 스위치를.


평범한 퇴근길의 지하철역이었다. 분주한 직장인 무리와 왁자지껄한 학생들 틈으로 단정하게 손을 잡고 느린 걸음을 옮기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서 문득 종종 점심 식사를 다녀오시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린 내가 혼자 집에 있는 게 눈에 밟혀 옆 동네로 이사를 하셨다던 외할아버지의 결단 덕분에 외가댁은 늘 마음만 먹으면 뛰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혼자 버스도 탈 줄 아는 나이가 된 후에는 우연히 버스에서 외할머니를 만나기도 했다. 어느 겨울날에 탄 버스에서 익숙한 코트를 보고 반가움으로 저절로 함박웃음을 띄웠던 오래된 추억이 종종 생각나는 길을 여전히 같은 번호의 버스를 타고 지나곤 한다.


본캠에서 수업을 마치고 오는 길목은 할아버지댁에서 오던 길과 같다. 이미 혼자 찾아왔을 만큼 큰 손녀딸을 지하철역까지 함께 버스를 타고 데려다주시던 할아버지께서 사주시던 치킨. 여전한 2층 창가에 앉아 같은 메뉴를 먹어볼까 싶다가도 10년이 된 지금도 그 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를 내지 못하는 건 유학이니 신분이니 하는 것들로 할아버지의 장례식에도 돌아오지 못했던 평생의 죄스러움이 한몫하는지도 모르겠다.


좋은 일이 있을 때면 종종 생각한다. 뿌듯한 얼굴로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이런 일이 있었다느니 저런 일을 했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나를 대견해하시던 그 모습을 떠올린다. 너무 바빠 그 어떤 시간도 내지 못할 때면 종종 생각한다. 젊을 때 바빠야 하는 거라고, 바쁜 게 좋은 거라고 격려하시던 목소리를 떠올린다. 아직도 생신이 다가오면 더 그립고 기일이 다가오면 자꾸만 이런저런 추억들을 떠올리며 눈물을 참는다. 웃는 얼굴로 이런 일도 있었다며 추억을 얘기하지만 그 한켠에 아직 덜 마른 눈물이 있다. 꿈에라도 보고 싶다. 이렇게 하루 이틀 지나가는 어느 날에 목소리마저 잊을까 두렵다. 나는 아직도 그 손의 체온을 기억하는데, 혹시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질까 너무나 두려운 것들이 너무 많다.


생신들과 기일들이 연이어 있는 여름은 아직 내게 너무나 버겁다. 자꾸만 고개를 드는 추억이 곧 그리움이 되어 미소만으로 지나가지는 않아서. 남은 사람이 너무 울면 안 된다고 했는데, 자꾸만 쏟아지는 울음을 멈추는 방법을 찾아 아직도 헤매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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