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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왕 Oct 05. 2021

로켓 발사는 그냥 우연이지만


서울대입구역 2번 출구, 나는 예쁜 여자랑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힐끗힐끗 시간을 보다가, 골목에 주차되어 있는 차 다가가서 선팅이 진하게 되어있는 유리창에 얼굴을 요리조리 비춰 보았다. 옆머리가 좀 떴나 싶어서 손으로 꾹 눌러본다.


지이잉-

때마침 핸드폰이 울린다. 현수형에게서 걸려온 전화다.


“네, 형 저 2번 출구 도착했어요 어디세요?”


‘어 나도 다 와 가... 아! 저기 너 보인다.’


전화가 끊김과 동시에 멀리서 현수 형이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나도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현수형과 나는 군대 동기다. 군대에 있을 때도 워낙 사람이 좋고 죽이 잘 맞던 형이라, 전역하고 나서도 이렇게 1년에 한 번씩 보는 사이가 되었다.


“이야 잘 지냈어? 왜 이렇게 멋있어졌어?”

 오랜만에 본 현수형의 첫인사였다. 마지막으로 본 게 작년 이맘때고 그동안 관리를 하거나 성형 수술을 하지도 않았으니 내가 늘어난 거라곤 나이와 잔주름 밖에 없다. 고로 내가 잘생겨졌을 확률은 거의 0에 수렴한다. ‘멋있어졌다’고 말하는 건 현수형이 으레 하는 첫인사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작년에 선릉에서 만났을 때도 그랬고, 재작년에 합정에서 만났을 때도 똑같이 인사했다. 매끄러운 인간관계를 위한 현수 형만의 기름칠 방법인 것이다. 빈 말인 것을 알아도 이런 공연한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속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론 기껍게 듣고 싶어서 괜히 거울도 두 번 세 번 보지 않았는가.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면도는 더 깔끔히 하도록 만드는 건 분명하다.


오늘은 형이 요즘 운영하는 봉사 단체의 활동 계획을 듣기 위해서 만났다. 내가 봉사활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 건 아니고, 작년에 어쩌다 형이 운영하는 봉사캠프에 결손 인원이 생기는 바람에 가서 일 손을 좀 거들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나를 용병으로 고용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게 딱히 싫지는 않았다. 오직 지인의 청탁으로만 움직이는 ‘봉사 헌터’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현수 형이 봉사캠프를 운영하게 된 과정도 굉장히 기막힌데, 제 작년에 만났을 때는 ‘나 이제 봉사활동 좀 해보려고’라고 말했던 형이, 갑자기 작년엔 ‘봉사단체를 운영하게 됐어’가 되더니, 어느새 ‘우리 사단법인 신청했어’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걸 듣던 내 반응도 해에 따라 ‘음’, ‘오아...’, ‘예?’로 바뀌어 가며 점진적 마마무가 되었다. 봉사활동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스케일이 이렇게 커지는 거냐고 물었는데, 형은 '아 그냥 사람이 많아져서'하고 말았다. 취미도 사람이 늘어나면 법인등록도 하고 그러는 건가 보다. 심지어 서울시는 사단법인 승인도 잘 안 해주지 않나? 정말 희한한 일이다.





내가 작년에 봉사 용병을 뛰러 간 곳은 서울의 모 동네에 연탄을 나르는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서울에 연탄을 떼는 곳이 있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도 놀랐다. 봉사활동은 동사무소 같은 데서 신청하나? 했는데 아주 스마트하게 모바일 웹으로 신청을 받았다. 웹 공고로 50명을 모집하는데 단 2분 만에 마감이 되었다. 컵라면에 물 부어 놓고 다 익기도 전에 마감이 된 것이다.


놀란 것은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봉사 루트와 규칙 안내는 물론이고 명단관리, 방역 인증, 사고 대처요령, 심지어 서로 어색함을 풀기 위한 가벼운 레크리에이션 같은 것도 마련된 짜임새 있는 시스템에 혀를 내둘렀다. <이웃 돕기 완벽 공략!> 같은 걸 보는 기분이었다.


“형 진짜 대단하네요”


“응, 뭐가?”


“저는 봉사 활동 가는 게 당근마켓에서 처음 보는 사이끼리 물건 거래하는 것 마냥 어색하게 쭈뼛 대다가 출발할까요? 이러는 건 줄 알았는데, 형은 다 계획이 있으시네요? 이런 걸 매번 다 관리하시는 거잖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안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게 깔고 조용히 덧 붙였다."... 심지어 무보수로 말이에요!"


“에이... 별 거 아니야”

현수 형은 피식 웃고 다시 연탄을 날랐다.


그날 연탄을 나르다가 단칸방에서 컵라면 하나를 둘이서 나눠 먹고 있는 남매를 보았다. 오누이는 이런 외부인들을 만나는 일이 익숙한지 한번 흘끗 보고는 다시 자기들 밥상에 집중했다. 오빠로 보이는 아이가 능숙하게 동생과 자기 접시에 라면을 나눠 담았다. 반찬도 없이 가닥을 세듯이 라면을 먹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는 못내 걸렸지만, 오늘 봉사활동 시작하기 전에 팀장이 당부하던 규칙이 있었다. '동정심 때문에 필요 이상의 과잉 친절을 베풀지 말 것'이라는 규칙을 곱씹으며 나는 그 집을 나섰다. 아니, 솔직히 그 규칙이 내 마음의 짐을 좀 덜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을 외면한 게 아니라 규칙을 지키느라 어쩔 수 없는 거야'라고 생각했다. '남을 함부로 동정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며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곳으로 달아났다.


