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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illery Story- 글렌로시스 증류소

에드링턴 셰리 싱글몰트

by 위스키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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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딘버러에서 하이랜드 방향으로 차를 타고 올라가면,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Glenrothes’ 라는 표지판을 볼 수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오늘의 증류소, 글렌로시스가 있는 지역… 은 아닙니다. 진짜 글렌로시스 증류소는 차로 4시간 가량을 달려 도착한 스페이사이드의 ‘Rothes’ 라는 마을에 자리잡고 있죠. 글렌그란트, 글렌스페이 증류소와 나란히 마을 서쪽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글렌로시스 증류소는 에드링턴 계열 증류소 중 ‘서자’ 같은 증류소입니다. 셰리 위스키를 중심으로 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지만, 맏이인 맥캘란과 캐릭터성 짙은 하이랜드 파크에 밀려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증류소입니다. 특히나 같은 스페이사이드, 같은 셰리 위스키를 생산하는 맥캘란에 비하면, 수류탄 같은 병에 담긴 글렌로시스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증류소이기는 합니다.

156_SummaryImage.jpg?v=638424717903200000 전방 수류탄

글렌로시스는 그 이름과 역사에 비해, 상당히 부침이 많았던 증류소이기도 합니다. 바로 글렌로시스가 ‘커티 삭’ 과, ‘페이머스 그라우스’ 라는 블렌디드 위스키에 원액을 대는 증류소이기 때문이죠. 두 위스키 모두 조니 워커에 비견될 정도로 유명하고, 역사가 깊은 위스키입니다.

위스키 산업의 꽃이 싱글몰트라고는 하지만, 그 꽃을 단단하게 뒷받침하고 있는 줄기와 뿌리는 블렌디드 위스키입니다. 생산량과 소비량의 변동이 크고, 캐스크의 선별 등에 공수가 많이 들어가는 싱글몰트는 그 태생적 한계로 인해 주류가 되기 어렵습니다. 숙성기간도 상대적으로 길기도 하구요. 그래서, 대부분의 증류소들은 생산하는 원액 대부분을 블렌딩용으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맥캘란은 1500만 리터의 알코올을 매년 생산하는데, 만약 이 생산량을 전부 싱글몰트로 돌린다면 매년 10만 개에 가까운 배럴을 채워야 하겠죠. 아무래도 창고의 용량도 그렇지만, 가격방어 또한 전혀 되지 않곘죠.

Blended-Scotch-Whiskey.jpg 위스키 산업의 '주인공'

여튼, 글렌로시스의 경우 처음에는 ‘페이머스 그라우스’ 의 키 몰트로 사용되었습니다. 태생부터가 맥캘란의 투자자들이 세운 증류소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죠. 1887년, 부나하벤을 소유하고 있던 islay distillery co와 합병해 Highland Distillers를 형성했고, 이때 페이머스 그라우스의 세 키몰트인 맥캘란, 글렌로시스, 부나하벤의 구도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후, 1920년대 금주법 시기, BB&R에서 출시한 ‘커티 삭’ 이라는 위스키에도 몰트 원액을 납품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블렌딩용 원액을 공급하기 시작했습니다. 1963년과 1979년 그리고 1989년, 세 차례의 증류소 확장을 거치며 4개였던 증류기는 10개까지 늘어나 대량의 원액을 생산했죠. 이 과정에서 글렌로시스가 Highland Distillers의 손을 벗어나 BB&R의 포트폴리오에 합류하기도 했습니다. BB&R도 상당히 탐내던 증류소였다는 것이죠. 이후, 에드링턴이 Highland Distillers와 커티 삭을 인수하고, 이 과정에서 글렌로시스의 브랜드 사용권을 BB&R 에게 넘겨주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BB&R의 위스키에 셰리 원액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죠. 하지만 글렌로시스를 포기할 수 없었던 에드링턴은 2017년, 글렌로시스의 브랜드 사용권까지 마저 인수하게 됩니다.

image?url=%2Fimages%2FHomepage_Grouse_Hero.webp&w=3840&q=75 뇌조 (유명한)

이처럼, 글렌로시스는 싱글몰트로서의 정체성보다는 거대 블렌디드 위스키의 키 몰트라는 정체성이 더 강한 편입니다. 이후 에드링턴이 커티 삭과 글렌터렛을 매각하면서도 글렌로시스는 포트폴리오에 유지했다는 것을 보면, 상당히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보아도 좋을 듯하네요.


싱글몰트의 측면에서 보면, 글렌로시스의 싱글몰트는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고 있기는 합니다. 2010년에 BB&R이 브랜드 사용권을 가지고 난 이후부터 본격적인 싱글몰트 브랜딩이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사실 이때도 원액이 부족했던 것인지, 빈티지 개념으로 제품을 출시했고 그마저도 좋은 평가는 받지 못했습니다. 2010년대 후반에 1차적으로 리뉴얼을 했을 때에도, 글렌로시스 12년에 대한 평가는 박한 편이었죠. 그나마 도수가 다소 높은 WMC 제품이 고평가를 받았습니다.

The-Glenrothes-Vintage-Reserve.jpg 싱글몰트 브랜딩 이게 쉬운 게 아닙니다

지금 와서는 에드링턴의 계획 하에 2번째 리뉴얼이 이루어졌고, 12년이 라인업에서 아예 빠지고 15년부터 라인업이 시작되는 모습이 보입니다. 케이스도 기존의 성의없는(?) 가운데가 뻥 뚫린 상자가 아니라, 회전 기믹이 있는 원통형 케이스로 고급지게 바뀌었죠. 에드링턴은 자사가 가지고 있는 싱글몰트 브랜드 3개를 모두 고급화하고, 엔트리급 시장은 네이키드 몰트로 노리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네이키드 그라우스를 네이키드 몰트로 이름을 바꾼 것도 저가형 위스키인 ‘페이머스 그라우스’ 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한 급을 올리려고 한 느낌이 있네요.

image.jpg 자주 나오죠

독립병입 시장에서 보자면, 글렌로시스는 에드링턴 몰트 중에서 비교적 구하기 쉬운 편입니다. 블렌딩용으로 많은 벌크딜이 이루어지다 보니, 그 남는 자투리들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죠. 에드링턴 시크릿 스페이사이드라고 표기되는 보틀은 보통 글렌로시스이죠. 맥캘란인 경우는 (M)을 붙여 표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기할 점으로는 97년 빈티지 캐스크에서 좋은 원액이 많이 발견되는데, 이는 1999년에 에드링턴이 Highland Distilers, 글렌로시스가 소속되어 있는 회사를 사들이면서 3년짜리 원액을 팔았던 것이 긴 숙성을 거쳐 돌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사려면… 아무래도 30년 가까이 된 원액이니 비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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