연탄 나르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멀리서 현수형이 내 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 보다. 한 손에 봉지 들 있었다. 그 안에는 편의점에서 사 온 빵과 라면, 소시지 등이 잔뜩 담겨있었다.


“사실 이런 거 하면 안 되는 게 규칙인데, 난 그냥 몰래 해.”


현수 형이 뒤뚱뒤뚱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오누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땀으로 젖은 형의 등을 그냥 쳐다만 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저 봉지 안에 내 돈으로 초콜릿이라도 하나 사 넣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던 것 같다.




봉사가 끝나고 여러 사람의 따뜻한 손길을 건네받은 사람들의 얼굴이란 과연 어떨까 하고 궁금해졌다. 내려오기 전에 동네를 흘끗 뒤돌아봤다. 아직 밖에 있는 동네 사람들 몇 명의 얼굴이 보였다. 과연 어땠을까? 정말 놀랍게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술에 찌든 얼굴의 할아버지, 햇볕에 그을린 까무잡잡한 피부의 아주머니, 그늘진 아이들의 눈동자까지, 그들의 표정은 도움받기 전과 후가 똑같았다. 우리가 애써 부은 따뜻함이 그들의 힘듦에 이리저리 휩쓸려 사라진 것 같았다. 마치 뜨거운 아스팔트에 부은 물 한 바가지처럼. 그들의 표정처럼  그다지 개운하지 않은 마음을 안고 비탈길을 내려왔다.


자원봉사자들은 내려와서 커피숍에 모여 앉았다. 다들 개운한 표정이 화기애애해 보였다. 달동네 사람들 보여줬던 마지막 얼굴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신기했다.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그저 그런 표정인데, 도움을 준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이라니.  참가자 중 어떤 대학생 한 명이 현수 형에게 물었다.


“운영자님은 이 일 하면서 보람을 느끼세요?”


현수 형은 “아 그건 잘 모르겠고요, 그냥 이걸 하다 보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저도 좋은 기운을 얻는 거 같아서 하고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머쓱해하는 현수형을 뒤로하고 다들 봉사활동 소감, 앞으로 계획 등, 희망 섞인 덕담을 나누며 자리가 끝났다.


돌아오는 길에 현수 형이 말했다.

“놀랄 수도 있는데, 사실 나... 봉사하면서 보람 같은 거 느껴본 적 한 번도 없다?”


나는 현수 형이 그런 생각을 해서 놀랐다기보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더 놀랐다.


“아 그래요? 근데 왜 열심히 하세요?”


“글세, 이유는 잘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한테 휩쓸리다 보니까 나도 여기까지 온 거 같아. 왜 그런 거 있잖아. 추진력 있는 애들 옆에 붙어있다 보면 나도 휩쓸리는 거.”


형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는 아리송한 대답을 남기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형을 따라서 봉사를 ‘그냥’ 나가 보기로 했다. 그 알량한 연탄 쪼가리나, 라면박스 몇 개를 날라주는 것으로 그들의 슬픔이 치유될 리가 없겠지만 그냥 해보기로 했다. 내 따뜻함이 그들에게 닿지 못하고 사그라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내가 좋아하던 사람이 생각났다. 그녀는 나름대로 처한 사정이 있어 가난에 허덕이다 끝내 나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때 그녀는 이토록 힘든 자신의 사정에 혐오를 느끼며 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조차 사랑할 수 없게 되는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설명하려 했다. 아니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포기하려 했다. 말라 늘어져서 천장에 매달린 굴비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아마, 오빠는 영원히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우리는 서로 완전히 동일한 슬픔을 겪어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대요...’


그 씁쓸한 음성을 들었을 때 나는 바로 곁에 있는 그녀가 아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아픔이 벽이 아니라 거리처럼 느껴졌다. 내 위로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닿지 않았다. 마치 지구와 달의 간극 같았다.


지구에서 아무리 돌을 던진다 한들 달에는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달로 가는 방법은 수많은 돌멩이를 던지는 게 아니라 강력한 로켓 한 방을 발사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그런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기껏해야 돌이나 던질 수 있을 뿐, 로켓을 발사하는 건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그녀와의 헤어짐을 곱씹었다. '완전히 동일한 슬픔을 느낄 수 없으면 서로를 위로할 수 없는가'를 다시 한번 고민했다.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언젠가 닿게 되는 일은 우연처럼 다가오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로또에 당첨되는 건 내가 어쩌지 못하는 일이지만 일단 로또를 사야 당첨이 되든 말든 하는 것처럼, 로켓이 쏘아지는 건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지만, 일단 돌을 힘껏 던져야만 찾아오는 우연인 거 아닐까? 아픔에까지 닿는 사랑이라는 건 그런 거 아닐까라고 멋대로 결론을 내렸다.


언젠가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이 틀렸다고 말이다.

'비록 당장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냥 하다 보니까 되던데, 그냥 사랑하다 보니까 언젠가 우연히 널 이해하게 되었어'라고 전해주고 싶었다.


꿈을 꿨다. 저 쪽, 네가 슬피 울고 있는 먼 별까지 로켓을 타고 날아가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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